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문구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한동안 챗GPT·제미나이와 대화하는 데 푹 빠져 지냈다. 한 번에 두세개씩 질문하다가 금세 이용 한도에 도달해 내일을 기약하기도 했다. 주로 투자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인공지능(AI)은 산업이나 주식 흐름에 대한 분석을 꼼꼼하게 해줬다. 웬만한 애널리스트 보고서보다 나은 것 같았다.
결국 오랫동안 묵혀뒀던 주식 계좌를 열어 지난해 말 투자를 다시 시작했다. AI에 따르면 내 투자 포트폴리오는 ‘AI 시대에 떠오를 다크호스이자 생태계 내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기업들’로 구성돼 있었다. 탄탄한 논리를 내놓는 바람에 그만 설득당하고 말았다. ‘투자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믿던 나에게 AI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자신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투자 성적이 신통치 않아 여러 대안을 물어봤고, 그때마다 AI는 그럴듯한 말로 내 판단을 은근히 추켜세웠다. ‘정말 핵심을 찔렀다’는 둥 낯간지러운 아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 질문 방향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내 의견을 검증하기보다는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AI가 과거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점도 한계였다. AI는 줄기차게 소프트웨어 업종을 AI 수혜 업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다 ‘AI가 산업을 잠식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관련 주가가 폭락하자 그제야 ‘업계 위기론이 번지고 있다’고 해설하는 식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AI를 통해 느꼈던 ‘지적 효능감’은 사라졌다. 요즘은 주식 창을 잘 열어보지도, AI에게 주식 관련 질문을 하지도 않는다.
요즘 법원 판결 기사에는 ‘판사들을 AI로 대체해야 한다’는 댓글이 자주 보인다. 흉악범이나 정치범에 대한 판결이라면 더욱 그렇다. 판사들이 법전만 들여다보고 있어서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거나, 기득권과 결탁해 구제불능이므로 ‘공명정대’한 AI가 판결을 내리는 게 낫다는 것이 전제인 듯하다.
꼭 법률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종종 실수하고, 인지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 데다, 여러 편견을 가진 인간보다 AI가 결정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가치판단의 최종심급에 AI가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한 면이 있다. 최근 AI를 테스트하는 용도로 질문 하나가 유행했다. AI에게 50m 거리의 세차장을 이용하려 할 때 차를 타고 갈지 걸어갈지 묻는 말에 상당수 AI가 ‘그 거리면 그냥 걸어가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사람에게 물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답변이다.
AI의 판단은 결국 인간의 판단을 반영한다. 인간이 걸려 넘어진 자리에서 똑같이 넘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2024년 ‘네이처’는 대형언어모델(LLM)이 방언을 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해 성격이 나쁠 것이라고 묘사하는 경향이 있고, 범죄 가능성도 더 높게 예측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오늘도 AI와 여러 차례 문답을 주고받았다. AI가 주는 매끈한 답변에 감탄하다가도 요즘은 가끔 기시감이 든다. 세련된 포장지 속 평범한 기성품을 본 기분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