인간을 고용하지 마라(Stop Hiring Humans)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광고판. 아티잔 제공
지난 화에서는 삼성전자 성과급 투쟁을 다뤘습니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에 이르는 약 45조원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했고, 사측은 100조원의 손실을 경고했으며, 주주들은 인건비가 치솟는 현실에 격분했습니다. 그런데 202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버스 승차장 앞에는 이 갈등을 단번에 끝내겠다는 듯한 광고판이 서 있었습니다. “인간을 고용하지 마라(Stop Hiring Humans).”
광고를 내건 AI 스타트업 ‘아티잔(Artisan)’의 메시지는 노골적입니다. “아티잔은 워라밸을 불평하지 않는다”, “HR 면담을 요구하지 않는다”, “숙취로 출근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AI 직원은 파업하지 않고, 성과급을 요구하지 않으며,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업자는 의도된 도발이었다고 했지만, 그 한 문장은 지금 노동시장의 흐름에 대한 가장 솔직한 자백이기도 합니다.
로봇은 파업하지 않는다
노사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사측과 주주가 도달하는 결론은 단순합니다. ‘저 갈등의 당사자를 아예 없애면 어떨까.’ 한 번 멈추면 천문학적 비용이 날아가는 산업에서 파업하지 않는 노동력은 가장 매혹적인 자산입니다. 중국 샤오미의 베이징 ‘다크팩토리’는 사람 없이 24시간 돌아가며 1초에 스마트폰 1대를 찍어내고, 아마존은 창고 운영의 75%를 자동화해 2033년까지 약 60만명의 신규 채용을 회피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세웠습니다. 내부 메모에는 ‘로봇’이나 ‘AI’ 대신 ‘첨단기술’이라 부르도록 권하는 대목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세모글루는 아마존이 미국 최대 고용주에서 “순(純)일자리 파괴자”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마침 휴머노이드 로봇이 시제품을 넘어 공장에 배치되기 시작했고, 테슬라 옵티머스는 대당 2만~3만달러를 목표로 합니다. 로봇 1 대 값이 노동자 1년치 연봉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인간을 고용하지 마라”는 구호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2026년 3월 2030년까지 국내외 모든 공장을 ‘AI 자율공장(AI Driven Factory)’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조립·운반·검사를 휴머노이드형 로봇과 AI 에이전트가 맡고, 제조 경쟁력을 인력 규모가 아니라 알고리즘의 정교함으로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삼성은 2026년 6월 9일, 그룹 전체 관계사의 모든 업무에 외부 AI를 전면 도입해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AI 대전환에 돌입했습니다.
노동법은 작동하는가
그러나 아직 AI도 실패하곤 합니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상담직무 700여개를 AI로 대체했다가 2025년 “품질이 떨어졌고 너무 멀리 갔다”며 인간 상담원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차별의 위험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미국의 한 온라인 교육업체는 채용 소프트웨어가 55세 이상 여성과 60세 이상 남성을 자동으로 탈락시키도록 설정했다가 고용평등위원회에 36만5000달러를 물아야 했습니다(EEOC v. iTutorGroup, 1:22-cv-02565). 더 나아간 사건도 있습니다. 흑인이자 40세 이상이며 장애가 있는 한 구직자가 워크데이의 AI 선별 도구를 쓰는 100여곳에 지원했다가 모두 탈락하자 소송을 냈습니다. 미국 법원은 2025년 연령차별 부분에 대해 전국 규모의 집단소송을 허용하며 “소프트웨어와 인간 의사결정자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면 차별금지법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Mobley v. Workday, 3:23-cv-00770). 도구가 대신 판단했더라도 차별은 차별이라는 것입니다.
2026년 4월 중국 항저우시 중급인민법원은 ‘AI 도입’을 이유로 한 해고를 무효로 보았습니다. AI 답변의 품질을 검수하던 노동자에게 회사가 ‘AI 발전으로 업무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월급을 40% 깎겠다고 했다가 거부하자 해고한 사건이었습니다. 법원은 “기술 업그레이드는 기업이 효율 극대화를 위해 내린 주도적 선택일 뿐, 불가항력이 아니다. 기업은 AI가 가져다준 비용 절감과 이윤 성장을 누리면서 동시에 노동자를 마음대로 버려도 되는 ‘기술 비용’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우리나라 법원에서 AI 해고를 직접 다룬 판결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경영상 이유로 일부 일자리 폐지가 있더라도 다른 사업부로 옮길 자리가 있었다면 곧장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봤습니다(대법원 2016두64876). 저성과자로 봐서 해고하는 경우에도 객관적 실적뿐 아니라 재교육과 전환배치로 개선 기회를 주었는지, 그럼에도 사회 통념상 고용을 잇기 어려운지를 엄격히 따지라고 합니다(대법원 2018다253680). 그래서 AI나 로봇 도입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엄격합니다.
다만 대법원은 일찍이 30여년 전 ‘신기술의 도입’을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으로 인정한 판례도 있어(대법원 91다8647) AI를 명분으로 한 인력 감축이 언제나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AI, 로봇 대체 관련 노동 분쟁은 크게 늘어갈 전망입니다.
노동조합도 침묵하지 않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26년 1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공장 투입 계획을 내놓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대도 들일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마침 2026년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이른바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을 둘러싼 갈등도 노동쟁의의 대상으로 명시했고, 전국금속노조는 2025년 산별교섭 요구안에 AI 도입 시 사전 통보와 노사 합동 영향평가, 합의 후 도입을 담았습니다. 파업도 교섭도 하지 않는 것이 ‘AI 노동력’의 매력이었다면, 사람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셈입니다.
제도도 이 속도를 따라잡으려 합니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AI Act)은 채용·평가·근로자 감시에 쓰이는 AI를 ‘고위험’으로 분류해 2026년 8월부터 인간의 감독과 차별 모니터링을 의무화하고, 2026년 1월에 생긴 우리 인공지능기본법(AI 기본법)도 고영향 AI에 사람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 평가하라는 영향평가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AI가 채용·평가·배치·해고를 좌우한다면 그 알고리즘 자체가 노사가 함께 들여다봐야 할 근로조건이라는 주장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인간 노동사회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9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억7000만개가 새로 생겨 순증 7800만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합니다. 숫자는 희망적이지만, 사라지는 자리와 생기는 자리가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데 함정이 있습니다. 이미 30여년 전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1995)에서 기계가 사람의 일을 밀어내는 세계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그렇게 생긴 생산성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렸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답은 어느 한쪽의 완승이 아니라 상호 양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용자는 해고에 앞서 재교육과 전환배치를 다 하고, 알고리즘의 판단에도 인간의 책임을 남기며, 사라지는 일자리의 비용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노동조합, 특히 교섭력이 강한 정규직 노조도 양보의 몫이 있습니다. ‘우리만 고액의 성과급을 받으면 된다’는 주장은 고스란히 울타리 밖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플랫폼 노동자에게 쏠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 깊게 만들 수 있습니다. AI와 로봇의 습격 앞에서 ‘지속 가능한 인간 노동사회’는 자동화의 과실과 충격을 안과 밖이 함께 나누는 상호 양보 위에서만 버틸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노사화합이 중요한 시대에 노동법이 끝내 붙들어야 할 명제는 “인간을 외면하지 마라”인 동시에 “서로 양보하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