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일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투명인간’…300만표가 사라졌다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6월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앞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온종일 일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투명인간’…300만표가 사라졌다

입력 2026.06.08 06:00

수정 2026.06.08 06:02

펼치기/접기
6월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앞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6월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앞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르포] “금천구 공약 중에는 바뀌면 좋을 것이라고 체감될 만한 건 없었어요.”

인천에 살면서 서울 금천구 가산동으로 통근하는 개발자 김도우씨(26)가 ‘6·3 지방선거로 바뀌었으면 하는 점’에 대해 묻자 한 말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살면서 가산동 한 의류회사에서 일하는 양완식씨(64)는 같은 질문에 “여기(금천구)서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경기 광명시에서 가산동으로 출퇴근하는 백수홍씨(41)는 같은 질문에 아예 “기대를 접었다”고 했다. 백씨가 사는 광명에서는 출퇴근길 교통체증이 가장 큰 현안이지만, 서울시와의 협조가 필요한 이 문제에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기도민인 백씨가 교통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서울 정치인을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5월 29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G밸리(디지털산업단지)에서 만난 세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곳과 일하는 공간이 다르다는 점이다. 각각 광명과 영등포, 인천에 살지만 하루 대부분 시간을 가산동에서 보내는 이들은 이른바 ‘생활(체류)인구’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지가 아닌 지역을 통근, 통학, 업무 등의 목적으로 방문·체류하는 사람을 말한다. 교통이 발달하고 도시가 광역화됨에 따라 생겨난 개념이다.

하루 10시간 넘게 머물고, 세금을 내고, 소비하지만 이들은 선거철이면 사라진다. 주소지 중심 정치제도 아래 전국 325만 생활인구는 도시를 움직이는 주체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다. 6·3 지방선거로 지방권력이 유지 혹은 교체됐지만, 이들의 실생활과는 무관하다. ‘생활인구’로 통칭되는 이들이 일상을 보내는 이곳 서울 금천구 가산동은 정치권에 ‘투명도시’일 뿐이다.

이들은 소득·소비 활동을 통해 지역에 기여하고 지자체 행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데도 정작 정치적 절차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선거철 정치권은 투표권이 있는 정주인구의 민심에만 촉각을 세운다. 후보들은 출퇴근 교통 같은 생활권 의제보다 선거철 신도시 개발·구도심 재개발 등 부동산 공약을 전면에 내건다.

이번 서울시장선거 역시 출퇴근 교통이나 생활권 문제보다 부동산정책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견제하겠다고 내세운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정주인구 중심의 선거 구도는 다시 한번 확인됐다. 광역통합이나 복수주소제 등이 변화를 만들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주간경향은 선거 직전인 5월 29일과 6월 1일 양일간 서울의 대표적인 생활인구 밀집 지역인 금천구 가산동을 찾아 ‘투명도시’의 민낯을 살펴봤다.

6월 1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앞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금천구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다. 문광호 기자

6월 1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앞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금천구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다. 문광호 기자

가산동 생활인구 3분의 1은 비서울 거주자

“직장인이 많으니까 출퇴근 시간에 너무 붐벼요. 제가 다니는 직장에도 금천구 주민은 거의 없고 서울 다른 구에 사는 사람 반, 경기도에 사는 사람 반 정도 돼요.”

사전투표를 마치고 나오던 회사원 주상아씨(28)는 가산동의 특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통계상으로도 가산동은 종로, 강남, 여의도 등 전통적인 도심을 제외한 지역 중 야간 인구 대비 주간 인구 수가 가장 높은 곳에 속한다. 서울시-KT 서울 생활인구 통계에 따르면 가산동의 평일 야간 생활인구는 약 4만7600명인데 반해 평일 낮 동안 생활인구는 약 10만3200명으로 2배가 넘는다. 서울 424개 행정동 중 12번째로 높은 수치다.

가산동은 낮시간 ‘서울 외에서 유입’된 생활인구 비율도 33.9%(3만4936명)로 서울 424개 행정동 중 가장 높다. 가산동에서 마주치는 시민 3명 중 1명은 지선 투표로는 이 지역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 인구주택총조사 통계에 따르면 이처럼 시·도 경계를 넘어 통근·통학하는 인구수는 전국적으로 약 325만명(2020년 기준)에 달한다.

6월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6월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도시 인프라가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높은 생활인구 밀도는 교통체증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2026년 4월 평일 오전 8~9시 기준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리는 승객 수는 한국철도공사·서울교통공사 전 역 중 1위다. 경기에서 가산동 방향 도로는 만성 정체고, 버스도 승객들로 가득 찬다. 가산동에서 직장생활 중인 20대 후반 여성 송모씨는 “수출의 다리 쪽에 한번 갇히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마을버스도 별로 없는데 배차 간격도 엄청 길다”고 말했다.

교통 문제는 일부 지역에서 안전 문제로 비화하기도 한다. 2023년 출근 시간대 김포골드라인 전동차 안에서는 호흡 곤란 증세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생활인구라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는 문제다. 지자체 행정의 우선순위가 생활인구보다 정주인구에 있기 때문이다. 생활인구의 소비·사업장 활동 결과 지자체 세수로 걷히는 부가가치세(지방소비세), 법인 지방소득세 등도 통상 관내 주민 복리를 위해 쓰인다.

‘표가 되지 않는 곳’이다 보니 선거 무풍지대

정치권 역시 표가 되지 않는 이들의 바람에는 무관심하다. 지선 기간 가산동에 걸린 선거 현수막에는 직장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은 없었다. ‘데이터센터 전면 불허’, ‘기업 유치’, ‘공군부대 부지 개발’. ‘돌봄을 촘촘하게’ 등 거주 주민들을 겨냥한 정책이 주로 담겼기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구에 살면서 가산동으로 출퇴근하는 최재혁씨(49)는 데이터센터 공약을 아느냐고 묻자 “잘 모른다. 여기는 교통이 제일 문제”라고 답했다. 최근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 여성 이모씨는 하수구 악취와 러브버그 등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으며 “저도 (문제 해결을 위해) 이쪽에 투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산동에서 건축 관련 자영업을 하는 백수홍씨는 하루 10시간 넘게 금천구에서 일을 본다. 그는 “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금천구에서 행정 서비스가 원활히 되는 게 중요한데 관련 공약은 본 적이 없다”며 “가장 이슈가 되는 부동산 이런 얘기만 하니까 아쉽다. 정책적으로 이런(행정 간소화) 부분을 반영해줬으면 하지만 (정치) 구조상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표가 되지 않는 곳’이다 보니 선거운동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선 막바지인 6월 1일에도 가산동 G밸리 일대는 ‘선거 무풍지대’였다. 유세차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선거 노래도, 선거운동원들의 커다란 팻말과 율동도 없었다. 가산디지털단지역 7번 출구에서 김밥을 판매하는 50대 여성 A씨는 “올해는 여기서 선거운동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며 “여기(지하철역)는 사는 사람(주민)이 안 다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선거철 정치권이 생활인구를 일종의 ‘유령’ 취급하는 셈이다.

6월 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일대 차량 정체로 차들이 서행하고 있다. 문광호 기자

6월 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일대 차량 정체로 차들이 서행하고 있다. 문광호 기자

정치권이 부동산 공약 내놓는 이유

정치권에서는 정주인구 중심으로 설계된 선거 구조에서 애초에 내세울 수 있는 공약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반박이 나온다. 이번 지선 국민의힘 공약 개발에 관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 구조상으로는 부동산, 재개발 등 토목 이슈를 위주로 공약 개발을 하게 된다”며 “직장이나 직장 근처에서의 불편이 있다고 (거주지) 정치인을 욕하는 건 아니지 않나. 후보들은 주거환경 이런 부분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금천구청장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주민 동의 없는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공약을 내세웠다. ‘전자파가 건강과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데이터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금천구 주민 여론을 반영했다.

특히 대선·총선보다 더 작은 단위의 선거를 치르는 지선은 선거구와 생활권 불일치가 커 정주인구 중심의 정책 설계 경향이 더 크다. 금천구를 예로 들면 서울시의원 금천구 제1선거구는 가산동과 독산1~4동, 금천구의원 가선거구는 가산동과 독산1동 주민만을 유권자로 둔다. 해당 선거구 서울시의원, 금천구의원 후보 선거 공보물에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데이터센터 건립 백지화를 우선적으로 내세우고 부동산 개발 공약을 강조했다.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서울 금천구 지역 후보들의 데이터센터 관련 공약 내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게재 선거공보 갈무리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서울 금천구 지역 후보들의 데이터센터 관련 공약 내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게재 선거공보 갈무리

광역통합·복수주소…생활인구 민의 반영하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방안 중 하나가 광역통합론이다. 관할 지자체가 나뉘어 있다면 상호 협력을 전제해야 하는 일들을 상위 단위에서 해결하자는 것이 골자다. 실제로 이번 지선에서 처음으로 통합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는 후보들이 교통·의료망 등을 통합해 효율적이고 입체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시민 참여 제도를 통해 주소 중심 정치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핵심은 세금이 있는 곳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복수주소제를 채택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4년 발간한 ‘인구감소지역 복수주소제 도입의 가능성과 한계’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시민은 생활 중심지를 ‘주거주지’로, 추가 거주지를 ‘부거주지’로 등록할 수 있다. 부거주지에도 제2주택세 등 세금이 부과되는 만큼 부거주지 주민도 주거주지 주민과 유사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복수주소제가 부동산 투자나 학군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정부 들어 확대 추진 중인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 등의 혜택만 누리고 실질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복수주소제 도입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정확한 정책 수요를 파악하고 예산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복수주소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영근 한국행정연구원 정부조직디자인센터 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 생활인구 개념은 너무 포괄적이라 지자체가 인위적으로 산정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의미 있게 집계하려면 복수의 주소를 인정해서 등록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행정 수요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예산도 그 수요를 바탕으로 요구, 집행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주요 기사
    • 많이 본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