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에일리언의 시선에서 본 전주 독립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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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에일리언의 시선에서 본 전주 독립서점

입력 2026.04.24 15:06

  • 정고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선임연구원
전북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선미촌에 자리 잡은 서점 ‘물결서사’. 물결서사 제공

전북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선미촌에 자리 잡은 서점 ‘물결서사’. 물결서사 제공

서점 ‘물결서사’가 자리한 전북 전주시 선비촌의 유리방. 정고은 제공

서점 ‘물결서사’가 자리한 전북 전주시 선비촌의 유리방. 정고은 제공

“하… 어쩌지? 사실 나 전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데.”(외계인 투어 중에서)

<지역의 사생활 99>는 전북 군산에 기반을 둔 독립 만화 출판사 삐약삐약북스가 펴내는 지역 이슈 만화책 시리즈로, 그 지역 출신이거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저마다의 독특한 그림체로 지역 이야기를 그려낸다. 첫 장에는 지역명의 유래, 유명한 음식과 장소 등을 간단히 소개하며, 더하여 지역의 주요 응급의료 서비스 안내를 받을 수 있는 번호를 적어두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읽은 전주편 외계인 투어는 말 그대로 ‘전주 사람’ 한 명이 우주선으로 섭외(납치)된 후 전주로 여행을 간 외계인들의 안내자가 되어 막걸리 한상차림, 순대국밥, 콩나물국밥, 전일슈퍼 가맥을 먹기도 하고 덕진공원, 객사, 전주영화제, 한옥마을, 전동성당 등에 방문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재밌는 점은 만화를 그린 ○○○ 작가 자신이 투영된 ‘전주 사람’도 ‘에일리언(alien·이방인, 외계인, 외국인 등으로 번역된다)’이라는 사실이다. ○○○ 작가는 전주에서 20년을 살았지만 타지 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었고, 가족들도 모두 전주를 떠났다고 한다. 나 역시 이제는 이방인에 가깝다. 지인들이 전주 맛집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우리 집은 비빔밥도 콩나물국밥도 전혀 사먹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동네를 벗어난 적도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맛집’은 내가 살던 동네에서 적어도 한 시간은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전주는 생각보다 넓다). 나는 스스로를 전주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도 타지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진 탓에 속으로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다. 서점과 관련해서는 전주 ‘토종 서점’인 민중서관이나 홍지서림에서 책을 산 적이야 있지만, 그곳에서 책에 파묻혀 살았다거나 운명적인 책을 만났다는 극적인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리방’이 남아 있는 동네의 ‘물결서사’

‘전주’ 하면 비빔밥, 콩나물국밥, 순대국밥, 한옥마을을 떠올릴 테지만 사실 전주에는 꽤 많은 독립서점이 있다. 최근에는 수많은 연꽃이 피어나는 덕진공원 한가운데 있는 ‘연화정도서관’이 SNS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물결서사’는 공간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 동네는 물이 많은/좋은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도로명주소 ‘물왕멀’ 외에 ‘선미촌’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선미촌은 과거 성매매 집결지로, 일제강점기부터 인근 소세이초(상생정·현 태평동) 유곽이 존재했으며, 과거 기차역(현 전주시청 자리)이 있던 서노송동에 한국전쟁을 거치며 업소들이 점차 이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12월 문을 연 물결서사는 2014년부터 전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을 실시하면서 사들인 업소 건물 중 하나를 빌려 탄생한 서점으로, 지명에서 ‘물결’이라는 단어를 가져오고 서적방사(書籍放肆)의 줄임말이자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서사’를 합쳐 이름을 지었다. 2018년까지도 영업을 하는 업소가 있었지만 2021년에 모두 폐쇄됐고, 현재는 이른바 ‘유리방’으로 불리던 건물들이 남아 있는 상태다. 마침 내가 방문한 날은 1월 1일이라 그런지 더 사람이 없어 스산한 느낌을 받았다. 물결서사는 이러한 ‘쇠락한 구도심’의 폐쇄된 집결지에 자리를 잡고 북토크, 낭독회, 상영회, 전시, 장터 등을 활발하게 열면서 사람을 모으고 책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에 있는 시집 전문 서점 조림지의 내부 모습. 정고은 제공

전북 전주시에 있는 시집 전문 서점 조림지의 내부 모습. 정고은 제공

프라이드 깃발이 맞이하는 ‘조림지’

물결서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나와 친구들이 시내라고 부르면서 옷을 사러가거나 시험이 끝난 후 놀러가던 객사가 있다. 이 언저리에 서점이 밀집한 가운데, 조림지라는 시집 전문 서점은 아담한 프라이드 깃발을 내걸고 ‘모두’를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집 전문이라니 말만 들어도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존재 방식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가 돈이 되는 걸 보여주겠다’는 도발적인(?) 문구가 액자에 걸려 있다.

조림지도 물결서사와 마찬가지로 시 낭독회나 합평회를 열기도 하고, 아주 적은 공간 이용료를 내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 시를 읽고 쓸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서점의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손님이 요청하고 자유롭게 비용을 내면 서점지기가 즉흥시를 써준다는 것이다. 내향인으로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지개 유니콘’이라는 제목의 시를 요청했다. 마침 조카가 무지개와 유니콘(아마도 **핑에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에 꽂혀 있는 덕분에 퀴어친화적인 서점 분위기에 잘 맞는 제목을 제시할 수 있었다. 서점 지기의 포스팅에 따르면 2025년 11월 24일 500일을 맞이한 즉흥시 쓰기를 통해 총 372편의 시를 썼다고 하니 상당한 호응이라고 할 수 있다. 즉흥시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고요한 시간 동안, 서점지기와 손님은 각자 어떤 상상을 하게 될까.

작년 6월, SNS에서 ‘전주 책쾌’라는 행사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남부시장 문화공판장 ‘작당’에 갔다가, 30도의 더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이것이 바로 텍스트힙인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서 이책 저책을 수집하다가 서울에 사는 동료를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는 ‘지역’에 북페어가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과 달리, 독립 출판-독서와 연계된 조건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결서사 대표이자 책쾌 총괄기획자이기도 한 임주아 시인은 서점에서 대화하던 중 책쾌의 엄청난 인기와는 달리 그해 예산이 급감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기사를 보니 약 1억원의 예산이 삭감됐는데, 전년 대비 1000명이 넘게 늘어나고 48%가 다른 지역 방문객이었으며, 응답자의 98%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한다. 비단 전주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한편 내가 책쾌에서 샀던 <제2회 군산초단편문학상 수상작품집>의 경우 군산의 동네책방들이 예산을 모아 문학상을 운영했지만, 2025년에 중단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물결서사 소개글에는 “동네에서 가장 낯선 존재는 책이었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그 동네에서 가장 낯선 존재는 책이 아니라 ‘전주 사람’이면서도 지역의 성매매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닐지 생각했다. 지역민들이 떠난다는 지역 문제는 대체로 출산 지원, 일자리 지원, 아파트촌 개발 등으로 귀결되곤 한다. 이러한 해법에는 지역에 살면서도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어떤 존재들은 지워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전주에서 나고 자라 정착한 사람, 정착했으나 ‘주민’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람, 나처럼 반쯤은 걸쳐 있는 사람, 일시적인 방문에 그치는 사람을 서로 연결해주는 공간이 독립서점이라면, 이들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서 ‘문제’로만 치부되지 않는 새로운 지역의 서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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