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이 글을 쓰는 이 노트북, 10년 전에 처음 샀을 때의 빠릿빠릿한 쾌감을 아직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 하나 하려 해도 이리 굼뜰 수가 없다. 하지만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이나 반도체가 낡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배터리는 확실히 열화가 일어났지만, 다른 육신은 멀쩡해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름시름 시들어버리는 것일까?
이 증상은 과학기술, 특히 IT 업계의 널리 알려진 병증이다. 여러 설명이 시도됐는데, 우선 계획된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설이 있다. 제품이 일정 기간 후 저절로 노후화돼 고장이 나도록 계획을 한다는 것인데 약간 음모론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적도 적지 않은데, 20세기 초에 전구 수명이 너무 길면 아무도 안 살까봐 담합한 적도 있고, 너무 질긴 나일론 스타킹을 약하게 만들기도 했다. 애플도, 삼성도 상황에 따라 자신의 폰을 일부러 느리게 만들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의도적으로 정보 불균형과 비대칭을 초래하는 범죄가 아니더라도 모든 제품은 하나같이 시간과 함께 후져진다.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란 신조어가 있다. 비슷한 발음의 기대(anticipation)와는 달리 ‘똥(shit)이 되기’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대소변의 그 변(便) 자를 써서 변화(便化)라 부르면 어떨까 싶다.
플랫폼이 초기에는 사용자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며 유명해지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기면 결국 주주 이익을 위해 사용자 가치를 훼손하곤 하는데 바로 이를 칭하는 말이다. 공짜로 선심을 쓰며 순위권에 오른 뒤, 바로 표정 바꿔 광고로 떡칠하는 앱을 생각해보면 좋다.
원래는 플랫폼이 지닌 양면 시장적 성격을 활용한 ‘변화(便化)’였다. 우선 개인고객(예: 소비자)을 모은 뒤, 이들을 팔아 기업고객(예: 판매자)을 모은다. 그 뒤에 이번에는 이 양면 모두를 주주를 위해 다시 착취하는 그런 구도를 지칭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기에는 사용자에게 유리하다가 점차 수익화와 통제를 위해 품질이 저하되고 사용자를 소외시키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운영체제에도, 즐겨쓰는 앱에서도 그리고 웹사이트에서도 어디서든 목격된다. 다들 초심을 잃고 점점 더 비대해진다. 처음에는 약속한 기능만 알차게 해줘 사랑받던 앱도, 광고를 붙이고, 효과적 광고를 위해 위치추적도 붙이고, 인앱 결제를 처리하기 위해 이것저것 다시 붙이고, 그러면서 점점 똥 같은 앱이 돼간다. 내 노트북 가득 똥이 차오를수록 점점 느려진다.
악의가 없어도 똥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악의, 예컨대 해킹이 창궐하면서 이를 방어하기 위해 덧칠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또다시 덧방을 한다.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다. 사업적 이해관계로 이런저런 기능이 낙하산처럼 투하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업데이트하다 보면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상쾌했던 사용자 체험은 추억이 돼버린다. 어쩔 수 없는 사용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업데이트를 하고 업데이트를 당한다. 이 현상을 보다 못한 새로운 경쟁 제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 새로운 제품도 세월과 함께 다시 똥이 되곤 한다. 역사는 그렇게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