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후버댐, 미국을 공황에서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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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후버댐, 미국을 공황에서 구하다

입력 2026.05.01 14:15

수정 2026.05.0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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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뉴딜정책의 상징인 후버댐. 손호철 제공

뉴딜정책의 상징인 후버댐. 손호철 제공

“세 번째 자유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각 나라가 국민에게 건강하게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적 약속을 의미합니다.” 1941년 1월 6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1882~1945)은 그의 새해 연설에서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에 이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자유주의’ 역사는 바로 이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전까지 자유주의가 의미하는 자유는 국가의 간섭으로의 자유라는 ‘소극적 자유’였다면, 루스벨트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적극적 자유’를 주창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단순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의미하게 됐으며, 자본주의가 ‘복지 자본주의’, 복지국가를 추구하게 됐다.

“우리의 진보의 시험은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풍요에 더 더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너무 적게 가진 사람들에게 충분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느냐다.” 워싱턴에는 4개의 모뉴먼트(조형물)가 있다. 제퍼슨, 링컨, 마틴 루서 킹과 루스벨트다. 수많은 대통령 중 후세가 모뉴먼트를 지어준 3명 중 1명이 루스벨트다. 루스벨트 모뉴먼트에는 주린 배를 안고 급식소 앞에 줄을 선 가난한 사람들의 조각 옆에 루스벨트의 말이 쓰여 있다.

워싱턴 루스벨트 모뉴먼트에 설치돼 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동상. 손호철 제공

워싱턴 루스벨트 모뉴먼트에 설치돼 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동상. 손호철 제공

자본주의를 구한 ‘사회적 뉴딜’

후버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가깝다. 거대한 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존경의 묵념을 드리자, 그의 유명한 연설과 모뉴먼트가 생각났다. 그는 대공황에서 미국을 구한, 아니 세계 자본주의를 구한 구세주다. 장시간 저임금의 무한 착취에 기초한 ‘자유 방임’의 초기자본주의(‘유혈의 테일러 주의’)는 대공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기술발달로 생산량은 늘어나는데, 저임금으로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이를 사서 쓸 구매력이 없었다. 따라서 공황이 찾아왔다. 루스벨트는 ‘뉴딜’이라는 혁명적 처방을 제시했다.

그것은 두 방향이었다. 하나는 국가가 과거의 자유 방임을 벗어나 후버댐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와 적극적 경제 개입으로 기업에 돈을 벌 기회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주고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구조의 혁신이다.

루스벨트는 강물이 자주 범람하는 콜로라도강에 거대한 댐을 건설해 홍수를 예방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한편 전기를 생산하기로 했다. 장소는 네바다주가 애리조나주와 만나는 지금의 위치로 잡았다. 높이 221m, 길이 411m에 이르는 거대한 댐을 짓는 역사적인 공사로 1931년 시작해 5년이나 걸렸다. 무려 1억6500만달러가 투입된 이 공사는 하루에 최고 5200명, 평균 3500명의 노동자가 일했다. 댐은 네바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의 130만명이 사용하는 전기(시간당 40억㎾)를 생산한다.

시도로 6700마일(약 1079㎞), 지방도로 5만7000마일(약 9만1700㎞), 포장도로 등 57만2000마일(약 92만545㎞), 터널 1000개, 다리 7만5000개, 도서관과 학교, 병원, 우체국 등 공공건물 12만500개. 루스벨트 정부가 뉴딜정책 일환으로 건설한 것들이다. 뉴딜정책은 미국의 기간시설을 현대화하는 한편, 도산 직전의 기업들을 살리고 노동자들에게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뉴딜이 이명박의 4대강 사업처럼 단순히 ‘노가다 뉴딜’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뉴딜은 토목공사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를 혁신한 ‘사회적 뉴딜’이기도 했다. 루스벨트는 와그너법을 통해 노동조합의 결성, 단체협상 등을 보장하고 자본가의 노동 횡포를 규제하는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힘을 길러줌으로써 임금을 높이고 노동자의 구매력이 늘려 공황을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사회적 뉴딜은 분업과 기계화를 통해 대량생산을 하고 이를 생산성 향상에 따른 고임금을 통해 대량소비로 연결한 ‘포드주의’를 통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를 통해 미국 정치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남북전쟁을 통해 생긴 정당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민주당은 원래 남부에 기반한 ‘노예주 정당’이고, 링컨의 공화당은 북부 산업자본의 지지에 기반한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정당이었다. 남북전쟁에서 이야기했듯이, 두 당의 차이는 노예제 이외에 무역정책이었다. 유럽에 면화, 곡물 등을 수출하는 남부의 민주당은 ‘개방주의자’, ‘세계화 주의자’였다면, 공화당은 발달한 유럽공업으로부터 북부의 산업을 지켜야 하기에 보호무역과 ‘일국 자본주의’를 주장했다.

워싱턴 루스벨트 모뉴먼트에는 대공황 시기 빈곤층이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조각이 설치돼 있다. 손호철 제공

워싱턴 루스벨트 모뉴먼트에는 대공황 시기 빈곤층이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조각이 설치돼 있다. 손호철 제공

희생 없는 진보는 불가능한 걸까

루스벨트는 공화당 우위의 정치체제를 깨고 집권해 뉴딜 등 자신의 정치철학을 펴나가기 위해서는 정당 체제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가 주목한 우군은 국제 경쟁력을 가진 선진자본과 노동자들이다. 석유, 금융과 같은 산업은 세계시장에 나가 세계를 지배할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화당의 폐쇄적 정책을 넘어서 적극적인 시장개방과 세계를 주도해나갈 적극적인 외교정책이 필요했다. 이들은 ‘자본 집약적’ 산업이고,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동맹을 유지하고 나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 결과 뉴딜 연합이라고 부르는 기이한 정치연합이 생겨난다. 그것은 보수적인 남부에 선진적 자본과 노동자를 더한 연합이다. 과거와 달리, 민주당이 더 ‘리버럴’하고 공화당이 ‘보수적’인 구도가 생겨났다. 이 민주당 우위의 이 구도는 1980년 레이건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 유지됐다.

워싱턴 미국사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뉴딜정책 관련 설명. 손호철 제공

워싱턴 미국사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뉴딜정책 관련 설명. 손호철 제공

후버댐은 서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하루 평균 2만명, 연 700만명 이상이 방문한다. 주말이라 사람이 가득 찬 탐방로에 전시한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를 보자, 갑자기 김건희가 생각났다. 김건희가 대통령 노릇을 하고 국정에 개입해 감옥에 가 있지만, 엘리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남편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남편이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기동이 불편해지자, 제2차 세계대전 중 남편을 대신해 유럽이 미군 위문을 하러 가는 등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을 했다. 엘리너는 남편 사후에도 국제연합(UN) 인권위 의장으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공으로 엘리너는 루스벨트 모뉴먼트에 루스벨트와 함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댐을 구경하고 내려오는데 문득 보이는 작은 전시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원주민들의 사진이었다. 읽어보니, 후버댐 건설 당시 이 지역이 나바호와 또 다른 원주민인 페이우트(Paiute)족이 살던 지역이었다는 설명이었다. 미국을 대공황에서 구한 ‘진보적 프로젝트’인 후버댐도 원주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을 빼앗아서 가능했다. 이런 희생이 없는 진보는 불가능한 것인가?

후버댐 공원에 있는 안내판. 손호철 제공

후버댐 공원에 있는 안내판. 손호철 제공

후버댐 건설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에 관한 설명. 미국을 공황에서 구한 뉴딜정책도 원주민들의 희생 위에 가능했다. 손호철 제공

후버댐 건설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에 관한 설명. 미국을 공황에서 구한 뉴딜정책도 원주민들의 희생 위에 가능했다. 손호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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