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4) 연애 서사와 혁명 서사의 불편한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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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4) 연애 서사와 혁명 서사의 불편한 공존

입력 2026.03.13 14:55

수정 2026.03.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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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양선 한림대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

정연희 <목마른 나무들>

정연희 소설가. 연합뉴스

정연희 소설가. 연합뉴스

1960년 4·19 시민혁명은 한국문학 장에 ‘청년-남성-지식인’ 주체를 혁명의 주인공으로 호명하며 그들의 고뇌를 문학 정전으로 구축했다. 하지만 이 견고한 문학 정전의 틈을 비집고 여성의 목소리로, 혹은 낯익은 대중소설의 양식으로 4·19 혁명 전후를 그린 작품들이 있다. 박경리의 <푸른 운하>·<노을 진 들녘>, 강신재의 <오늘과 내일>, 정연희의 <목마른 나무들>이 그러하다. 1963년 발간된 정연희의 장편소설 <목마른 나무들>은 혁명의 광장 밖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꿈꾸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소설은 4·19 혁명을 경유하면서 여성들이 겪는 실존적 방황과 욕망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서사를 통해 4·19의 또 다른 풍경을 그린다.

<목마른 나무들>은 연애 서사의 문법을 충실히 구현한다. 고아인 불우한 여성이 자신을 돌봐준 ‘아버지 같은’ 약혼자를 두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매력적인 남성에게 이성적으로 끌리고, 몇 번의 ‘우연한’ 마주침 끝에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갖추고 인격적으로도 완벽한 약혼자를 버리고 가난하고 불안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는 동 쥐앙 같은 남자를 선택하는 것,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성취하기 직전에 연인이 죽는 스토리라인은 전형적인 연애 서사의 공식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뻔한 연애 서사의 공식을 비껴가고 뒤집는다.

“그렇게 머뭇거리려면, 다 집어치우는 거예요. 내일은 내일이야요.”

“철저한 ‘아프레’가 되어 가시는군.”

“차라리 그렇기나 했으면 좋게?”

주인공 서주연이 약혼자 오성우도, 운명적 사랑을 느낀 김재훈도 아닌, 그에게 호감을 가져온 권영진과 나누는 도발적인 대화다. 주연은 전후 도덕적으로 문란한 젊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던 ‘아프레 걸’이라는 호명을 되받아 쓰며, 그 낙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전유하고 ‘아프레 걸’이 되기를 자처한다. 주연은 당시 보기 드문 ‘여기자’이며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엘리트 여성이다. 결혼 후 중산층의 안정된 생활이 보장돼 있지만, 오성우와의 결혼을 스스로 파기하고 집을 나간다. 주연의 주체성은 특히 김재훈, 권영진 등 여러 남자와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고 성적 관계를 맺는 대담함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젊음을 탕진하는 ‘탕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의 일탈을 용서하고 집안의 천사로 돌아오라고 요구하는 오성우를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이처럼 주연은 여성의 신체와 욕망을 억압하는 ‘아버지의 법’에 길들기를 거부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실천함으로써 가부장적 질서의 규범을 흔든다. 그는 세상의 비난과 질시를 받더라도 법적으로 유부남인 재훈의 아이를 거두고 그와의 관계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한다. “갈망했던 한 사람을 끝내 소유해” 보리라는 소유욕 역시 사회가 허용하는 윤리를 거스르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주연의 도발적인 결심은 재훈의 죽음으로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오성우가 제공하는 집안의 천사 역할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열정적 사랑과 혁명의 광장을 통과한 주연은 “젊음의 다음 장에서 인생을 서서히 관망할 줄 아는 쓸쓸한 여인”이 되고자 한다. 상투적인 도덕적 질서로 회귀하지 않고 혼자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이념의 허약성 다양하게 무력화

<목마른 나무들>은 주인공 주연뿐만 아니라 오성우의 누이인 성희, 그리고 김재훈의 연인이었던 이윤이와 같은 여성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규정한 일부일처제와 현모양처라는 프레임에 포섭되지 않는, 위반적인 움직임들이 혁명 전야 한국사회의 저층을 뚫고 나오는 현장을 보여준다. 성희는 김재훈과 결혼해 아이를 낳자마자 가족을 버리고 유학을 가버린다. 사실 그는 재훈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독점욕 때문에 결혼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 관계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순간 결혼이라는 계약을 스스로 깨버린다. 그는 낭만적 사랑의 결과물인 결혼 신화와 여성에게 강요되던 모성(성)을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여성에게 덧씌워진 역할과 윤리를 해체한다.

성희-재훈-주연이 삼각관계의 한 축이라면, 윤이-재훈-주연이 또 다른 축을 이루는데, 독특하게도 윤이와 주연은 상대방을 질투하거나 증오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의 처지를 연민하며 정서적 연대를 형성한다. 감정적으로 불안한 주연과 경험을 통해 온전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윤이 사이의 관계는 마치 자매처럼 혹은 짝패처럼 서로의 결핍을 보완하며, 남성 중심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난 여성적인 정서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서주연의 성적 자기 결정권, 오성희의 여성이자 어머니의 의무 파기, 이윤이의 관조적이고 무해한 다정함은 이 지적이고 자의식 강한 여성들이 개발독재 시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허약성과 위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무력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목마른 나무들> 표지. 수필과비평사 제공

<목마른 나무들> 표지. 수필과비평사 제공

여성의 미시적 위반 기록한 또 다른 혁명 서사

반면 소설은 흔히 4·19 혁명의 주체로 호명됐던 청년-남성을 불안하고 모순적인 존재로 형상화한다. 김재훈은 진보적인 신문사의 기자로서 부패한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서 모처에 끌려가 감금될 정도로 정의로운 인물이지만, 사생활에서는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으며 태어난 아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 그가 4·19 혁명의 열기 속에서 시위 중 총에 맞고 쓰러진 청년을 구하려다 오히려 목숨을 잃는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4·19 혁명의 주체인 분노한 청년 남성의 형상으로 읽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전에 드러났던 그의 도덕적 타락을 지워버리는 서사적 비약처럼 보이기도 한다. 혁명 이전의 그는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냉소적이거나 우유부단하거나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며, 주연이나 성희 같은 여성들의 주체적인 결단에 호응하지 못했다. 당시 국가주의가 남성에게 요구했던 헤게모니적 남성성과는 거리가 있는 그의 모습은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로 이어지는 체제 재편 과정에서 권위주의에 빠르게 흡수돼 혁명의 깃발을 내려버린 혁명 주체들의 허약성을 예견하는 듯하다.

한편 주연을 보살피는 오상우는 연인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대신하는 정신적 아버지다. 그는 삶의 진로마다 주연의 삶을 결정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조용하고 부드럽고 교양있는 생활의 불문율”을 제공하는 존재지만, 주연은 그것을 ‘소리 없는 지배’로 여긴다. 주연이 ‘청교도’적이라고 명명한 그의 도덕적인 삶은 자유와 열정을 향해 내닫는 여성의 욕망을 규제하고 단속하려는 통제의 장치로 작동한다. 재훈과 상우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구현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분출하는 여성의 열망에도, 배운 여성들의 차가운 자의식에도 부응하지 못한(혹은 안 한) 두 유형의 남성적 질서로 볼 수 있다.

정연희의 <목마른 나무들>은 4·19 혁명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나 변혁에 대한 열망을 그리지 않고, 그 틈새에서 빚어진 이야기에 주목한다. 4·19를 촉발한 부패한 권력이나 부정선거는 주연과 재훈의 직장인 신문사의 소재처럼 다뤄지고, 혁명의 충격적인 현장도 소설에서 인물의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녹아들지 못한 채 상처, 선혈, 죽음과 같은 단어들의 열거로 단편적으로 제시된다. 혁명의 서사와 연애 서사가 기이하고,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 시민의 전선이 과연 한순간에 광장에서만 형성된 것이었을까. <목마른 나무들>은 혁명의 광장에 자리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을 포착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광장의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4·19 혁명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지배 질서와 도덕에 균열을 낸 여성들의 미시적 위반을 기록한 또 다른 차원의 혁명 서사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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