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상업지구 타흘리아 거리. AFP연합뉴스
중동 전쟁은 당사국을 넘어 세계 에너지 시장 전체에 충격을 주고 있다. 기름값 상승과 환율 불안,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긴밀히 연결돼 있어 한 지역의 분쟁이 곧바로 글로벌 경제에 파급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에서는 분쟁과 전쟁이 이어졌다. 아랍 국가들은 석유로 국부를 키웠지만, 사회·정치 체제의 근대화는 뒤따르지 못했다. 오늘날 이슬람 경제가 직면한 도전과제를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칼럼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2012년 가을,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제다에 있는 이슬람개발은행(IsDB)의 초청으로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권의 경제개혁 과제를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게 된 연유였다. 그 당시는 아랍의 봄의 여파로 이슬람권의 많은 국가가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겪고 있는 시점이었다. 제다는 홍해 연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이슬람의 성지 메카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딸들 앞날 생각하면 해외서 키우고 싶다”
비행기에 탑승하니 창가 쪽인 내 좌석에 젊은 부인이 앉아 있었다. 인사를 하고 내 자리라고 하니 창가에 계속 앉아서 가고 싶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휴가로 딸 둘과 함께 파리에 왔다가 제다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사우디 시댁은 제다에서 건설업을 하고, 본인은 레바논 출신인데, 양가 부모는 서로 아는 사이라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사우디 내부 상황이 여성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매년 해외여행을 일종의 결혼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리하여 매년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 한두 달을 보낸다고 한다.
아직 10대인 두 딸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면, 표정이 어두워졌다. 딸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해외에서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면 딸들과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요?” 내심 파리나 런던을 떠올리고 물었지만, 답은 뜻밖이었다. “뉴욕을 선택할 겁니다.” 유럽은 차별이 심하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미국이 낫다는 것이다. 시댁의 재력으로는 어렵지 않지만,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고 한다.
파리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잠시 들러 승객을 태우고 최종 목적지인 제다로 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입국하려면, 여성들은 아바야를 입어야 한다. 옆자리의 젊은 부인도 화장실에서 아바야로 갈아입고 나왔다. 제다로 입국하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다시 해외로 나올 때까지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없어, 기사나 남자 친척이나 남편에 의존해야 한단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운전은 2018년 6월에서야 허용됐다.
2018년 6월 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코바르의 한 도로에서 한 사우디 여성이 친구들을 태우고 운전하고 있다. 이날 사우디는 여성 운전 금지 조치를 폐지했다. AFP연합뉴스
IsDB 회의는 쉽지 않았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책담당자들이 모여 각국에서 당면한 다양한 정책 과제를 논의하고 실현 방안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이슬람 국가들이 당면한 도전은 거세지만,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기반을 갖추고 필요한 재정을 조달해야 하는데, 상당수의 국가는 이러한 준비가 미흡한 상태였다. 현실과 정책 그리고 제도의 괴리가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IsDB 측에 사우디 젊은 세대와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했다.
제다 시내의 약속된 장소는 건물 2층의 조용한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10여명의 사우디 청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자발적인 시민운동 모임으로 사우디 정부에 개혁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들이 절반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그들은 의상도 자유롭고 악수도 스스럼없이 하고 영어도 유창했다. 아바야를 벗으니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캘빈클라인도 있고 베르사체도 있고 루이뷔통도 있었다. 그 한정된 공간에서 그들은 파리나 뉴욕의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해외에서 생활하거나 여러 차례 여행한 경험이 있었다. 여러 이유로 고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슬람권서 연간 평균 약 200만명 유출
청년들과의 대화는 진지하고 흥미로웠다. 크게는 아랍 세계, 좁게는 사우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비판과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이슬람 율법이 지향하는 방향과 세속 사회 사이의 괴리,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석유 자원, 권력자들의 부패, 뒤처진 교육제도, 사회·경제 활동의 많은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 제한, 아랍권 내에서의 갈등 등 다양한 사안이 거론됐다. 특히 종교 집단이 기득권이 돼 개혁을 시행하는 데 발목을 잡는 점을 청년들은 강하게 비판했다.
제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질문을 청년들에게도 던졌다.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요?” 대답은 갈렸다. 일부는 해외를 선택했고, 다른 일부는 남아서 무언가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해외를 선택한 경우는 유럽과 미국이 비슷하게 나왔다. 해외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니 여성과 남성이 달랐다. 여성은 해외에서, 특히 가고 싶은 선진국에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점을 거론했고, 남성은 경제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릴 전망이 낮은 것이 주된 이유였다.
장기간에 걸친 국가 간 이주 패턴을 살펴보면, 이슬람권 전체는 최근 유입보다 유출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 개별 국가별로는 이주 패턴이 다양한데,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순유입 국가다. 지난 60여년 동안의 이슬람권 전체의 흐름을 보자. 1980년대까지는 유출과 유입이 비슷한 수준이어서 순이민 규모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유출이 유입을 조금씩 초과하다가 2010년대 이후 최근까지는 유출 규모가 크게 늘어나, 이슬람권 전체에서 연간 평균 약 200만명의 순이민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장기적 패턴은 이슬람권 사람들이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는 것은 그곳의 경제·정치·사회 체제가 개인이 바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데 기인한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남아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참여하거나, 또는 복종하거나 그게 안 되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게 된다. 이슬람권에서는 여러 이유로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좌절됐다. 좌절된 노력과 그 이유를 다음 글에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