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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못 하는 일’이라는 질문

입력 2026.05.01 14:18

수정 2026.05.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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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 이 삽화는 칼럼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 이 삽화는 칼럼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인쇄기가 나왔을 때 필경사들은 “기계는 영혼이 없다”고 했고, 사진기가 나왔을 때 화가들은 “기계는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했다. 김애란 작가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인간한텐 있고 AI한텐 없는 것은 망설임”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지 망설여졌다. AI도 고장 난 것처럼 버벅대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이럴 땐 당사자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클로드에게 김 작가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제가 할 수 있는 솔직한 말은 이겁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AI보다, ‘나는 모른다’고 말하는 AI가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고. 그리고 그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잠깐 주저했다고. 그게 망설임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망설이는 척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식의 반응을 만들어내는 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AI가 실제로 망설이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타인의 내면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떤 존재가 망설인다/안 망설인다는 건 잘라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인간다움은 어떤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인간됨을 부단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는 것. 그렇게 이해할 때, ‘AI가 못 하는 일’이란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주제보다 흥미로운 것은 자꾸만 그걸 찾아내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려는 동시에, 두려운 대상 앞에서 정체성을 방어하려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김애란의 위로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나는 대체되지 않는다는 안도감. 그런데 이 안도감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가까운 장래 AI가 ‘인간처럼’ 망설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보다 능력이 부족한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다. 자기의 모방물을 만들어놓고는 그것이 모방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묻는다. 이 비교는 어딘가 이상하다. AI가 뭘 흉내 내든 그런 게 인간다움과 무슨 상관인가. 나는 AI에게도 망설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AI가 인간의 따뜻함을 배웠으면 좋겠다.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냉혹한 기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주저하고 침묵할 줄 아는 도구였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질문은 AI 등장 이전부터 나왔던 클리셰다. 경계선은 계속 밀려왔고 그 과정을 돌아보면서 알게 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함은 ‘능력’을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다움을 모방물과의 비교 우위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인간성을 능력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인간성의 기준이 능력인 한, 더 나은 능력이 등장하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간성을 확보하려는 질문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김애란의 말을 논리 법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윤리 법칙으로 이해한다. ‘인간은 그러하다’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그러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인간이라면 응당 타인의 고통을 감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바람으로 말이다. 인간다움은 어떤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인간됨을 부단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는 것. 그렇게 이해할 때, 이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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