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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파업 앞에 ‘노동 투사’ 된 보수언론?

입력 2026.05.29 14:50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의 삼성 깃발 모습. 문재원 기자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의 삼성 깃발 모습. 문재원 기자

가끔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반응이 더 흥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게는 삼성전자 파업이 그랬다. 삼성전자라는 한 기업의 노사관계 이슈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도 분석해볼 만한 일이지만, 특히 재밌었던 건 파업을 공격하기 위한 일부 보수·경제지의 논리 변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노조와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을 주면 기업이 휘청일 것이라는 분석,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예측,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지면을 덮었다. 경영계 입장에서는 할 만한 주장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이미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귀족노조’ 프레임도 등장했다. 연봉 수준과 헌법상 노동권은 전혀 별개이기에 귀족노조 프레임은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하지만 내 의견과 상관없이, 보수·경제지가 귀족노조 프레임을 쓰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재밌는 건 그다음이었다. 정부·경영계의 우려와 경고에도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 추진 방침을 굽히지 않자, 보수·경제지들은 ‘노동운동의 당위’를 들고나왔다. 어제까지 노조를 헐뜯던 이들이 갑자기 ‘노동운동은 연대가 중요하다’고 부르짖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직원들의 이익만 챙길 뿐이라고, 삼성전자의 이윤에 이바지한 협력사·하청 노동자들이나 우리 사회의 더 많은 노동 약자와 연대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한 보수 신문은 삼성전자 노조의 투쟁을 ‘약자 연대와 평등 추구가 사라진, 밥그릇만을 위한 투쟁’이라고 했다. 다른 보수 신문은 ‘개인 이익만 챙기고 있다’며 ‘노동운동의 퇴보’를 우려했다. 한 경제지는 ‘노동자 연대 의식이 사라지고 돈만 남았다’고 개탄했다. 다른 경제지 기자는 칼럼에서 무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언급하면서 노조는 비정규직 등 사회 약자를 대변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세상에! 마르크스가 돌아온 줄 알았다. 하루아침에 민주노조 운동가가 돼버린 걸까. 이전까지 저분들이 노조나 파업을 바라본 시각은 정확히 반대였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하청·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시장 약자들에게 헌법상 노동권을 보장하자는 ‘노란봉투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 유연성’을 신줏단지처럼 모시지 않았나. ‘노동존중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가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고 윽박지른 것만큼이나 신기한 반전이다.

또 재밌는 건 삼성전자 노조는 몇년 전 일부 보수·경제지가 찬양하던 이른바 ‘MZ 사무직 노조’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당시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은 MZ 노조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상급 단체에 들어가지 않고, 그런 ‘강성 노조’와 달리 파업 등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며 어화둥둥 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말을 안 듣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갑자기 회초리를 꺼내든 것이다.

여하간 저분들은 삼성전자 파업이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하던 노동운동의 언어까지 빌려올 정도로. 어쨌든 삼성전자 파업 이슈도 지나갔다. 이제는 보수·경제지가 스스로 한 말을 일관성 있게 지키는 멋진 모습을 기대해본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보호받고 연대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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