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자라섬이 온통 붉게 물들었습니다. 드넓은 꽃밭을 가득 메운 붉은 양귀비들이 초여름 햇빛을 받아 활짝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한송이 한송이는 여린 꽃잎 4장이 전부지만, 수만송이가 한데 모이자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붉음이 붉음을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더 붉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양귀비만이 아니었습니다. 꽃밭 한편에서는 금계국의 노란빛이 번졌고, 그 사이로 보랏빛 라벤더와 흰 안개꽃이 끼어들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키와 빛깔로 피어난 꽃들이 서로의 자리를 빼앗지 않으면서도 어울렸습니다. 가장 화려한 꽃이 무대를 독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작고 수수한 꽃들도 그 곁에서 제 몫의 봄을 살았습니다.
꽃밭을 걷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도 이런 것이 아닐까. 가장 크고 붉은 목소리만 가득 찬 광장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빛깔의 목소리들이 서로를 지우지 않으며 함께 피어나는 풍경. 자라섬의 봄은 그걸 이미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