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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넘어 통한다는 것

입력 2026.06.05 14:58

지난 5월 16일(현지시간) <올 오브 어 서든>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가운데)과 영화의 두 주연배우 오카모토 다오(왼쪽), 비르지니 에피라가 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칸의 포토콜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5월 16일(현지시간) <올 오브 어 서든>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가운데)과 영화의 두 주연배우 오카모토 다오(왼쪽), 비르지니 에피라가 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칸의 포토콜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출장을 다녀왔다. 그중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와의 인터뷰가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그는 올해 <올 오브 어 서든>으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하마구치와의 인터뷰는 한국어로 주고받는 <호프> 등 한국 영화 인터뷰와는 달랐다. 일단 한국어 통역이 없었다. 나는 영어로 질문을, 하마구치는 일본어로 대답을, 통역사는 영어로 전달을 할 터였다. 한 세션에 기자는 총 5명, 시간은 단 25분. 통역까지 고려하면 각자 질문 1개만 해도 빠듯할 시간이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물어야 했다. 미리 노트북 메모장에 질문을 쓰고, 추리고, 영어 번역을 달아뒀다.

5월 19일(현지시간) 오전,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유럽권 3명, 영미권 1명으로 추정되는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다들 종이수첩을 손에 쥐고 있었다. 노트북을 든 건 나뿐이었다. ‘타자 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곁눈질하며 방에 들어갔다. 크고 어두운 방, 하마구치와 악수를 했다.

외신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휴대전화 녹음기를 켜 하마구치 앞 책상에 내려뒀다. ‘아, 타이핑 않고 녹음만.’ 질문을 적어둔 노트북을 접을 수는 없었으나, ‘나도 타이핑은 말자’ 싶었다.

<올 오브 어 서든>은 프랑스인 요양보호사 마리루와 암에 걸린 일본인 극 연출가 마리가 갑작스럽지만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되는 얘기다. 처음에는 상대에 맞춰 서로의 언어(일본어·프랑스어)로 말하던 두 사람은 갈수록 각자의 언어로 자연스레 소통한다. 각자의 언어로 말하는 배우들이 함께 꾸리는 연극이 주요 소재였던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도 연상됐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작품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이유가 있나요?’ 한국말이었다면 툭 물었을 질문을, 번역해둔 영어 문장을 정확하게 읽는 데 집중하며 어색하게 뱉었다. 진중하게 듣던 하마구치는 ‘지금 이 상황’에서부터 답을 시작했다.

“방금 영어로 질문을 주셨고, 저도 내용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답하는 건 어려워요. 제 언어 능력이 중·고등학생 수준이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니 훌륭한 통역사분들의 도움을 받죠. 하지만 만약 상대가 마리루처럼 일본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영화 속과 같은) 그런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거죠.”

그는 이어 “(더군다나) 서로 외국어로 말하고 있는데도 서로를 이해하는 건 ‘작은 기적’ 같은 것”이라며 “관객에게 단 한줄의 대화도 하나의 기적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고 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수록 몸짓과 감정 상태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게 된다고도 했다.

‘언어능력이 중·고등학생 수준이 되는 느낌’이라는 말에서부터 격하게 끄덕이던 나는 ‘이 순간’ 또한 <올 오브 어 서든>에서 하마구치가 포착하려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하마구치의 말은 자신의 영화만큼이나 길고 유려했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그의 진중함이 한 박자 뒤의 영어 번역보다 먼저 표정으로 전해졌다. 그게 신기했다.

노르웨이와 이탈리아 등에서 온 외신 기자들도 경청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어린 질문을 건넸다. 프랑스에서 일본인 감독과 영어를 경유해 대화하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같은 영화를 보고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대화에서 느껴졌다. 인터뷰는 역시나 질문 하나씩 하고 나니 끝났지만, 아쉽기보다는 충만했다. 언어를 넘어선 소통이라는 ‘작은 기적’을 만나고 온 기분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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