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에서 일하고 있는 장인의 뒷모습. 이재덕 기자
한 동네에서 2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해온 장인은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드라이클리닝 기계에 넣는 석유계 용제를 격주로 구입하는데, 전쟁 전인 2월 말 한통(18ℓ)당 4만3000원이던 가격이 3월 중순 4만5000원, 4월 초 6만3000원으로 뛰었다. “더 오르기 전에 사야겠다 싶어 일주일 만에 또 샀는데, 이번(4월 둘째 주)엔 7만3000원이 됐어. 겁 날 정도네.” 세탁된 옷에 씌우는 비닐도 300장 기준 2만원에서 2만4000원으로 올랐단다.
원료·재료 값이 무섭게 치솟지만, 4년 전 세탁소 한쪽 벽에 붙여둔 세탁 요금표에는 변동이 없다. 정장 한 벌 드라이클리닝 요금은 여전히 1만원. 장인에게 물었다. “원가가 이렇게 올랐는데, 요금을 300원이든 500원이든 좀 올리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냥 하던 대로 받는 거지 뭐. 번거롭기도 하고, 기름값은 전쟁 끝나면 다시 내리겠지. 기름값 출렁일 때마다 요금을 올렸다 내렸다 할 수는 없잖아.”
번거롭다는 말은 핑계일 뿐, 사실 장인은 요금을 ‘안’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못’ 올리는 것이다. 행여나 단골의 발길이 끊길까, 우후죽순 생겨나는 프랜차이즈나 무인 세탁소로 손님을 뺏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매일 밤 계산기를 두드리면서도 끝내 요금표를 고치지 못하는 장인은 먼 이국땅에서 날아온 전쟁의 ‘청구서’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전쟁 한 달을 넘긴 지금, 청구서를 받아 든 이는 장인만이 아니다. 지난 호 ‘표지 이야기’ 기사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석유화학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일감과 월급이 줄어든 사내하청 노동자, 원료 수급 불안에 시달리는 농사용 비닐 제조업체와 이를 걱정하는 농민, 치솟은 포장재 단가에 그마저도 물량이 달려 생산 중단을 고민하는 두부공장 사장, 유류비 증가분을 고스란히 떠안은 택배노동자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쓰레기봉투 대란’을 우려하는 사이, 이들은 최전선에서 전쟁의 충격파를 맞으며 우리를 대신해 그 여파를 흡수하고 있다.
아직 우리의 가계부에는 큰 변화가 없다. 동네 마트 가격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숨겨진 청구서’는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가 묵묵히 버티며 대신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쟁이 종결될지,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될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에 정부가 ‘전쟁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자금을 풀기로 했다. 이 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전쟁의 청구서를 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돈이 먼저 닿을 수 있는가. 이제는 진지하게 이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다.
이재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