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샌타모니카, 종착지에서 ‘트럼프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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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샌타모니카, 종착지에서 ‘트럼프주의’를 생각한다

입력 2026.06.12 15:09

수정 2026.06.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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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도로인 ‘루트 66’의 종착지를 알리는 샌타모니카의 표시판. 손호철 제공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도로인 ‘루트 66’의 종착지를 알리는 샌타모니카의 표시판. 손호철 제공

‘루트 66’. 유학 시절 박사과정을 끝내고 논문을 쓰기 위해 로스앤젤레스(LA)에 살면서 미주한국일보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가끔 머리를 식히러 들렀던 곳이 LA 서쪽 끝 바닷가에 있는 샌타모니카다. 샌타모니카 부두에 올라가자, 많은 상점과 인파 사이로 한 간판이 나타났다. 시카고에서 출발해 LA에서 끝나는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도로 ‘루트 66’의 종착지라는 표시다. 루트 66은 이제 사라졌고, 나는 이 도로를 타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루트 66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미국 답사를 이곳에서 끝내기로 했다.

‘돌아선 자유의 여신’. 두 달간의 여행을 통해 느낀 미국의 현주소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내가 찍은 사진처럼, 돌아선 자유의 여신이라고 답하고 싶다. 물론 원주민 학살, 노예제 등이 있지만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이 상징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는 ‘자유의 나라’, ‘이민자의 나라’, ‘기회의 땅’이었다. 이제 미국은 그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뉴욕 한가운데 울타리 없이 수백년 내려온 컬럼비아대학 인문대학은 팔레스타인 학살 항의 시위를 막는다고 펜스를 치고 경비원들이 학생과 교직원이 아니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이 보여주듯이 이민자의 나라, 기회의 땅도 아니다.

두 달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미국을 종단·횡단해 3만㎞를 달린 미국 역사 기행. 손호철 제공

두 달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미국을 종단·횡단해 3만㎞를 달린 미국 역사 기행. 손호철 제공

두 번째 떠오른 생각은 ‘팍스 아메리카의 몰락’, 미국의 몰락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바로 트럼프다. ‘미친 짓’처럼 보이는 그의 언어와 정책들, 이에 열광하고 있는 미국인은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역사상의 제국들을 연구한 에이미 추아에 따르면, 다양한 인재를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인종·종교·민족·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이 제국의 성공 요인이다. 제국들은 관용을 잃어버리고 외국인 혐오, 인종적·종교적·민족적 순수성을 추구할 때, 몰락했다는 것이다.

답사 당시 2024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트럼프 관련 상품들이 상점에 진열돼 있다. 손호철 제공

답사 당시 2024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트럼프 관련 상품들이 상점에 진열돼 있다. 손호철 제공

미국 제일주의는 ‘변형된 백인 우월주의’

현재의 미국이 바로 그런 꼴이다. 모든 것은 미국의 몰락에 대한 초조함의 발로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바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이 더 이상 위대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여행에서 확인한 것은 트럼프가 ‘돌출 인물’이나 일부에서 비판하듯이 ‘또라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인물이며, 미국 역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역사가 그렇지만, 특히 미국 역사는 ‘강자의 역사’다. 단순히 ‘강자의 역사’가 아니라 강자가 정의를 주장하고 정의를 독점하는 ‘강자의 정의의 역사’다. 그 핵심은 백인 우월주의, 인종주의다. 미국은 원주민 학살과 추방, 아프리카계 노예에 기초해 세워진 나라다. 이제 상당히 완화됐지만, 아직 그 잔재가 남아 있고 트럼프를 통해 다시 강화되고 있다.

세계화로 공장들이 폐쇄돼 트럼프주의의 중심이 된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주에는 트럼프 지지 팻말이 사방에 걸려 있다. 손호철 제공

세계화로 공장들이 폐쇄돼 트럼프주의의 중심이 된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주에는 트럼프 지지 팻말이 사방에 걸려 있다. 손호철 제공

트럼프는 백인 남자로 미국의 ‘주류의 주류’다. 게다가 내로라하는 갑부니, ‘주류의 주류의 주류’다. 그런 그에게 아프리카계 여성(카멀라 해리스)이라는 ‘비주류의 비주류’가 도전하니, 질 수밖에 없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그의 여러 발언을 보면 그는 확실히 인종주의자다. 21세기에 살면서도 이같이 이야기하니, 그가 19세기 초 앤드루 잭슨 시대에 태어났으면 대표적인 인종주의자인 “잭슨은 저리 가라”였을 것이다. 그의 뿌리는 미국의 뿌리인 백인 우월주의다.

최근 세계를 뒤집어놓고 있는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만 해도 그렇다. 이 역시 남북전쟁 당시 유럽에 국제 경쟁력이 뒤진 북부 자본이 주장했던 정책이다. 그는 미국의 오랜 전통인 먼로주의에 기초해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먼로주의가 ‘고립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는 군함으로 위협한 ‘군함 외교’였다. 트럼프주의도 이를 빼닮았다. 그리고 그의 미국 제일주의는 ‘변형된 백인 우월주의’다.

2000년 당시 트럼프가 사는 플로리다에서 이민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토마토를 든 자유의 여신상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트럼프주의에 의해 ‘기회의 땅’,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사라졌다. 손호철 제공

2000년 당시 트럼프가 사는 플로리다에서 이민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토마토를 든 자유의 여신상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트럼프주의에 의해 ‘기회의 땅’,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사라졌다. 손호철 제공

정치학에서 권력(power)은 ‘주어진 규칙 내에서 결과를 자기에서 유리하게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본다. 이는 주어진 상황에서 행위자가 갖는 ‘상황적 권력’이고, 진짜 권력은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경기 규칙 그 자체를 결정하는 ‘구조적 권력’이다. 남북전쟁 후 투표권을 얻은 아프리카계는 서서히 지방정부에서 공직에 당선돼 영향력을 갖게 된다. 상황적 권력에서 아프리카계가 권력을 늘려간 것이다. 그러자 백인들은 쿠데타를 해 아프리카계 공직자를 쫓아냈다. 인두세 등 투표권 자격조항을 만들어 아프리카계의 투표권을 뺏어버렸다. 경기 규칙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조적 권력이다.

30년 전, 미국(클린턴 대통령)은 자신들의 구조적 권력을 이용해 모든 나라에 교역만이 아니라 서비스 등 모든 분야를 개방하라고 강제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출범시켰다. 자신들이 주도한 이 세계화의 가속화로 탈산업화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나자, 이제 트럼프는 다시 구조적 권력을 이용해 자신들이 강요했던 WTO 체제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미국 제일주의라는 보호무역주의로 가고 있다.

내가 여행 내내 본 것은 사실 트럼프였다. 앤드루 잭슨에서 ‘1840년의 트럼프’를, KKK에서 ‘1930년의 트럼프’를 봤다. 운디드니, 윌밍턴, 미시시피, 앨라배마에서 ‘운디드니의 클린턴’, ‘윌밍턴의 트럼프’, ‘미시시피의 트럼프’, ‘앨라배마의 트럼프’를 봤다.

미국은 거꾸로 가는데,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미래는 예측하기에는 내 지식은 너무 짧다. 다만 몇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중국은 설사 ‘경제적’으로 미국을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세계의 패권국이 되기에는 ‘정치·문화적’으로 너무 낙후하고 ‘야만적’이다. 여러 역사관을 가보면, 미국은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최소한의 자기반성을 하고 있지만, 중국은 전혀 그런 것이 없다. 또 다른 사실은 세계 패권의 변화에는 항상 세계대전이 있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핵시대라는 변수다. 모두가 멸망할 핵시대에 세계대전이 가능한가?

소련·동구 몰락 후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라는 ‘자율주의’ 좌파들이 쓴 <제국>이 진보 학계에서 큰 인가를 끈 적이 있다. 이제 제국주의 시대는 끝났고, 세계가 하나가 되는 ‘제국의 시대’로 됐으니, 좌파는 낡은 이론에 기대서 ‘반세계화 운동’ 같은 것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20세기 초, 칼 카우츠키가 주장한 ‘초제국주의론’ 비슷한 것이었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을 통해 이를 비판하고 ‘제국주의 간의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는 다시 레닌이 예측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지금은 ‘복합위기의 시대’다. 불황이 장기화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등 경제위기가 구조화되고 우크라이나, 가자 학살, 이란침공 등 전쟁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SNS와 유튜브의 확산과 함께 공론장과 민주주의의 위기가 전면화되고 있다.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기후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노동,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몇년 전 지구를 휩쓴 코로나19처럼 팬데믹 위기가 일상화돼 있다.

이 같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본 ‘세계의 리더’인 미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 보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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