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이야기]여성 의료 기틀 닦은 두 외국인, 우표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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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이야기]여성 의료 기틀 닦은 두 외국인, 우표로 만난다

입력 2026.04.08 06:00

수정 2026.04.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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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의료 발전에 헌신한 외국인 여성 로제타 셔우드 홀과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 기념우표. 우정사업본부 제공

한국 여성 의료 발전에 헌신한 외국인 여성 로제타 셔우드 홀과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 기념우표. 우정사업본부 제공

한국에서 간호 교육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녀관(普救女館)에서 1903년 설립한 간호원양성학교가 그 기원이라는 분석이 많다. 간호원양성학교 설립으로 이전까지 명확한 체계 없이 도제식으로 교육되던 간호학이 정식 교육·훈련 체계로 발돋움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한 외국인 여성이 있었다. 캐나다의 간호사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는 초대 간호원장을 맡아 양성학교 운영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영어 ‘Nurse’의 역할과 의미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아 ‘간호원(간호사)’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간호복 디자인도 개발했다. 1세대 한국인 간호원들을 직접 훈련하기도 했다.

이에 ‘간병을 도와주는 사람’ 정도로 여겨졌던 간호원 전문 직종으로서의 외양을 갖추게 됐다. 1987년 의료법 개정으로 간호원 명칭은 간호사로 바뀌었다. 에드먼즈는 1945년 세상을 떠났고, 한국 정부는 2015년 그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보구녀관에는 여성 의학 발전에 헌신한 또 다른 외국인들도 있다. 미국인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90년부터 조선에 들어와 43년간 한국 근대 의학교육 발전에 이바지했다. 홀은 당시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과 조선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홀은 조선에 남아 진료를 이어갔다.

홀은 진료뿐 아니라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육에도 힘썼다. 시각장애인 교육을 위해 직접 점자 체계인 평양점자(한글점자)를 고안해 보급했고, 1909년에는 평양맹아학교를 만들었다.

의료 교육의 제도적 기틀을 닦는데도 역할을 했다. 홀은 1898년 평양에 여성병원인 광혜여원을 설립하고, 여성의학반을 조직해 의료 인력을 배출했다. 1928년에는 한국 최초 여성 의사 양성 교육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개설했다.

홀은 1951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족과 함께 안장됐다.

여성 의료 발전에 헌신한 두 외국인 여성을 기념하는 우표가 새롭게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두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기념우표 2종(48만장)을 4월 7일 발행한다고 밝혔다.

우정사업본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우정사업본부는 2022년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 독립에 헌신한 외국인’을 주제로 호머 베잘렐 헐버트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모습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한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들은 유교적 관습과 사회적 제약으로 여성들의 의료 접근이 쉽지 않았던 조선에 찾아와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을 치료하고 여성 의료인을 체계적으로 길러냈다”고 설명했다. 기념우표는 가까운 총괄 우체국을 방문하거나 인터넷 우체국(www.epost.go.kr)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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