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펴낸 장강명 작가 인터뷰
장강명 작가.
추천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골라주고 복잡한 논문도 AI가 요약해 핵심만 짚어주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700쪽 이상의 ‘벽돌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의 신작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글항아리)은 2016~2026년 11년간 100권의 벽돌책 독서 기록을 묶은 책이다. 작가는 벽돌책 독서를 “버거운 책을 읽는다는 좋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작 <먼저 온 미래>에서 알파고 이후 바둑계 변화를 심층 취재하며 AI가 인간의 노력과 가치를 어떻게 흔드는지를 짚었다. ‘벽돌책’은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지난 3월 24일 장강명 작가를 전화 인터뷰했다.
11년간 100권의 벽돌책 읽기
벽돌책 읽기는 지난하다. 낯선 분야의 벽돌책은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벽돌책 독서는 일부 작가나 전문가의 전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그런 통념에서 한 걸음 비켜선다. 장 작가는 “어떤 책을 읽든 ‘모든 내용을 명쾌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는 건 무리한 욕심 아닐까”라며 “핵심이나 결론을 포착해야 한다, 혹은 그 핵심이나 결론을 전두엽 어딘가에 새겨넣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책들을 읽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이해조차 쉽지 않은 책도 많았다고 고백한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그야말로 끙끙 앓으며 읽었다”고 했다. 그는 벽돌책을 읽는 의의가 지식의 축적보다는 독서의 과정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제가 그 책들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서평을 쓸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책들도 제 내면에 굵은 자국들을 남겼어요. <괴델, 에셔, 바흐>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단편소설도 한 편 썼습니다.” 그는 벽돌책을 읽는 과정은 “얇은 책이 줄 수 없는 경험”을 준다고 말한다. 지루해서 책장이 안 넘어가는 대목을 버티는 경험, 어떤 의견에 ‘정말 그럴싸한걸’ 하고 동의했더니 뒤이어 비슷하게 그럴싸한 반론이 쏟아져서 혼란에 빠지는 경험, 한 작가가 공들여 제출한 세계관이나 문제의식을 몇 주간 검토하면서 삶의 일부로 흡수하는 경험 등이다. 그는 “벽돌책 완독은 다른 행위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자의 사고체계에 가해지는 일종의 충격”이라고 말하며,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사람은 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벽돌책 완독은 다른 행위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자의 사고체계에 가해지는 일종의 충격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사람은 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환경과는 정반대에 있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채 1분이 안 되는 짧은 동영상도 재미없으면 바로 넘겨버리며 2~3시간을 흘려버리기 일쑤다. 반면 벽돌책은 펼치기 전부터 긴 여정임을 알기에 지루한 대목이 나와도 덮지 않고 버티게 된다. 벽돌책을 읽으면, 복잡한 사유를 견디는 힘인 지적 인내력이 커지는 이유다.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지적 인내력은 약화한다. 그 영향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 부담이 된다. 장 작가는 “모호한 문제, 불확실한 문제 앞에서 얼른 단순한 설명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성급하게 감정적으로 판단을 내리거나 다른 사람의 결론을 그대로 따른다”라며 “자기 삶의 중요한 결정을 자기 이성으로 내리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삶은 즉각적인 감정과 단기적인 반응으로 채워지고 “작은 습관과 경력이 쌓여 커다란 인프라가 된다는 사실도 체감하지” 못하고,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엉성한 음모론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는 지적 인내력을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기초정신력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사유를 견디고 자기 자신과 주변 상황을 높은 해상도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벽돌책 독서가 지적 인내력을 강화하는 훈련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링크나 버튼이 없는 매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 나오더라도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매체, 보상을 바로 주지 않고 며칠 혹은 몇 주 뒤에 주는 매체”가 바로 벽돌책이라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안락한 감옥’이다”
벽돌책을 읽는 과정은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는 알고리즘을 ‘안락한 감옥’에 빗댔다. “알고리즘은 사람한테 도전거리를 주지 못합니다. 1분을 본 후에 또 이어서 1분을 볼 수 있는, 안전한 것만을 주어 사람을 안락한 감옥에 가둡니다.” 반면 벽돌책은 다르다. 읽다 보면 낯선 세계가 펼쳐지고, 버거운 문장을 버티며 끝내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독자는 달라져 있다. 그 경험들은 삶의 결정적 순간과도 닮았다. 작가는 예상하지 못했고 준비도 안 된 일이 갑자기 닥쳤을 때, 이를 피하지 않고 돌파해온 과정이 한 사람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회사에 다니다 기자가 됐을 때도 그렇고, 기자로 일하다 어느 날 울컥해 사표를 낸 후 이참에 소설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마찬가지다”라며 자신의 삶을 예로 들었다. 도망칠까 포기할까 망설이던 순간에도 결국 “이건 내가 돌파해야겠다”고 밀고 나간 과정과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돌파하고 나면 생각보다 괜찮기도 하고, 상처투성이가 됐더라도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이 된다.” 반면 알고리즘이 건네는 ‘최적의 상황’ ‘딱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에 기대 살아왔다면, 그런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을 것이다.
글항아리 제공
그는 바둑계에 닥친 AI 충격을 다룬 <먼저 온 미래> 출간 이후, 강연에서 청중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였다고 전했다. 그가 내놓은 답은 “노력이 배신당하더라도 나는 근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임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보상받는다는 믿음, 상당 기간 인간이 크게 의지해왔던 그 믿음이 AI 시대의 ‘파괴적 혁신’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허망하겠지요. 저는 그런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때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은 억지로 스스로를 긍정하려는 ‘자기기만’적인 사랑은 아니다. 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심지어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그가 말하는 자기 사랑이다. “자기 내면에 존중받을 만한 게 있다고 믿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죠. 내면에 하나의 세계를, 가치 체계를 품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있나, 무엇을 해야 하나에 답을 해주는 세계를요.” 그러면서 그는 벽돌책 독서가 그런 세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책을 읽다 보면 벽돌책을 소개하는 대목 곳곳에서 ‘좋은 삶’이라는 표현을 만나게 된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벽돌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장 작가는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하며, 이와 관련한 책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아직 정리 중인 생각이라면서도 그는 ‘좋은 삶’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좋은 일상’과 ‘좋은 서사’다. 그는 “좋은 일상을 추구해도 좋은 서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라며 “어느 날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는 반드시 묻게 된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내 인생은 뭘까. 그 질문에 답할 때 자기 인생을 이야기로 답하게 된다. 거기서 일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라고 말했다. 반면 과거처럼 ‘좋은 서사’를 위해 ‘좋은 일상’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잘못됐다고 전한다. 결국 ‘좋은 일상’을 살면서도 ‘난 이런 사람이다, 나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이야기를 만드는 힘 또한 벽돌책 독서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