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 오후 10시 43분쯤 대전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시민에 의해 목격된 늑대 ‘늑구’의 모습. 강준수씨·연합뉴스
고양이가 다 같지 않다는 것을 함께 살아보고서야 알았다. 기자와 사는 고양이는 성격이 사납다. 1분 이상 품에 안겨 가만히 있는 적이 없고, 매번 발버둥치는 바람에 발톱 한번 깎기 힘들다. 이름을 불러도 들은 체 만 체할 뿐 오지 않는다. 반대로 안 왔으면 할 때는 굳이 와서 밟거나 깨문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흔히 등장하는 ‘개냥이’와는 딴판이다.
멋대로인 고양이가 미울 때도 있다. 이내 ‘다른 존재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말이 통하지 않고 성격이 맞지 않지만 그저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들었다. 동물을 집에 두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거나 중성화 수술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는 말들 때문이었다. 그런 지적에 잘 답변하기 위해 동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책을 사 읽었다. 인간이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최대한 동물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공부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판다 ‘푸바오’ 팬덤 현상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많다. 에버랜드라는 거대 자본의 마케팅 속에서 푸바오가 상품화되고, 소비의 대상으로 다뤄지면서 정작 동물이 동물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지 같은 문제가 가려진다는 비판이었다. 세상에 학대당하고 버려지는 동물이 얼마나 많은데 푸바오 사랑에만 쩔쩔매는 게 맞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푸바오 팬들을 취재하면서 이 팬덤 현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진 않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팬들은 ‘동물 소비’에서 나아가 푸바오의 열악한 사육환경과 무분별한 번식, 동물을 외교수단으로 사용하는 국제정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푸바오 관심을 계기로 다른 동물들의 삶, 동물원의 착취적 운영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팬들도 있었다.
이번 늑대 ‘늑구’ 사태는 푸바오 때와는 또 달랐다. 늑구의 안전한 생포를 기원한 시민들은 늑구의 빠른 상품화 소식에 “늑구팔이”라고 비판했다. 사람마다 속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경험으로, 한국사회는 조금씩 동물을 이해하고 공존하기 위해 바뀌고 있는 것 아닐까.
이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