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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인스타그램 ‘돋보기’를 뒤적이며 좀비처럼 도파민을 찾아헤매던 어느 날이었다. 카드뉴스로 가공된 재밌고 시시껄렁한 ‘썰’들을 보는 게 취미인데, 그날따라 특이한 현상이 새삼 눈에 띄었다.
카드뉴스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범죄나 죽음을 연상시키는 단어의 글자 일부를 특수문자로 바꾸거나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이다. ‘범○(범죄)’, ‘마○(마약)’, ‘살○(살인 또는 살해)’, ‘○살(자살)’…. 심지어 ‘죽었다’는 서술어도 ‘○었다’ 같은 식으로 쓰인다. 초성만으로 ‘ㅂ죄’ ‘ㅁ약’ 같이 쓰거나.
신문이나 뉴스에서도 자주 쓰는 단어다. 그런데 언론보다 훨씬 자유롭게 언어를 쓸 수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왜 그 단어들이 가려질까? 찾아보니 가장 유력한 사유는 ‘자체검열’이었다. SNS 운영사나 알고리즘이 범죄·죽음 관련 단어를 기계적으로 차단(필터링)하기 때문에, 작성자가 애초에 알아서 단어를 가리는 것이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d**d(dead)’, ‘k**l(kill)’ 같은 단어를 왜 가리느냐는 네티즌들의 의문을 볼 수 있었다. “필터링 때문”이라는 답글이 달렸다.
SNS의 집착적인 ‘무균화’와 작성자들의 ‘과잉 자기검열’도 충분히 우스꽝스럽지만, 더 어이없는 건 따로 있다. SNS가 언제부터 ‘해로운 것’(그걸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지도 모르겠지만)을 신경 썼나? 오늘날 SNS는 극우·인종차별·성차별적 담론이 유통되는 주요 통로다. 온갖 혐오와 극단적 주장들, 순진한 피해자를 낚는 범죄의 마수까지도 들끓는 곳이다. SNS는 그런 게시글을 사실상 방치한다. ‘범○’나 ‘죽○’ 같은 ‘껍데기’에는 그렇게나 집착하면서 말이다.
극우·인종차별·성차별 관련 게시글도 ‘기미만 보이면 무작정 차단하자’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플랫폼에서 어떤 걸 차단할지를 플랫폼 운영 기업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솔직히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닐 테다. 다만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보면 그 판단기준이라는 게 좀 웃기지 않냐는 얘기다.
더 웃기는 건 공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다. 오늘날 공교육은 ‘정치’나 ‘사회 이슈’ 같은 주제를 강박적으로 표백한다. 그런 주제가 아주 조금이라도 담긴 이야기는 실수로라도 손을 대면 손끝이 썩어가는 독극물처럼 취급된다. ‘껍데기’만 허겁지겁 숨기는 사이 더 해로운 것들, 예컨대 극우·인종차별·성차별적 담론 같은 건 무한대로 퍼져나간다. SNS에서 일어나는 일과 구도가 완전히 똑같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최근 주간경향이 인터뷰하기도 했던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의 ‘청소년 극우화’ 관련 기사들을 보면 되겠다.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라 ‘글자 가리고 아웅’이다. SNS나 교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도 같다. 치열하게 본질에 맞서는 ‘어려운 길’ 대신, 드러난 현상만 통제하는 ‘쉬운 길’을 택하는 무책임한 태도가 정치·행정에 얼마나 만연했나.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 같은 꼴이다. 그래 봐야 하이에나들의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타조가 하이에나를 이기는 방법은 하나다. 맹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달려가 뻥! 발차기를 날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