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챔피언십서 107년 만의 잉글랜드 챔피언…침착함과 집중력의 결실
독특한 성장이 준 성실함과 절제 그리고 자기 확신…새 유형의 챔프 탄생
애런 라이가 5월 17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의 아로니밍크 골프클럽에서 열린 2026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07년 만의 역사였다. 우승은 누구보다 조용한 방식으로 완성됐다. 잉글랜드 골퍼 애런 라이(31)가 2026 PGA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세계 골프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화려한 세리머니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제스처도 없었다. 대신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과 집요한 집중력이 있었다.
라이는 지난 5월 17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 스퀘어의 아로니밍크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5언더파 65타를 기록하며 최종합계 9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라이는 1919년 짐 반스 이후 무려 107년 만에 PGA 챔피언십을 제패한 잉글랜드 선수가 됐다. 동시에 개인 첫 메이저 우승이자 PGA 투어 통산 2번째 우승이었다.
세계랭킹 44위였던 그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줬다. 그를 우승 후보로 꼽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도박업체들이 평가한 그의 우승 확률은 150 대 1 수준이었다. 2009년 양용은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이 대회에서 우승할 당시와 비슷한 평가였다. 라이는 최종 라운드 9번 홀에서 긴 이글 퍼트를 성공시키며 공동 선두에 올라섰고, 이후 경쟁자들이 흔들리는 사이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결정적 장면은 17번 홀이었다. 약 21m 거리의 긴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라이는 크게 포효하지 않았다. 작은 주먹 쥐기 동작만 남긴 채 담담하게 다음 홀로 향했다.
아로니밍크 코스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조차 부담을 느낄 정도로 어려운 세팅이다. 그러나 라이는 끝까지 감정 기복 없이 자신의 루틴을 유지했다. 로리 매킬로이는 경기 후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의 우승을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람도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잰더 쇼플리는 “투어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의 상징이 된 ‘투 글러브’와 아이언 커버
라이는 1995년 3월 3일 영국 스태퍼드셔 웜본에서 태어나 울버햄프턴을 고향으로 두고 성장했다. 4자녀 중 막내인 그는 인도계 가정에서 자랐고, 영국·인도·케냐라는 세 문화적 배경을 함께 지닌 선수다. 아버지 암릭 싱은 영국에서 태어난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고, 어머니 달비르는 케냐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계다.
라이는 네 살 무렵 우연히 골프를 시작했다. 형의 하키 스틱을 갖고 놀다 머리를 다친 뒤, 어머니가 더 안전한 장난감으로 플라스틱 골프채를 사준 것이 계기였다. 처음에는 놀이에 가까웠지만, 아버지는 곧 아들의 손 감각과 스윙 재능을 알아봤다. 테니스 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자신이 익숙한 종목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골프 책과 자료를 찾아보며 아들과 함께 골프를 배웠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역사회 활동가로 일했고, 어머니는 정신건강 간호사와 에어로빅 강사 등 여러 일을 병행했다. 누나들도 어린 시절부터 일하며 가족의 부담을 나눴다.
라이는 울버햄프턴의 작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익혔다. 많은 주니어 선수들처럼 전국 대회를 돌며 성장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맞춤형 코스 길이를 정해 훈련했고, 나이에 따라 점진적으로 거리를 늘려갔다. 클럽 골프나 정규 대회 경험도 또래보다 늦었다. 그는 열네 살이 돼서야 남자 티에서 본격적으로 경기하기 시작했다.
애런 라이가 5월 17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 스퀘어에서 열린 2026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를 마친 뒤 아내 가우리카 비슈노이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특한 성장 방식은 라이의 경기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남들과 다른 방식을 이상하게 여기기보다 자신이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법을 배웠다. 양손에 장갑을 끼고 경기하는 ‘투 글러브’ 스타일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영국의 차갑고 습한 날씨 속에서 지역 후원자가 건넨 올웨더 장갑을 양손에 낀 뒤 그는 그 방식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제 그의 상징이 됐다.
아이언 커버 역시 라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골프채는 쉽게 살 수 있는 장비가 아니었다. 어렵게 마련한 클럽을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관리했고, 라이는 그 모습을 보며 장비를 소중히 다루는 습관을 익혔다. 지금도 아이언마다 커버를 씌우는 이유는 단순한 장비 보호를 넘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와 연결돼 있다.
라이는 2012년 프로로 전향한 뒤 유럽 하부 투어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5년 유로프로 투어에서 첫 우승을 거뒀고, 2017년 챌린지 투어에서 세 차례 우승하며 유러피언 투어 승격을 이뤘다. 2018년 홍콩오픈에서 유러피언 투어 첫 승을 거뒀고, 2020년 스코티시 오픈에서는 토미 플리트우드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정상에 올랐다. 미국 무대 안착도 시간이 걸렸다. 2021년 콘페리 투어 파이널을 거쳐 PGA 투어 카드를 확보했고, 2022년에는 페덱스컵 순위 93위로 투어 출전권을 지켰다. 2024년 윈덤 챔피언십에서 PGA 투어 첫 승을 신고했다. 이번 PGA 챔피언십 우승은 갑자기 나온 기적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성실하게 쌓아 올린 경기력의 결과에 가까웠다.
모든 게 변했지만 달라진 게 없는 순간
라이는 소셜미디어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에이전트 없이 활동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술을 마시지 않고 파티 문화와도 거리가 멀다. 아내 가우리카 비슈노이는 인도 출신의 전 레이디스 유러피언 투어 선수다. 라이는 퍼팅과 쇼트게임 대결에서도 아내에게 자주 진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실력을 높게 평가한다.
우승 직후 분위기 역시 라이다웠다. 그는 스코어카드 서명을 마친 뒤 가우리카의 손을 잡고 클럽하우스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수많은 카메라와 취재진, 팬들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마치 평범한 일요일 저녁 산책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승 뒤 어떻게 축하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는 “원정 때 자주 먹는 치폴레를 먹을 것 같다”고 답했다. 메이저 챔피언의 첫 우승 축하 방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소박했다. 현지 언론은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골프계는 종종 강한 카리스마와 스타성을 가진 선수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번 PGA 챔피언십은 전혀 다른 유형의 챔피언을 보여줬다. 과장된 감정 표현도, 거대한 브랜드 이미지도 없었다. 대신 오랜 시간 축적된 성실함과 절제, 가족의 희생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이 있었다.
라이는 자신이 메이저 챔피언이 되리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말하지 않았다고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반복되는 훈련과 조용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계속 지켜왔다. 라이는 메이저 우승이 반드시 화려한 재능과 거대한 서사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때로는 가장 조용한 선수, 가장 성실한 선수, 가장 자신다운 선수가 가장 큰 무대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는 이제 ‘양손 장갑을 낀 좋은 사람’이 아니라 PGA 챔피언십을 제패한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