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그 자체로 악랄”…그의 문제는 ‘정신질환’ 여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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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그 자체로 악랄”…그의 문제는 ‘정신질환’ 여부가 아니다

입력 2026.04.24 15:04

수정 2026.04.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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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의혹 1기 때부터 제기…최근엔 수정헌법 25조 발동 주장도

“의학적 접근 역효과 우려…그는 정신분석 대상이 아닌 정치적 문제”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종종 의식의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크리스마스 리셉션에서 페루의 독사에 대해 8분 동안 장황하게 이야기하거나, 내각회의에서 샤피 펜에 대해 길게 딴소리를 하고, 대이란 전쟁 관련 연설을 하다가 갑자기 황금색 백악관 커튼을 칭찬했다. 그의 이러한 화법은 청중을 신경 쓰지 않는 트럼프 특유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이란 전쟁이 시작된 후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를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선 ‘설마’ 했던 의심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전시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의식과 언행을 저 정도로 통제하지 못하는 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이 미친놈들아, 당장 해협을 열어라! 안 그러면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두고 봐라! 알라에게 찬양을!”이라는 글을 올리자, 급기야 MS나우 방송의 수석 의학 분석가인 빈 굽타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지증의 모든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엑스(X)에 “예측 불가능하고, 문장을 끝까지 말하지 못하며, 자주 혼란스러워하고, 사고의 흐름이 비논리적이며, 단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인지증의 징후”라고 썼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대통령이 미쳐서 실정” 주장은 현명한 걸까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대한 의혹은 1기 행정부 때부터 반트럼프 진영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2024년 대선 직전에는 한 반트럼프 단체가 정신건강 전문가 2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트럼프는 심각하고 치료 불가능한 인격장애, 즉 ‘악성 나르시시즘’ 증상을 앓고 있다”며 “지도자로서 매우 부적합하다”는 광고를 뉴욕타임스(NYT)에 공개서한 형태로 게재하기도 했다. 악성 나르시시즘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사상가인 에리히 프롬이 아돌프 히틀러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진찰하지도 않고 그가 악성 나르시시즘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서명한 전문가들은 ‘골드워터 규칙’ 위반에 해당한다. 이 규칙은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당시 한 잡지사가 정신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후 “골드워터는 조현병 환자”라고 보도하자, 골드워터는 명예훼손으로 잡지사를 고소해 7만5000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이후 미 정신의학협회는 본인의 동의를 얻어 직접 진찰하지 않은 한 정신건강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해선 안 된다는 윤리 원칙을 제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골드워터 규칙’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서한에서 “전문가들이 정신질환을 정의하고 치료하는 데 쓰는 기준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V)은 계속 현대화해왔다”며 “우리는 트럼프의 행동을 수년에 걸쳐 수천시간 동안 관찰했고, 그와 직접 접촉했던 수십명의 사람도 이 같은 관찰 결과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질환 가능성을 10년 동안 주장해온 존스홉킨스대 심리학자 존 가트너도 “골드워터 규칙은 환자를 직접 치료하지 않으면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유명인을 그렇게 진단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라면서 “게다가 환자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라면 임상 면담은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진단 방법”이라고 엘파이스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전쟁이 난항에 빠지자 “정신 나간 사람을 대통령직에 앉혀선 안 된다”며 수정헌법 제25조를 발동해 그를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수정헌법 제25조란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직무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부통령과 내각 과반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을 중단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이 모든 실정의 원인을 “대통령이 미쳐서”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방법일까. 이는 오히려 문제의 초점을 트럼프의 정신질환 여부로 옮겨가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에 관해 설명하던 도중 총을 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에 관해 설명하던 도중 총을 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부분의 독재자는 정신질환자 아니다”

듀크대학 의과대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DSM 진단표에서 자기애성 인격장애 진단 기준을 작성하는 데 참여했던 앨런 프랜시스 박사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7년 펴낸 저서 <정신과 의사가 분석하는 트럼프 시대>에서 “트럼프를 아마추어처럼 진단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근본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과대망상적인 자기중심성, 위대해지고자 하는 강박, 특별한 존재라는 느낌, 끊임없는 찬사 요구, 특권 의식, 공감 능력 부족, 착취적이고 오만한 태도 등 트럼프 대통령이 장애의 기준을 충족한다는 분석은 정확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자기애적 성향을 지녔다고 해서 트럼프가 정신질환을 앓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기애성 인격장애 진단의 핵심은 그러한 행동이 임상적으로 스스로 유의미한 고통이나 기능 장애를 유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거의 모든 정치인이 그 같은 진단 기준에 부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러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큰 고통을 줄지언정 자신이 고통을 겪는다는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는 그 행동으로 인해 명성, 재산, 정치적 권력 등 아낌없는 보상을 얻었다.

프랜시스 박사는 트럼프에게 쉽게 정신질환 낙인을 찍는 것은 “정신과 진단이 너무 경솔하게 남용돼 나쁜 행동을 모두 정신질환으로 잘못 분류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대부분의 연쇄살인범, 테러리스트, 강간범, 독재자는 정신질환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의 무례한 태도, 저속한 언행, 폭력적인 행동은 미국의 위대함을 훼손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그를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트럼프가 미국과 세계에 위협이 되는 이유는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악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의 잘못된 행동을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를 과소평가하고, 그의 정책이 지닌 위험성에서 관심을 돌리는 것”이라면서 “트럼프는 정신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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