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숙 소설 ‘축제와 운명의 장소’
1967년 경향신문에서 대담 중인 박경리 작가, 한무숙 작가, 김남조 시인(왼쪽부터). 경향신문 자료사진
규수작가의 대명사로 통하는 한무숙은 정신병리적인 여주인공을 그린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그의 두 번째 창작집의 표제작 ‘축제와 운명의 장소’(1962)는 자기 스스로를 실제보다 크게 과장, 과대평가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미친년” 전옥희 여사에 관한 이야기다. “저항을 잃은 마흔아홉이라는 여자”지만 그는 위대한 남자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조증 환자처럼 퇴원을 해 새로운 사업에 착수하고 “이상의 남성을 찾”겠다는 계획과 기대에 부푼다. 실제의 그는 죽음을 앞둔 폐암 말기의 환자다. 가족이 없는 그는 무료로 진료를 받는 대가로 신약의 부작용 여부를 테스트 당하는 시료환자(施療患者)이자 부검이 예비된 살아 있는 시체다. 친구들은 거추장스러운 그를 병원의 가장 싸구려 병실에 의탁했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인생의 위대한 목적을 가진 사람처럼 고상하고 품위가 있다. 작가는 이런 전옥희를 어리석고 허영심 많은 존재가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자존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외롭게 투쟁하는 정신병적 주체로 그린다.
전옥희는 젊은 날 “무엇인가 돼야겠다”고 다짐하며 “언젠가는 잃어버려야 하는 이 신앙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거부했다. 굳은 신념을 추구한 결과 그는 “숱한, 숱한 남자들과 어울”림으로써 난잡한 소문 속의 여자가 됐다. 그는 “왠지 무릇 남자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착각하고, 국내는 물론이고 내한한 외국인 명사를 만나기 위해 적극성을 발휘하며, 세상이 모두 아는 명사들과 자신이 가깝다는 거짓말을 진실하게 떠벌리는 등 망상, 환각, 과대사고 동반 같은 병적 증후를 보이는 편집증적 색정증자다. 그는 성을 탐하는 탕녀도 남자의 여성에 관한 욕망과 환상을 이용해 경제적 자립을 시도하는 자유연애 전문가도 아니다. 그는 대개의 여성처럼 남자와의 관계에서 자아의 축소를 경험하고 자기 존재를 결핍이나 결여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부장제 사회가 긍정하는 정상적 여성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한다.
대단한 남자와의 연애로 숭고한 자기 확인
여학교 출신으로 도서관에서도 근무했을 만큼 식자층이지만 그는 몽상 바깥으로 나가 현실에 발을 딛고 살기를 거부한다. “집에서 가사 같은 것을 익혀 평범하게 결혼을 할 수는 없다”는 결단이 말해주듯이 그는 현실 바깥에서 살고자 하는 병적인 기질의 문학소녀다. 그가 결과적으로 추문이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는 스캔들화된 존재가 된 것은, 남성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핍박을, 사랑을 받아들이는 마조히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비범한 남성을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은 남근 선망의 일종처럼 보이지만, 대단한 남자들과의 연애로 여성의 몸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부, 명예, 권력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이용함으로써 로맨스라는 여성형 모험과 섹슈얼리티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대단한 남자와의 연애로 타인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숭고한 자기를 확인하고자 한다.
간호사 송미연과 환자 전옥희는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하나가 있어야만 나머지 하나도 존재할 수 있는 분신(分身) 혹은 짝패다. 스무 살의 송미연은 무구한 처녀로 사랑의 상처를 알지 못했던 젊은 날의 전옥희다. 송미연은 군데군데 비어 있는 전옥희의 이야기를 완성시켜 주는 존재로, 그의 현재는 전옥희의 전사(前史), 즉 과거로 기능한다. 긴 시간의 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둘의 연애는 지극히 닮은꼴이다. 병상의 전옥희는 우연히 병원의 창을 통해 송미연이 언덕 위에서 미연을 부르는 건축가 종민을 향해 언덕을 오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억압해두었던 장면과 조우한다. 하얀 간호복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겼는지도 모르고 사랑의 열기에 들떠 산을 오르는 미연과 도무지 “열의가 없”이 미연를 부르는 종민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자신과 현민의 관계를 본 것이다.
전옥희의 과대망상증은 사랑의 난센스를 희비극적으로 비춘다. 남성은 외롭고 허기진 얼굴로 여성을 유혹하고 여성들은 주술에 걸린 듯 이내 사랑을 발명하지만, 여성은 남성이 원하는 궁극적인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전옥희는 우국지사 현민이 자바현의 감옥에서 죽은 후 그의 아이를 사산하는데, 현민은 그때까지 “자기의 작품의 어느 하나도 옥희에게 보여준 일이 없”다. 전옥희에게 현민은 미지의 X와 다를 바 없는 낯선 존재다. 다른 한편으로 종민은 6·25 전쟁기에 유엔군의 게릴라 생활을 한 후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방종한 생활의 퇴폐주의자인 그는 제멋대로 미연을 불러내지만 미연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연은 “사람이란 역부러 자기에게 지독히 불리한 바보짓을 의식하여 하려는 때가 있다”고 의식하면서도 “자기의 삶을 확증하려는 의지”로서의 사랑을 결행하려고 한다.
글쓰기 통해 전통과 가부장제의 토대 침식
전옥희는 미연을 “내 아기”라고 부르며 “조심해!… 아무에게두 져선 안 돼! 열정에두, 연인에두, 자신에두!”라고 절규하며 오랜 망령에서 깨어난다. 망상에서 벗어나 그는 “허식과 굴욕과 멸시와 궁핍에 찬 자신의 삶”과 마주한다. 그가 과대망상증자가 된 것은 첫사랑인 현민에게서 지독한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무시한 남자를 한낱 이기적인 존재로 격하하기보다 그가 비범한 혹은 유명한 인물이었다는 점에 애착함으로써 상처를 위무하고자 했다. 한무숙은 전옥희의 삶을 조롱하고 정결이나 금욕을 여성의 윤리로 이상화하거나 사랑에 대한 냉소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전옥희는 “‘성(性)’이란 인간의 귀속을 확증하는 축제의 자리”이기에 “자신에게 다시 한번 인생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역시 같은 치우(癡愚), 같은 실수와 고통에 찬 길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폭로된 진실로 인한 자아의 붕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비루한 것인 한 여성에 대한 환대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국문학자 이재선은 가히 경탄조로 “한무숙은… 작가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자부로, 어머니로 너무도 완벽하게 지상에서 주어진 역할을 담당했기에 흐트러짐 없는 저품 있는 여류 작가”라고 썼다. 단아한 규수작가라는 수식어는 한무숙을 작가로서 조명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한무숙은 1918년 고위직 경찰, 관료의 딸로 태어나 부산여고를 졸업한 후 그림 유학을 준비하던 중 훗날 한국은행 총재가 되는 김진흥과 중매 결혼했다. 작품은 없고 스캔들만 요란한 존재로 조롱받았던 1세대 신여성 작가(김명순·나혜석·김일엽)들이 정신병자, 행려병자, 여승으로 삶을 마감한 것과 달리, 한무숙은 작가와 여성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꾸렸다. 그의 이러한 성공(!)은 가족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글을 누워서 썼을 정도로 아내나 며느리 어머니가 아닌 작가로서의 자기를 규제했기에 가능했다. 누워서 쓴 <등불 드는 여인>(1940)은 신시대사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됐지만, 그는 시상식장에 가지 못했고 흉이 될까봐 시부모에게 당선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한무숙은 이청준 문학이 그러하듯이 거의 최초로 정신병리적 주체를 통해 여성의 현실과 사회적 무의식을 탐사하고, 닫힌 현실에서 도주의 틈새를 찾고자 했던 여성 모더니스트였다. 일제강점기부터 정신병에 관한 담론이 매체를 통해 조금씩 소개됐지만, 한국에서 정신병원이 설립된 것은 해방 이후부터다. 1945년 8월 청량리정신병원을 시작으로 1962년 2월에 국립서울병원이 개원하면서 정신병은 문학에서 단순히 광기가 아니라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은유이자 사회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저항으로 의미화됐다. 작가의 대표작인 ‘감정이 있는 심연’에서 유수한 가문이 강요하는 트로피가 되기를 강요당하는 대가댁 아씨 전아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를 유혹하고, 발작을 일으킨 후에는 정신병을 방어막 삼아 꽃과 뱀 등 성적 상징을 그리며 여성적 희열을 포기하지 않는다. 작가가 아무도 몰래 글을 쓴 것은 글 쓰는 자기를 수치스러워했기 때문이 아니라 글쓰기가 고루한 전통과 가부장제의 토대를 침식하는 도전임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