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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탐욕이 부른 참사

입력 2026.04.01 06:00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 현장에서 지난 3월 24일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 현장에서 지난 3월 24일 경찰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재수 없는 날이네.”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기름때를 머리에 맞은 노동자의 푸념은 비극의 전조였다.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는 우연이 아니다. 수차례 반복된 화재, 누적된 위험 신호, 묵살된 개선 요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예고된 인재’였다.

이 공장에서는 지난 15년간 7차례의 화재로 소방당국이 출동했다. 대부분 원인은 기름때와 분진, 유증기로 동일했다. 그럼에도 작업 환경은 안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유증기가 항상 떠 있었다”, “기름이 바닥과 벽을 뒤덮었다”고 말한다. 언제든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위험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점이다. 기계에 케이지를 씌우자는 건의는 “돈이 든다”는 이유로 묵살됐다. 세척유 드럼통은 지정 장소가 아닌 작업장 곳곳에 방치됐다. 환기와 집진 설비 개선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전은 비용 앞에서 늘 후순위였다.

참사는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번의 작은 사고가 쌓이고, 그때마다 외면된 선택이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는다. 이번 화재 역시 기름때와 유증기, 슬러지 같은 인화성 물질이 도화선이 되어 순식간에 번졌고 불법 증·개축으로 막힌 대피로, 부실한 소방 설비가 겹치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안타깝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2년 전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와 너무도 닮았다. 위험 물질, 반복된 전조, 무시된 경고, 부실한 대응까지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이런 참사가 영세사업장만의 문제도 아니다. 안전공업은 현대차 등에 엔진 밸브를 납품하는 매출 1300억원대의 중견기업이다. 그럼에도 안전관리 수준은 ‘비용 절감’ 논리 앞에서 쉽게 무너졌다. 이는 개별 기업의 일탈을 넘어 산업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를 시사한다. 제도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수십개 항목에 이르는 점검 절차가 있었지만, 정작 핵심 위험요인인 유증기와 기름찌꺼기는 점검 대상에 없었다.

참사 이후 드러난 경영진의 태도는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유가족에게 막말하고, 내부 제보자를 색출하려는 모습에서 기업가 정신은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안전보다 통제와 책임 회피가 우선인 조직문화 속에서 노동자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광경을 지켜봐야 하나. 정부는 지난해 12월 <중대재해 사고백서: 2025 실천만이 위험을 막는다>를 펴내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산업재해는 더 이상 불가피한 사고가 아니다. 반복되는 패턴은 분명하다. 위험은 차고 넘쳤고, 경고는 충분했으며,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그 선택이 비용과 효율을 향할 때, 결과는 언제나 비극이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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