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로스앤젤레스, 잊힌 아시아계 배척과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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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로스앤젤레스, 잊힌 아시아계 배척과 차별

입력 2026.05.29 14:45

수정 2026.05.2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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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스페인이 1791년 로스앤젤레스를 처음 개발할 때 만든 LA 플라자. 손호철 제공

스페인이 1791년 로스앤젤레스를 처음 개발할 때 만든 LA 플라자. 손호철 제공

‘중국인과 한국인 배척 리그.’ 1905년에 샌프란시스코에 결성된 백인 조직이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몰아내자는 조직이다. 이로부터 43년 전인 1862년에는 캘리포니아주가 공장에 취업하는 아시아인과 고용주에 매달 세금을 부여하는 반(反)쿨리법을 제정했고, 1882년에는 미 의회가 중국인의 이민 자체를 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했다.

원주민 학살, 아프리카 노예와 같은 ‘거대 참사’에 밀려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역사는 아시아계와 같은 다른 유색인종, 멕시코계와 같은 다른 소수민족의 수난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아시아계의 수난을 찾아 LA(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2000년대 이후 중국계 이민이 급증하면서 다운타운에 있던 차이나타운의 많은 업소가 근교로 옮겨갔지만, 아직도 일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양계로 제일 먼저 미국에 자리 잡은 중국계가 LA 다운타운에 세운 중국계 아메리칸 박물관. 손호철 제공

동양계로 제일 먼저 미국에 자리 잡은 중국계가 LA 다운타운에 세운 중국계 아메리칸 박물관. 손호철 제공

아시아계의 미국 이민의 격발쇠는 엉뚱하게도 아편이었다. 1840~1850년대에 중국이 아편 수입을 금지하자 영국이 광둥성(广东省·광동성)을 공격했고, 지역 중국인들은 전쟁을 피해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터진 것이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다. 광둥성의 중국계는 전쟁을 피하고 일확천금을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한말의 격동 속에 우리도 102명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했다.

이제 아시아계는 2023년 기준 약 2500만명으로 미국 인구의 7%를 차지하는 중요한 소수민족이 됐다. 이는 백인 58.2%, 멕시코계 20%, 아프리카계 12%에 이어 4번째 집단이다. 국가별로는 중국계 550만명, 인도계 520만명, 필리핀계 460만명, 베트남계 230만명, 한국계 200만명, 일본계 160만명 순이다.

백인들이 중국계 죽여도 무죄

LA 플라자. 다운타운에 있는 이 광장은 스페인이 1791년 처음 LA를 개발할 때 만든 광장으로 거대한 나무 앞에 기념판이 설치돼 있다. 광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 건물이 나온다. 그곳에 ‘중국계 아메리칸 박물관’이 있다(한국계 아메리칸 박물관은 미주한국일보가 주도해 논의 중이고 아직 없다).

1850년 16명에 불과했던 LA 카운티의 중국계 인구가 2000년에 ‘32만9350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을 쌀알로 보여주고 있다. 손호철 제공

1850년 16명에 불과했던 LA 카운티의 중국계 인구가 2000년에 ‘32만9350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을 쌀알로 보여주고 있다. 손호철 제공

요세미티공원 남쪽인 워워나에 가면 낡은 통나무집이 하나 나온다. 통나무집 앞 바위에 ‘중국계 세탁소’라고 쓴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중국인들이 공원 건설 과정에서 세탁소, 주방, 도로 건설에 기여한 것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다. 요세미티만이 아니라 미 대륙을 횡단하는 횡단열차는 중국계의 노동이 없었다면 건설할 수 없었다. 1863~1869년 진행된 철도 건설에서 약 1만2000명의 중국계 노동자들이 백인들보다 싼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힘든 일을 해야 했고, 1000~1200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공헌은 잊혔다.

‘1871년 로스앤젤레스 학살.’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단어다. 1871년 LA 차이나타운서 중국계 갱단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우발적으로 백인 경찰 1명이 사망했다. 분노한 백인들은 14세 어린이 등 20명의 중국인을 린치해 죽였다. 하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들은 기소됐지만, ‘아시아인은 백인에 대해 증언할 수 없다’는 법에 의해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중국인의 침입, 그들이 오고 있다.’ 1873년 8월 27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1면 기사로 중국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1870년대 들어 미국이 심각한 경제불황을 겪고 있었다. 불황 속에서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들은 중국계를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적’으로 간주했고, 언론은 이를 부채질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원주민은 원래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고 아프리카계는 자신들이 필요해 끌고 왔다면, 새롭게 나타난 유색인종 중국인은 또 다른 혐오의 대상이었다.

1840년대 골드러시 속에 캘리포니아에 온 중국계 노동자들. 손호철 제공

1840년대 골드러시 속에 캘리포니아에 온 중국계 노동자들. 손호철 제공

‘값싼 중국노동과 비도덕한 중국 여자를 막아야 하기에 중국 여자의 입국을 금지한다.’ 1875년 제정된 페이지법이다. 1879년 캘리포니아의 주 헌법은 기업의 중국인 고용을 금지했다. 이 같은 배척의 결정판이 1882년의 ‘중국인 배척법’이다. 특정 인종의 이민을 원천적으로 법으로 봉쇄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3년 뒤 아시아계에 대한 가장 심각한 공격이 발생했다. 와이오밍 록스프링 광산에서 백인 광부들이 28명 중국인 광부를 살해하고 500명을 마을 밖으로 추방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박물관은 반(反)중국 인종주의를 보여주는 당시의 신문, 삽화 등을 잘 전시해놓았다.

중국계를 쫓아내야 한다고 선동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 만평. 손호철 제공

중국계를 쫓아내야 한다고 선동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 만평. 손호철 제공

차별의 역사 잊지 말고 연대 계속해야

일본계는 메이지 유신과 함께 1868년 처음 150명이 하와이에 이민했지만, 본격적으로 대량 이민이 이루어진 것은 1882년 중국인 이민이 금지되고서다. 중국인이 담당하던 싼 노동을 대신할 일본인들이 1885년부터 대량 입국했다. 한국인도 한말의 혼란 속에 1903년 이후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왔다. 1924년 미국은 아시아 출신의 시민권 획득과 땅 소유를 금지했다.

‘한국인, 말레이시아인, 또는 몽골족은 백인과 결혼할 수 없다.’ 여기서 몽골족이란 동양인을 포괄해서 부른 것인데, 1913년 사우스다코다주가 제정한 법이다. ‘인종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아시아인에 대한 결혼 금지는 1896년 애리조나, 네바다, 오리건, 유타주가 중국인과 백인의 결혼을 금지하면서 시작됐다. 1902년 캘리포니아는 몽골족과의 결혼은 무효라고 결정했다. 1967년 연방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릴 때까지 14개주가 이 같은 법을 유지했다.

1877년 샌프란시스코의 백인들은 차이나타운을 공격해 여러 상점을 불질렀다. 손호철 제공

1877년 샌프란시스코의 백인들은 차이나타운을 공격해 여러 상점을 불질렀다. 손호철 제공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후 반(反)일본 분위기가 급증하며, 일본계 12만명은 그동안 가꾸어놓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야 했다. 반대로 미국과 중국이 연합국으로 동맹을 맺으며 중국인 배척법이 취소됐다. 하지만 아시아계에 대한 공식적인 차별만이라도 없어진 것은 1965년 이민과 시민권법이 제정되고서다. 미국 노동부는 2014년 철도 건설에 기여한 중국인 노동자들을 명예의 전당에 헌정했고, 2023년 유타주는 주 청사 앞에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아시아계, 백인, 태평양 섬 주민(하와이원주민 등), 라틴계,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2023년 현재 미국의 인종별 수입의 순서다. 아시아계는 가구당 평균수입이 10만5600달러로 인종별로 1위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가장 성공했다는 뜻이다. 아시아 특유의 교육열 등의 덕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성공에 자만하지 말고, 차별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이 고통받아온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라틴계 등 다른 소수민족과의 연대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특히 트럼프주의와 같은 극우포퓰리즘과 인종주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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