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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사이클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26.04.15 06:00

수정 2026.04.15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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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57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작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이익 규모(43조원)를 훌쩍 넘어서는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 폭발과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약진, 여기에 고환율이라는 우호적 환경이 맞물린 결과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이면 미국 엔비디아를 제치고 글로벌 영업이익 1위 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달 말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SK하이닉스 역시 역대급 실적을 거뒀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들의 눈부신 실적 한편에선 민생경제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성장률 지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철강, 가전 등 주력 산업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수출의 낙수효과는 사라졌고, 거시 지표상의 풍요 속에 내수 경기는 차갑게 식어가는 ‘성장의 역설’이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대외 변수다. 한 달 넘게 이어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의 혈관인 호르무즈 해협을 짓눌렀다. 이 전쟁의 여파는 우리 이웃의 삶터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오고 있다. 여수산단의 석유화학 공장들이 원료 수급난으로 멈춰서자, 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월급봉투가 먼저 얇아졌고, 비닐과 비료의 원료가 귀해지면서 농민들은 가을 농사를 걱정하며 농자재를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기름값 폭등은 고스란히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들의 부담으로 전가됐다. 전쟁의 충격은 이처럼 아래에서 먼저 맞고 있다. 대기업은 환율 상승과 수요 증가를 기회로 삼지만, 중소기업과 노동자는 똑같은 변수로 생존을 걱정한다. 같은 ‘외부 충격’이지만 그에 따른 여파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경기 하방 위험이 본격화됐다고 경고한다.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은 물가를 자극하고 소비심리를 위축시킨다. 이미 소비자심리지수는 급락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다시 물가와 자산 가격을 자극해 자산가와 비자산가의 격차를 더 벌리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57조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주는 낙관론이 아니다. 정책의 초점은 ‘성장률 2%’라는 총량적 목표를 넘어 공급망의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취약계층의 생존을 지키는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열리길 기다리는 수동적 태도로는 달라진 세상을 버틸 수 없다.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만이, 언제 어디서 다시 날아올지 모를 ‘전쟁의 청구서’에 대응할 유일한 자구책이다.

이주영 편집장

이주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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