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을 측정하는 모습. 언플래시
건강검진을 위해 공복 상태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대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제 혈당이 정상인가요?”
검사 결과는 숫자로 비교적 간단하게 제시된다. 공복혈당을 측정했을 때 검사 결과가 70~99mg/dL이면 정상으로 판단하고, 100~125mg/dL로 나오면 공복혈당장애에 해당하는 당뇨 전 단계(고위험군), 그리고 126mg/dL 이상이면 당뇨병 의심 단계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생리적 과정이 숨어 있다. 공복혈당은 단순히 ‘어제저녁에 얼마나 먹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 오히려 ‘밤새 몸이 항상성을 어떻게 유지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이것은 우리 몸의 간(liver)과 췌장(pancreas) 그리고 호르몬과 신경계가 밤사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일종의 ‘요약문’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혈당이 당연히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공복 상태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인체의 생리 반응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복잡하게 진행된다.
밤새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우리 몸은 이를 ‘연료 공급이 중단된 상태’, 즉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환경에 가장 먼저 작동하는 기관은 우리 몸의 ‘간’이다. 간은 낮 동안 저장한 글리코겐(glycogen)을 분해해 포도당(glucose)을 혈액으로 방출한다. 이 때문에 공복이라도 혈중 포도당 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게 한다.
간의 글리코겐 저장량이 감소해 더 이상 포도당 공급이 어려워지면, 이번엔 우리 몸에 있는 아미노산과 젖산을 이용한다. 포도당 신생합성이라는 효소 반응을 통해 아미노산이나 젖산을 사용해 포도당을 만든 후 혈액에 공급한다. 이 과정도 혈중 포도당 농도의 균형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진행하는 정교하게 조절된 신체의 대사 반응 가운데 하나다.
우리의 뇌는 무게가 체중의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체 포도당 소모량의 20% 이상을 사용하는 곳이다. 물론 뇌 이외에 다른 장기도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 몸은 혈당이 범위 밖으로 감소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체는 일정 수준의 혈당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듯 아침에 측정하는 공복혈당은 단순히 전날 섭취한 음식의 잔여물만은 아니다. 이는 밤사이 간을 포함해 신체의 구석구석에서 이루어진 복합적인 대사 활동의 결과물인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아침 혈당은 왜 더 높을까?
밤새 금식했음에도 아침에 혈당이 전날 저녁보다 높게 측정되는 의아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측정 오류가 아니라 우리 몸의 생리적 리듬에 의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현상은 ‘새벽 현상(Dawn phenomenon)’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 시간대에 접어들면, 신체는 수면 상태에서 각성 상태(잠에서 깨어난 상태)로 전환될 준비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코르티솔(Cortisol), 글루카곤(Glucagon), 성장호르몬 등의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몸에서 혈당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문제는 인슐린 저항성(IR·insulin resistance)이 있는 경우, 이 과정이 더 과도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상승한 혈당을 인슐린을 분비해 적절하게 억제하지만, 인슐린 반응이 둔화한 상태에서는 이러한 조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아침 공복혈당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난다.
공복혈당은 음식 섭취뿐만 아니라 감정 상태와 환경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스트레스는 혈당을 증가시키는 강력한 변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이를 단순한 심리적 압박 상태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이를 위협적인 상황으로 해석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즉각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이에 대응하는 반응 때문에 글리코겐이 포도당으로 분해돼 혈액으로 빠르게 방출된다. 이는 이른바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에 필요한 즉각적인 에너지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즉 스트레스는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혈당을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생리적으로 설계돼 있다. 결국 스트레스는 공복혈당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혈당 상승의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상 수치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이상’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공복혈당이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반드시 건강한 상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되면, 인체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 인슐린 분비를 늘린다. 이 과정에서 혈당은 겉으로는 정상 범위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자연스러운 정상’이 아니라 과도한 인슐린 분비에 의해 유지되는 일종의 ‘보상적 균형’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몸은 식후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고, 동시에 인슐린이 과다하게 분비되며, 이로 인해 지방 축적이 증가하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공복 상태에서는 이러한 이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은 자신의 공복 혈당이 정상이라고 안심하지만, 실제로는 대사질환의 초기 단계에 진입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공복혈당만으로 건강 상태를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슐린 수치, 식후 혈당 그리고 당화혈색소(HbA1c)와 같은 다양한 지표를 검사해 그 결과를 함께 해석해야 한다.
대사 연구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개념은 혈당의 절댓값이 아니라 변동성이다. 하루 동안 혈당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혹은 얼마나 크게 변동하는지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평균 혈당을 가진 두 사람이라도, 한 사람은 안정적인 곡선을 보이고 다른 사람은 급격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면 후자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혈당은 왜 중요한 지표일까? 혈당의 급격한 변동은 산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혈관 내피 기능을 손상시키며, 나아가 우리 몸의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적으로 심혈관 및 대사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연속혈당측정기(CGM·Continuous Glucose Monitor)를 활용해 하루 전체의 혈당 흐름을 분석하는 접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공복혈당은 이러한 흐름의 한 지점에 불과하며, 전체 혈당 조절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따른 혈당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건강한 삶을 위해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핵심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