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1890년대, 드레퓌스 사건에 불을 지핀 건 ‘라 리브르 파롤’이라는 황색 언론이었다. 프랑스 국방부가 조작 문서를 이 언론에 흘렸고, 담당 기자는 이 조작된 정보를 바탕으로 연일 폭로를 이어가며 무고한 드레퓌스를 반역자로 몰아갔다. 당시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 정서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자극을 좇는 당대의 황색 저널리즘 환경에 ‘고속 윤전기’라는 대량 인쇄의 신기술이 결합하면서 조작된 정보는 신뢰의 정보원으로 둔갑했고, 프랑스 사회를 빠른 속도로 분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19세기판 마녀사냥의 대표적 사례로 이 사건이 기록된 배경이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비극적인 역사적 평행이론이 우리 눈앞에서 실제로 재현되고 있다. 이번엔 고속 윤전기의 역할을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대신하고 있다. 공식 정부 문서로 위장한 AI 조작 자료를 언론사 기자에게 은밀하게 유통해 갈등형 보도를 유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 문서와 동일한 양식, 문맥상 그럴듯한 내용, 생산자로 추정되는 이의 사회적 지위까지 믿을 만한 구석은 상당했다. 검증 과정에서 당사자의 반론을 확인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으레 그렇듯 비밀을 들켜버린 ‘제 발 저린 부인’ 정도로만 치부됐다. 결과적으로 AI에 의해 조작된 정보 출처로 판명되면서 기사는 철회됐지만, 신뢰 시스템엔 치명적인 균열이 간 뒤였다.
우리 사회는 AI 기반의 ‘새로운 기만 시대’에 접어들었다. AI가 작성한 기사, 영상, 이미지는 일상이 됐다. 여기에 더해 전통 언론사들의 검증 체계마저 무력화하는 다양한 기만 기법이 AI의 도움을 받아 침투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구별하기 힘든 AI 합성 제보 문서를 기자들에게 전달해 여론을 유도하는 행위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기만술은 한국사회의 치명적인 약점, 극단적 이념의 대결 구도라는 틈새를 공략한다. 관심을 확보하기 위한 트래픽 경쟁도 검증 과정의 약화를 부추기고 있다.
영미권에선 AI가 생성한 가공의 인물이 오피니언 칼럼을 기고하거나, AI가 합성한 정치인의 가짜 발언이 여과 없이 지면에 게재되는 대형 오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신뢰의 상징’이라 불리는 뉴욕타임스도 AI 기반 오보로 몇 차례나 정정하고 사과를 한 바 있다. AI 조작 검증 체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좀체 잡히지 않는다. 이를 방치할 경우 한 사회가 신뢰의 파산 상태에 직면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믿을 만한 정보 소스가 사라진 시대, 시민들은 진실보다는 자신의 이념을 강화해주는 오염된 소스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초래할 비극은 1890년대 극단적 분열 상태로 마녀사냥이 일상화했던 프랑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안이 없지는 않다. 최초 생산된 원본 정보에 암호화된 디지털 서명을 자동으로 부착하는 ‘디지털 출처 인증’ 기술이다. C2PA라는 이름으로 표준화하기 시작한 이 기술은 전 세계 굴지의 언론사를 비롯해 AI 기술 개발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다. 원본 문서에 AI가 조금이라도 개입할 경우 그 이력이 고스란히 남아 ‘C2PA 검증기’에 의해 즉각 탐지될 수 있다. 정보의 오염 여부를 빠르게 식별함으로써 기자들의 오인을 막아준다. 정부가 이 표준을 도입하게 되면, 생산 문서의 원본성을 기자들이 쉽게 판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체계는 자리 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황색 저널리즘 시대가 저물게 된 건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던 언론사들이 스스로의 성찰을 바탕으로 객관주의 방법론과 윤리강령이라는 더 높은 수준의 신뢰 시스템을 개발하고 나서였다. 크로스체킹이라는 내부 생산 프로토콜을 확립한 것도 기여했다. 언론 산업은 분명 이 파고를 훨씬 높은 검증 시스템의 개발로 넘어설 것이다. 다만 기술적 대안이 마련되더라도 극단화한 이념 분열이 지속한다면 어떤 해법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역사의 엄중한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