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물든 중동…에코사이드 확산의 ‘검은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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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물든 중동…에코사이드 확산의 ‘검은 재앙’

입력 2026.05.08 14:35

수정 2026.05.0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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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발전 시설 파괴로 전쟁 발발 이후 중동서 300건의 환경 피해 사례 보고

공기·바다·토양 따라 번지면서 생태와 식수 ‘비상’…전쟁 끝나도 오염은 남아

미국·이스라엘의 원유 저장 시설 공습 이후 ‘검은 비’가 내린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 검은 그을음이 쌓여 있다. 테헤란|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의 원유 저장 시설 공습 이후 ‘검은 비’가 내린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 검은 그을음이 쌓여 있다. 테헤란|로이터연합뉴스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렸다. 바다에는 ‘검은 띠’가 번졌다. 전쟁은 군사 시설과 도시만 파괴하지 않는다. 사람이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 생존을 떠받치는 생태계 자체를 겨냥한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하며 공격은 정유 시설과 발전소, 담수화 시설 등 ‘환경 기반 시설’로 확대됐다. 영국 연구단체 ‘분쟁 및 환경 관측소(CEOBS)’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중동 12개 지역에서 약 300건의 환경 피해 사례가 보고됐다. 전쟁이 촉발한 환경오염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도 공기와 바다, 토양을 따라 확산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덮친 원유 유출…생태계·식수 ‘비상’

바다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지난 4월 유럽우주국의 위성 ‘센티널 2’가 촬영한 사진에서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길게 늘어진 기름띠가 관찰됐다. 앞서 촬영된 영상에서도 이란 케슘섬 인근 해역에서 약 8㎞에 이르는 기름 유출 흔적이 확인됐다. 니나 노엘레 그린피스 독일 대변인은 전쟁 첫날 공격받은 이란 선박 샤히드 바게리호에서 새어 나온 기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해양오염에 대한 우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커졌다.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 4월 29일 기준 페르시아만 해상에는 약 1530만t의 원유를 실은 유조선 75척이 멈춰 있다. 선박 추적 데이터 업체 케이플러는 전쟁이 시작된 2월 28일부터 4월 12일까지 호르무즈 해협에서 공격받은 유조선이 22척에 달한다고 밝혔다. 3월 30일에는 쿠웨이트 유조선이 공격받아 선체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내해인 페르시아만의 지형적 특성상 대형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페르시아만은 평균 수심이 얕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서만 외해와 연결된다. 염도가 높아 기름이 끈적하게 변하는 유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기름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기 쉬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노엘레 대변인은 “페르시아만에서는 단 1건의 대형 기름 유출만으로도 취약한 해양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1991년 걸프전 당시 페르시아만 북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원유 유출은 수십년간의 환경 피해를 남겼다.

유출된 기름은 산호초와 맹그로브숲, 해초 군락이 밀집한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지역에는 멸종위기 해양 포유류인 듀공 약 5000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에는 오만의 무산담 반도와 시드바르섬 자연보호구역도 있다.

기름 유출은 식수 체계도 위협한다. 해협에서 유출된 기름이 담수화 시설로 유입될 경우 대규모 식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걸프 국가 상당수는 강이 부족해 바닷물을 담수화해 식수로 사용한다. 450여개 담수화 시설이 이 지역 약 1억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전체 식수의 약 90%를 담수화 시설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앞서 이란은 미국이 케슘섬 담수화 시설을 공격해 30개 이상 마을의 물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 초기에는 요격된 드론, 미사일 잔해 등으로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F1 발전, 용수 시설 등 담수화 시설 일부가 피해를 보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해양정보협력감시센터 화면에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위치가 표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프랑스 해양정보협력감시센터 화면에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위치가 표시돼 있다. AFP연합뉴스

검붉은 테헤란 하늘…대기·토양 오염 확산

도시에서는 검은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지난 3월 8일 이스라엘군은 테헤란 일대 석유 저장시설 4곳과 송유 시설 1곳을 공습했다. 인구 900만명이 사는 테헤란 상공에는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이 형성됐다. 이란 환경청은 폭발과 화재로 인해 다량의 독성 탄화수소와 황산화물, 질소 화합물이 대기중으로 방출됐다며 주민들에게 실내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이후 테헤란에는 검은 비가 내렸다. 과학자들은 이 비에 중유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그을음과 재,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폭격과 그에 따른 노후 주거, 상업 건물 붕괴 과정에서 발생한 석면·실리카 성분 잔해가 섞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주민들은 즉각 호흡 곤란과 안구 자극, 인후통, 편두통, 어지럼증, 심장 이상 증세 등을 호소했다. 장기 노출 시 암과 신경계 질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랐다.

폭발로 발생한 유독가스와 잔해는 도시 배수 시스템과 수로로 유입돼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도 있다. 실제 여러 분쟁 지역 조사에서는 탄약과 무기 잔해에서 나온 독성 화학물질이 토양에서 검출됐다. 납, 카드뮴, 니켈, 크롬 같은 중금속은 먹이사슬을 따라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라크에서는 1991년 걸프 전쟁과 2003년 미국과의 전쟁 이후 기름 유출과 군사 폐기물, 열화우라늄 등을 둘러싼 환경오염 논란이 장기간 이어졌다. 남부 바스라 지역에서는 중금속 오염이 암과 선천성 질환 증가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둘러싼 연구와 논쟁도 계속됐다.

전쟁이 끝나도 수십년간 영향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은 환경적 인프라가 분쟁의 표적이 되는 현대 전쟁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국제 분야 싱크탱크인 국제전략관계연구소(IRIS)는 “에너지 시설, 상수도 시스템, 위생 시설망 및 해상 항로는 이제 사회 내에서 시스템적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며 “환경 기반 시설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현대의 강압, 간접적 억지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필수 자원에 대한 접근을 위협함으로써 상대국의 보건 및 사회적 균형을 영구적으로 훼손하려 한다는 것이다.

IRIS는 분쟁 지역의 생태계 파괴가 해당 지역을 넘어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지구 환경오염이 한계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전쟁으로 인한 지역적 파괴가 지구 안정 유지에 필요한 생태계를 약화시키고, 그 영향이 세계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현재로서는 피해 규모 자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란이 전쟁 발발 이후 인터넷과 통신을 차단하면서 현장 정보와 위성사진 확보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 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오염은 남는다. 안 세네키에르 IRIS 연구원은 “전쟁으로 인한 오염은 전투가 끝난 후에도 수십년간 분쟁의 환경·보건 영향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바다로 유출된 기름은 지금도 생태계를 위협하며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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