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성매매 논쟁이 보여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 (2)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69) 성매매 논쟁이 보여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 (2)

입력 2026.03.27 13:37

수정 2026.03.27 13:43

펼치기/접기
  •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2024년 10월 재개발로 철거 예정인 서울시 성북구 미아리 집창촌에 사람들이 서 있다. 정효진 기자

2024년 10월 재개발로 철거 예정인 서울시 성북구 미아리 집창촌에 사람들이 서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칼럼에서 한국의 성매매 논쟁을 분석하기 위해 ‘수단의 선택’과 ‘윤리적∙이념적 선택’을 구별했다. 이 구별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 보자.

도로교통법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수단의 선택에 해당한다. 법의 목적이 법을 만들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란 생명에 대한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원칙, 도로 교통의 효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술적 요구 등이다. 이런 법을 만들면서 ‘인간의 생명권을 보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고려하지는 않는다.

성매매 관련 법률은 성격이 다르다. 법률의 목적이 헌법이나 다른 상위 규칙에서 곧바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매매 금지 혹은 허용을 정하고, 여러 규율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그에 필요한 인식론적∙윤리적∙이념적 전제를 구성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성매매에 관한 규정이 달라진다. 가장 오래된 규정은 아마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퇴폐적 행위’, ‘전통 규범에 어긋나는 윤락 행위’, ‘종교적 의미의 악행’ 따위일 것이다. 현대적 맥락에서 ‘인간의 존엄과 성을 상품화하는 행위’나 ‘여성의 신체를 착취하는 행위’ 등으로 규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특수한 규제가 필요한 위험한 노동관계’나 ‘정상적 노동의 한 유형’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성매매 관련 법률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은 여러 전제를 검토하고 선별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관점과 입장을 배제하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삼는 민주주의 국가가 종교적 관점에서 성매매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또한 ‘선량한 풍속’이나 ‘미풍양속’ 따위의 모호한 개념 사용도 배제돼야 한다.

한국의 법과 제도가 성매매에 관해 어떤 공식적 관점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관련 법률이 있고, 개인의 행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국가기관도 있지만, 이 모든 제도가 어떤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말이다.

성매매처벌법의 문제

현행 성매매처벌법의 목적은 “성매매, 성매매알선 등 행위 및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성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함”에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성격의 원칙이 혼재돼 있다. 첫째는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성매매를 강요당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인신매매는 조직적 강간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이 원칙은 헌법에서 곧바로 도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성매매, 성매매알선 등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헌법에서 직접 도출되는 원칙이 아니라 이 법의 제정을 통해 새롭게 법적 원칙으로 규정된 것이다.

성매매 근절이라는 원칙은 어떤 인식론과 윤리적∙이념적 전제에 기초하는가? 명확하지 않다. 성매매처벌법 제21조 제1항은 성 매수자와 판매자를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그럼 이 법은 ‘양측 모두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자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라고 보는 것인가? 관련 언론 보도를 참고하면 수사기관은 실제로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경향신문 ‘처벌 앞세운 수사 관행에…성매매 여성=피해자 인식 오히려 줄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암묵적으로만 존재할 뿐, 법의 제정 이유에 명시돼 있지 않고, 국가기관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여러 사회운동 단체가 성 구매자만을 처벌하는 북유럽 모델 도입을 요구해왔고,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국가제도의 공식 입장에 따라 이런 주장에 대응하는 곳이 마땅히 없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문제

2012년 성 판매 혐의로 재판받던 여성이 방금 언급한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적이 있다. 2016년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다수 의견의 근거는 1)“외관상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인 성매매 행위도 인간의 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성 판매자의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 2)개인의 성행위가 “사회의 건전한 성 풍속을 해칠 때에는 법률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성매매 금지를 정당화하는 근거지만, 동시에 채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에 따르면 성 매수자는 타인의 존엄을 침해한 가해자로, 판매자는 피해자로 규정되는 반면 두 번째에서는 양자를 다르게 대해야 할 이유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 의견의 문제는 재판관 2명의 일부 위헌 의견과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남성의 성적 지배와 여성의 성적 종속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자 성 판매자의 인격과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여성과 모성 보호라는 헌법정신에 비추어도 여성 성 판매자를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 즉 인간 존엄의 침해라는 관점에서 성매매에 접근하면 성 구매자와 판매자를 동일하게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재판관 한 명은 전부 위헌 의견을 냈는데, 그 근거는 “성매매자(성 판매자 및 성 매수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라는 것이다.

헌재 결정문에는 자세히 분석해야 할 여러 쟁점이 있지만, 여기서는 핵심 질문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결정문에는 성매매에 관한 대략 세 가지 규정이 등장한다. ‘건전한 성 풍속을 해치는 행위’,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 헌재 재판관들은 각자의 인식론적∙윤리적∙이념적 전제에 따라 성매매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제가 과연 헌법 해석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건전한 성 풍속’ 개념은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인간의 존엄’이나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헌법 개념 분석을 통해 성매매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까? 헌법 재판관들이 성매매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해야 할 합의된 전제가 존재하는가?

지금까지의 분석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의 법과 제도가 성매매에 관해 어떤 공식적 관점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성매매 규제 모델이라는 것이 명확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련 법률이 있고, 개인의 행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국가기관도 있지만, 이 모든 제도가 어떤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말이다. 현실의 제도는 돌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은 한국 어디서나 쉽게 목격된다.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음 칼럼에서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