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연체동물이 포식자로부터 연약하고 부드러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딱딱한 껍데기(패각)를 가지고 있는 반면, 복족류에 속하는 갯민숭달팽이는 패각이 없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갯민숭달팽이의 몸은 외부로 노출돼 있어 작은 물고기가 한입에 삼켜버릴 만하다. 게다가 움직임마저 느리다 보니 표적이 되면 도망갈 방법이 없다.
갯민숭달팽이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바로 자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2012년 인도네시아 마나도해협에서 히드라 촉수를 갉아먹고 있는 갯민숭달팽이를 만났다. 이들은 자포를 통째로 먹은 후 다른 생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면 이를 발사해 몸을 보호한다. 자포는 촉수 속에 들어 있는 작살처럼 생긴 무기다. 이 작살 구조는 용수철처럼 감겨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튕겨나가듯 발사된다. 또 다른 종은 자포를 발사할 수는 없지만, 자포의 독성을 몸에 흡수할 수 있다.
포식자 입장에서 볼 때 갯민숭달팽이는 좋지 못한 경험을 안겨줬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자포에 쏘이고 멋모르고 먹었다가 독성으로 인한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결국 포식자들은 ‘저 친구는 건드려 봤자 손해야’라는 경험을 유전적으로 후손들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연약한 동물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숨기거나 빠른 움직임으로 도망가는 것과 달리 이들은 오히려 몸을 화려하게 치장한 채 ‘먹을 테면 먹어보라’는 식으로 몸을 노출한 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