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북한은 베이징 북핵 6자회담 합의에 따른 핵연료봉 제조시설의 불능화 조치로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시키고 미국 방송은 이를 중계했다. 연합뉴스
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를 1년 동안 출입했다. 장관급 회담, 남북 경제추진위원회 등 각종 회담을 치르느라 정신없었다. 많은 배움을 얻었던 때로 기억한다. 어린 연차였던 기자는 남북관계가 잘 풀릴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다.
그러다 그해 10월 2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제임스 켈리를 대표로 한 미국 협상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남북관계는 멈췄지만 기자들은 더 바빴다. 북한의 저의가 무엇이냐, 한반도 정세, 동북아 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기사를 썼다.
돌아보면 그 시절 기자의 판단은 맞지 않았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압박 정책으로 일관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에 맞서 북한이 핵을 협상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핵실험이나 핵 개발 등 레드라인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수많은 레드라인을 넘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1년여 통일부를 다시 출입하게 됐다. 금강산 관광 중단 등 남북관계가 멈춰서면서 2002년에 비해 육체적으로 덜 피로했지만, 신이 나지는 않았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남북관계 변화 모멘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을 내버려뒀고, 북한은 이 시기 핵 능력을 고도화해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나섰다.
정치부장이었던 2017~2019년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겪었다. 남북 화해와 종전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에 잠시 설렜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 두 정상은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틀어졌고, 북한은 전보다 더 삐뚤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국가론’을 펴며 한국과 단절을 선언했다.
체제 생존을 위해 핵을 보유한 북한에 애초부터 비핵화 의지가 있었나 의심하게 된다. 제재 완화 등을 통한 경제난 해소를 위해 유화 제스처를 폈던 것 아닐까. 핵을 포기한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망하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 포기는 못 한다’는 결심을 더 굳혔을 터다.
그렇다고 한반도의 위기를 방치할 수는 없다. 여기서 등장하는 대안이 바로 핵무기 동결과 군축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 핵 동결·후 비핵화’ 카드를 꺼냈고, 대북 강경파였던 빅터 차 미국 전략국가문제연구소(CSIS) 석좌조차 “평양과 군비 축소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주간경향 1678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핵·미사일 중단과 군축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며 실용적”이라고 했다.
핵 동결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국면을 전환하자는 결단일 수 있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대북 협상에 대한 여론의 반감은 거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다. 국민을 설득하고 새 판을 짜는 것이 이재명 정부에게 주어진 책무다.
이용욱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