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쩌면 버티는 것도 ‘급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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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쩌면 버티는 것도 ‘급진성’이다

입력 2026.04.03 14:39

  • 고경표 콘텐츠 기획자
인천 배다리의 ‘나비날다’ 서점. 고경표 제공

인천 배다리의 ‘나비날다’ 서점. 고경표 제공

‘지역 급진주의 서점’은 책의 거래를 넘어 문화·정치적 운동과 소통이 이뤄지는 장소다(킴벌리 킨더, <급진주의 서점: 사회운동을 위한 대항공간>). 단어의 조합만으로는 오랜 골목의 작은 서점에서 청년들이 은밀하게 작당하는 광경이 연상된다. 실제로 한국 민주화 운동기 인문사회과학서점은 운동권의 거점이자 지식·정보의 가교였으나, 1987년 이후 그 서점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급진적 에너지도 상실됐을까? 아니다. 동네에 정박한 서점들에서 그 모종의 힘은 자생하고 있다.

인천, 배다리와 화수동

인천에서 책과 관계된 곳이라면 배다리가 가장 먼저다. 배다리와 책의 인연은 해방 이후로 거슬러 간다. 해방으로 인해 인천을 떠난 일본인들이 남긴 서적과 6·25전쟁을 겪으며 생계를 위해 내놓은 책들이 리어카로, 노점으로, 헌책방 거리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들어 헌책방은 30~40여개로 늘어나 전국에 명성을 날렸다. 당시 동인천이 인천의 학군지였기에 충분한 공급과 수요가 있던 것도 한몫했다.

반면 화도진지가 있는 화수동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1960년대 산업화를 거치며 노동자들의 도시로 변모했다. 만석동 동양방적을 비롯한 해안 매립지의 각종 군수공장이 들어선 결과였다. 이곳은 1978년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사건’과 ‘인천도시산업선교회’로 대변되는 노동운동의 상징성도 품고 있다. 화수부두는 1950~1970년대 조기 파시로 황금빛이었고, 새우젓 항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화수동은 인천을 단단하게 집약해 놓은 조약돌 같은 공간이었다.

1990년대부터 동인천의 학교가 하나둘 옮겨가자 도시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연안부두가 개장하자 화수부두가 힘을 잃었고, 인천이 확장되면서 화수동의 인구는 감소한다. 사람들이 영위하던 일상이 사그라들자 도시는 빠르게 낡아갔다.

그런데 배다리가 들썩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6차선 산업도로가 마을을 관통한다는 것이었다. 그 계획은 마치 바리깡으로 멀쩡한 머리 한가운데를 싹 밀어버리는 형국이었다. 소식이 알려지자 인천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였고, 그중 하나가 서울에서 활동하던 ‘청산별곡’의 서점 ‘나비날다’였다. 한편 1973년부터 배다리를 지켜온 ‘아벨서점’은 ‘들어온 이들’과 ‘머물던 이들’의 교집합이 됐다. 이들은 산업도로를 막기 위해 전복하는 급진성이 아닌, 유지하는 급진성을 선택했다. 거대한 변화를 지양하고 일상을 지속하려는 선택이었고, 효율과 개발 대신 느림과 관계를 택한 행보였다. 주민들의 커뮤니티는 하나에서 둘, 셋이 됐고,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도맡는다.

인천 동구 화수동의 ‘모도’ 서점. 고경표 제공

인천 동구 화수동의 ‘모도’ 서점. 고경표 제공

나비날다는 인권·평화·환경의 이야기가 가득한 서점이자 배다리 마을 안내소였고, 공유공간을 실험하는 장(場)이었다. 서울의 ‘풀무질’에서 책을 위탁받아 판매하거나, 배다리의 또 다른 유휴공간을 발굴해 요일마다 운영자가 바뀌는 ‘요일가게’를 열기도 했다. 모든 활동은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것이면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확장하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즉 도시 개발 자본에 서점이 맞선 급진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배다리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에서 나비날다를 이어가고 있는 청산별곡은 공간 이전을 준비 중이다. 그는 “내 콘텐츠를 품을 공간 주인을 찾는다”는 공개 선언으로 마침내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 나비날다를 연 지 17년 만에 콘텐츠의 힘으로 갑을관계를 뒤집은 셈이다. 나비날다는 주민들이 연대를 통해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을 증명했고, 그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의 다양성과 활력을 불어넣은 법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도로로 시끄러웠던 배다리와 달리 화수동은 적막했다. 그곳에 젊은 책방 ‘모도’가 문을 열었다. 사실 오래된 동네에서 돈 안 되는 서점을 20대에 시작한 것부터 급진적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주인장은 그 얘길 정말 많이 들었고, 약 3년 동안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고 한다. 이제 ‘책 파는 것’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조약돌 같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모도는 실로 동네서점이다. 일단 주인장은 ‘얼굴 맞대고 거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주민들에게 책을 주문받거나, 동네 도서관과 학교에 책을 배달하는 일을 직접 한다. 요청이 있으면 인근 학교로 출장을 가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클럽도 운영하고, 지역 상점들과 연계해 전시를 열며 화수동 역사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모두 계획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든 동네에 자리 잡으며 생긴 일들이다. 그중 백미는 화수동의 지역성이 담긴 굿즈 ‘물때 달력’과 선결제 시스템이다. 물때 달력은 어촌인 화수동의 지역 특성이 반영된 달력으로 매년 초 책을 사는 손님들에게 증정한다. 선결제 시스템은 어른 손님이 청소년 손님을 위해 책값을 미리 내주는 것이다.

나비날다가 물리적 파괴에 맞서 관계로 장소성을 지켰다면, 모도는 잊혀가는 화수동의 이야기를 관계로 복원하는 셈이다. 도시가 낡고 기능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삶과 취향이 응집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서로를 돌보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곳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급진적인 일

나비날다와 모도 같은 서점은 흔히 ‘독립서점’으로 정의되지만, 그 공간이 지역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지역에서 행동하며 축적해온 시간은 다른 차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지역의 자리를 지키며 공동체의 변화와 필요에 반응해왔다.

나비날다는 서점이지만 마을의 이슈와 생활의 요구를 함께한다. 헌책과 새책, 안내소와 공유공간, 마을 사람과 타지 사람들이 교차하는 이곳은 단일한 기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무엇을 ‘한다’기보다 무엇이 ‘필요할 때’ 대응하는 공간에 가깝다. 모도 역시 마찬가지다. 출판에서 출발해 서점으로 이어진 이곳은 화수동 사람들과 역사를 자연스럽게 흡수한다. 공장과 노동의 기억, 재개발의 그림자 속에서 모도는 책을 중심으로 산책과 투어, 지역의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는 의도된 기획이라기보다 머무르며 생겨난 우연한 축적에 가깝다.

각자도생의 지옥도에서 서점은 각자가 머무를 수 있는 일종의 정박지인 셈이다. 지역 급진주의 서점의 필요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오늘날 지역의 급진주의 서점은 거대한 운동의 거점이 아니다. 대신 다양한 삶과 취향과 질문을 보존하고 버티는 장소다. 쉽게 제도화되지 않는 사유, 당장 유용하지 않다는 이유로 밀려난 관점,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한 고민과 행동이 머물 수 있는 공간. 배다리와 화수동의 책방들은 그렇게 도시의 주변부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급진적인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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