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0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임관식에서 기수가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육군사관학교(육사)는 오뚝이였다. 육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군부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을 3명(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나 배출했다. 김영삼 정부 탄생 이후에는 정계와 관계에 진출하는 육사 출신 인사가 현저하게 줄었지만, 육사 출신의 군내 영향력은 여전했다. 진보 정권이 육사 카르텔을 깨려고 했으나, 보수 정권이 다시 들어서면 육사 출신들은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육사는 12·3 내란의 여파로 ‘동네북’ 신세다. 이번 정부의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는 지난 1월 3군 사관학교 통합 권고안을 국방부에 제출했다. (가칭)‘국군사관대학교’ 설치(안)으로, 육·해·공군사관학교 등 8개 교육단위를 단과대학 형태로 포괄하는 종합대학교 구상안이다. 8개 교육단위는 교양대학,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 국방의무사관학교, 학군·학사장교교육단, 국방과학기술대학원 등이다. 1~2학년은 통합 캠퍼스에서 기초소양 및 전공 기초교육을, 3~4학년은 각 군 사관학교에서 전공 심화교육과 군사훈련을 받는 ‘2+2 네트워크형 통합 모델’이다. 의과대학의 예과와 본과 운영 개념과 유사하다.
권고안은 각 군 사관학교 캠퍼스를 통째로 합치는 통합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의 필요성과 형태 그리고 캠퍼스의 위치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태릉에 있는 육사 캠퍼스의 존폐는 뜨거운 감자다.
‘뜨거운 감자’ 태릉캠퍼스
육사 총동창회는 정부의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안에 대해 조직적 반대 운동에 돌입했다. 육사 총동창회는 지난 3월 24일 3군 사관학교 통합을 저지하기 위한 ‘액션플랜 2026’을 수립했다. 특히 육사 옆 태릉골프장 내 아파트 건설 문제와 관련해서는 ‘화랑대 문화유산 보존 TF’와 시민운동단체인 ‘태릉 역사·문화·안보 생태지구 추진위원회’를 연계해 대응하기로 했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이 아파트단지로 바뀔 경우 육사 캠퍼스도 아파트 공급지로 바뀔 것을 우려해서다.
육사 부지 이전은 현재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적지 않다. 육사 부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태릉골프장과 함께 꾸준히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육사가 3군 사관학교로 통합되면 태릉캠퍼스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들은 3군 사관학교 통합 대신 육사를 ‘태릉 육군대학’으로 개칭해 제2의 도약에 나설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현재 태릉골프장 인근 땅은 이미 LH가 대부분 수용한 상태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태릉골프장(83만㎡)과 육사 부지(67만㎡)를 함께 묶어 아파트단지로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다. 태릉골프장과 맞닿은 구리 갈매역세권 공공주택지구와 육사 부지까지 합하면 이 일대 3만 가구 정도의 신도시급 공급도 가능하다. 캠퍼스 면적은 육사가 서울대 다음으로, 2위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29일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태릉 군 골프장 부지를 활용해 6800가구를 공급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2030년 착공해 청년과 신혼부부 맞춤형 주거공간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20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임관식에서 신임 소위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태릉골프장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8·4 부동산 대책에서도 1만 가구 규모 주택 공급이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교통 체증 등을 이유로 반대에 나서고 국방부도 반대해 흐지부지됐다. 그랬던 곳을 정부는 이번에는 세계유산과의 조화를 위해 중저층 주택을 중심으로 한 저밀도 개발로 방향을 틀고 공급 물량을 6800가구로 줄여서 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태릉골프장은 세계문화유산인 태릉·강릉과 가까워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이다. 태릉골프장 면적의 13%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과 중첩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 사업을 진행했다는 계획이다.
육사 쿠오바디스
육사는 1946년 5월 (남조선)국방경비대사관학교로 태릉에서 개교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조선경비대사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하자 1948년 9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개칭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는 공식 사관에서 해방 이전 구한말과 항일무장투쟁 시절 무관학교 등 근대군사학교들을 전신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육사는 해방 이후 1945년 12월 설립된 군사영어학교를 모체로 삼고 있다. 이를 놓고 창군 초기 육군 주역 상당수가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육사는 6·25전쟁의 발발로 1950년 7월 임시 휴교했다. 육사는 1951년 10월 경남 진해에서 4년제로 재개교했다. 육사가 임시 휴교와 재개교를 하는 사이 육군종합학교라는 이름의 6개월 속성과정의 전시사관학교가 창설됐다가 폐교됐다.
육사는 휴전 이후 1954년 6월 태릉으로 재이전했다. 육사의 태릉캠퍼스는 6·25전쟁 초기 북한군이 점령해 북한인민의용군 훈련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북한인민의용군은 6·25전쟁 당시 북한이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 동원 및 징집된 병력이다.
3군 사관학교 통·폐합안이 제시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과거 노태우 정부 때도 거론됐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3월에는 국방부의 ‘사관학교 교육 운영 개선 TF’가 구성됐다. 그러나 사관학교 교육 통합은 조직 이기주의에 눌려 흐지부지됐다. 그랬던 것이 이번 12·3 내란으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태릉골프장 택지 개발 추진과 맞물려 전국 지자체가 육군사관학교 유치를 위한 물밑 경쟁에 나서기도 했다. 육사 유치 경쟁에는 충남 논산시, 강원 화천군, 경북 상주시 등이 뛰어들었다. 동두천·연천 등 경기 북부 지자체와 전북 장수군도 곁눈질을 했다.
현재 ‘(가칭)국군사관대학교’의 위치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방 균형 발전과 서울 주택 공급을 명분으로 태릉캠퍼스의 완전 폐교도 물밑에서 거론되는 분위기다. 국군사관대학교의 종합캠퍼스를 대전 자운대나 다른 지역으로 정한 후 육사 캠퍼스는 경북 영천으로 보내 3사관학교와 통합하는 방식이다. 군의 인재와 교수진 확보를 위해서는 종합캠퍼스를 태릉의 육사 부지로 하고, 육사는 영천 3사관학교와 통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의 구체적인 결정은 오는 5~6월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