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0) 전후 국민국가의 젠더 정치와 비국민 여성의 수난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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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0) 전후 국민국가의 젠더 정치와 비국민 여성의 수난 서사

입력 2026.06.05 14:49

수정 2026.06.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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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양선 한림대학교 교수·문학평론가

최정희 <녹색의 문>

작가 최정희. 경향신문 자료사진

작가 최정희.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정희의 <녹색의 문>은 일제 말기와 해방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의미심장한 시기를 배경으로 이상적 삶을 동경하던 여학생이 섹슈얼리티를 훼손당하고, 애인과 남편의 변심으로 인한 수난을 겪으면서 단단한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여성 성장 서사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한국문학의 주요 플롯인 여성수난사와 여성 성장 서사의 궤적을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가부장적 질서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젠더 정치학을 수행하고 있다.

여학생 시절 주인공 유보화는 “하늘에 문 달린 집 보리밭처럼 푸른 문(門) 안에 살고 있는 어느 나라 왕자와 같은 눈이 서늘한 남자와”의 연애를 꿈꾼다.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신사참배가 일상화된 식민지 현실은 흐릿한 배경으로 존재할 뿐 유보화는 낭만적 연애를 꿈꾸면서 막연히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기를 보낸다. 그런 그녀가 동경 여자미술학교로 유학을 가서 우연히 하숙집 이웃이었던 김영서를 만나면서 땅 위의 비천한 세계로 점진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사랑을 약속했던 김영서는 징병을 피해 사라지고, 물질적·정신적 지원자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그녀는 김영서의 친구였던 이성배에게 성폭력을 당해 임신까지 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여학교 시절 동성애적 애착 관계에 있던 도영혜가 김영서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제어되고 처벌받는 여성의 욕망과 목소리

유보화는 가부장적 순결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매장이라는 공포 속에서 결국 이성배와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생존의 세계로 진입한다. 신여성이지만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자처하고, 서울로 올라와서도 병든 남편을 대신해 교사 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다.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신의 아이와 김영서의 아들인 승국이를 돌본다. 유보화의 성장이 다다른 마지막 지점은 여간첩 혐의를 받고 재판정에 선 도경혜를 변호하고, 김영서의 악행을 폭로하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학교 시절 동경했던 서남령 선생의 유학길을 배웅하면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건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여성 수난 서사의 또 한 축을 이루는 인물은 도경혜이다. 그녀는 여학교 시절 김영서를 추종하여 반일 시위를 주동한다. 해방기에는 남로당 간부인 성완수와 사랑에 빠져 공산주의자가 된다. 성완수가 홀로 월북한 뒤에는 자신을 지켜줄 우익인사의 첩이 된다. 도영혜는 아이를 낳지만 모성애는 없으며, 민족지사와 친일파, 좌익과 우익을 넘나들며 남성 주체들을 모방한다. 그리고 이 모방을 통해 생존을 이어가다가 간첩으로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그녀는 확고한 정치관이나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혹은 사랑한다고 믿는 남성의 정치적 노선을 그대로 모방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 두 여성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익 민족주의로 재편된 국가 질서에서 어떻게 여성의 욕망과 목소리가 제어되고 처벌받는지를 보여준다.하지만 작가는 이 여성들을 수난서사 속으로 밀어 넣는 비열하고 무책임한 남성의 이야기를 반대편에 배치한다.

한때 낭만적 사랑을 꿈꾸던 이 여성들이 해방된 국가의 국민으로 안착하지 못하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는 좌와 우, 민족주의와 친일이라는 이념적 지향성과 무관하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훼손하면서 주류에 안착한 남성들이다. 김영서, 성완수, 이성배 등 남성 인물들은 민족주의자, 친일파, 좌익 사상가와 우익 검사로 현대사의 흐름을 주도하기도, 바꾸기도 하지만 실제 사적 영역에서는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가차 없이 버린다. 학병을 피해 도망갔다가 임시정부의 요인 신분으로 귀국해 반공검사가 된 김영서는 도영혜를 간첩 혐의로 법정에 세우기까지 한다. 좌익 사상가 성완수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동거하던 도영혜를 버리고 월북해 버린다. 이처럼 민족과 사상을 방패 삼아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했던 부도덕한 남성들은 유보화와 도경혜와 같은 여성들이 정상적으로 해방과 전후 한국 사회의 구성원에 편입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도영혜의 간첩 혐의 재판 장면은 성적으로 문란하고, 사상적으로 불온한 여성을 타자화함으로써 전후의 질서를 재건하려는 국가의 사법 질서와 그 질서에 균열을 내려는 여성들 사이의 각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영서가 주도하는 이 재판에서 남성은 법의 이름으로 여성을 ‘비국민’으로 낙인찍어 국가 질서 바깥으로 내몬다. 하지만 유보화는 바로 남성이 주관하는 법정을 이용해 이들의 위선과 부정을 폭로한다. 그녀는 여자는 애초에 주체적인 ‘주의 사상’을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도영혜의 말을 인용한다. 도영혜의 좌익 부역 행위는 정치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사랑하는 이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맹목적 정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약 김영서가 그녀를 버리지 않았더라면, 도영혜는 좋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국가에 봉사하는 ‘선량한 백성’이 되었을 것이라는 유보화의 항변은 국가 권력의 상징인 사법 공간에서 남성의 도덕성을 심문함으로써, 이 법정을 젠더화된 도덕의 법정으로 바꿔 버린다.

여성문학 불온성 징후적으로 보여준 첫 작품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남성의 이념을 모방하는 여성, 욕망을 포기하고 운명에 순응하며 어머니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여성. 이 여성들의 ‘비정치성’과 ‘수동성’은 언뜻 남성 권력이 규정한 여성의 모습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여성은 정치적 사유 능력 자체가 결여된 존재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으로는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유보화의 폭로와 검사 김영서의 침묵을 설명하기 어렵다. 정작 피고석에 앉아야 할 죄인은 민족과 국가의 대표자를 자처하며 일부일처제의 바깥을 떠도는 여성들에게 죄를 덧씌우는 비열한 남성들임을 소설은 암묵적으로 말한다.

가부장적 통치에 의해 밀려나고 추락하던 여성들이 도달한 최후의 장소는 ‘일’과 ‘모성’의 영역이다. 유보화는 감옥에 갇힌 도영혜를 대신하여 그녀의 아들 승국과 자신의 아들 석이를 온전히 책임지며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이 여성들은 이데올로기와 남성 가부장의 질서에서 벗어난 자리, 정념이 표백된 자리에서 일하고 아이를 기르는 ‘남자 없는’ 삶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물론 이 여성들의 식민지 경험과 좌우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날카롭지도 비판적이지도 않으며, 상당 부분 비정치적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민족주의와 반공주의 담론에 동원되지도, 그리고 그 담론 속으로 회수되지도 않는 여성들의 서사를 통해 지배 질서에 미세하게 균열을 낸다. 1950년대 여성문학은 양공주, 미망인, 아프레걸 등 전후 가부장적 국가주의가 도덕적 재건을 명분으로 배제했던 불온한 여성들을 문학의 자리로 불러와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했다. <녹색의 문>은 이런 1950년대 여성문학의 불온성을 징후적으로 보여준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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