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앨라배마, ‘자유의 행진’과 ‘어린이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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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앨라배마, ‘자유의 행진’과 ‘어린이 십자군’

입력 2026.03.13 14:54

수정 2026.03.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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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아프리카계 투표권 행진이 시작된 앨라배마 셀마시에는 ‘목화를 따던 손이 대통령을 뽑았다’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손호철 제공

아프리카계 투표권 행진이 시작된 앨라배마 셀마시에는 ‘목화를 따던 손이 대통령을 뽑았다’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손호철 제공

‘목화를 따던 손이 대통령을 뽑았다.’ 앨라배마의 주도인 몽고메리에서 서쪽으로 1시간 차를 몰아 셀마(Selma)에 도착하자 한 벽화가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도시는 인구가 2만명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지만, 미국의 역사를 움직인 장소다. 이곳에서 70.8㎞(44마일) 떨어진 몽고메리까지의 행진이 아프리카계가 꿈에도 그리던 투표권을 획득할 수 있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셀마로부터 몽고메리, 버밍엄에 이르기까지 앨라배마는 아프리카계의 민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주다.

“뭐 14명이라고?” 셀마와 몽고메리의 중간 지점인 로운데스에는 셀마 행진 기념관이 있다. 한 전시물은 셀마가 속해 있는 “댈러스 카운티 1만5000명의 아프리카계 중 1965년에 투표한 사람은 몇명인가”라고 묻고 있다. 보는 이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답을 아주 작게 써놓아, 가까이 가 읽어보니 1954~1961년 사이에 투표한 아프리카계가 불과 14명이라는 것이다.

남북전쟁 후 수정헌법 제13조에 의해 노예제가 폐지되고 아프리카계도 투표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윌밍턴 쿠데타 이후 노스캐롤라이나를 필두로 남부의 주들은 1900년대 초에 투표 등록을 위해서는 일정액의 인두세(Poll Tax)를 납부하고 헌법을 읽고 쓸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법을 만들어 아프리카계의 투표권을 박탈했다.

앨라배마 버밍엄에는 어린이 십자군을 사냥개를 동원해 공격하는 백인 경찰의 ‘초현실적’인 조각이 세워져 있다. 손호철 제공

앨라배마 버밍엄에는 어린이 십자군을 사냥개를 동원해 공격하는 백인 경찰의 ‘초현실적’인 조각이 세워져 있다. 손호철 제공

투표권 박탈·인종 분리 끝낸 ‘역사적 항거’

1965년 3월 7일, 600명의 아프리카계 시위대는 셀마시를 관통하는 앨라배마강에 있는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를 건너 몽고메리 쪽으로 행진했다. 다리 건너편에는 무장한 백인 주경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위대가 다리를 건너자 최루탄과 곤봉이 난무했다. 악명 높은 ‘피의 일요일’이다. 이틀 뒤 마틴 루서 킹 주도하에 2500명이 모였지만, 경찰의 폭력 행사 때문에 또 실패했다. 안타깝게도 운동에 동조해 참여한 백인이 인종주의자들의 공격으로 크게 다쳤지만,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의 폭력과 죽음이 전국에 보도되자, 할 수 없이 연방정부가 나섰다. 3월 21일 연방정부의 보호 아래 2만5000명이 킹 목사와 노숙하며 5박6일의 행진 끝에 ‘자유를 향한 44마일’을 완주했다.

얼마 뒤, 린든 존슨 대통령은 역사적인 ‘투표권법’에 서명했다. 이 법은 주와 지방정부가 특정한 조건을 내걸어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그동안 남부에서 지속해온 아프리카계 등 유색인종의 투표권 박탈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형식적으로나마 투표권조차 없는 ‘이등시민’ 아프리카계의 설움이 끝난 것이다.

아프리카계의 투표권 박탈이 셀마의 자유의 행진으로 끝장났다면, 백인 전용 화장실 등 인종 분리는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투쟁으로 촉발돼 앨라배마의 또 다른 ‘대도시’ 버밍엄 투쟁으로 끝장이 났다. 나는 그 현장을 찾아 셀마에서 북쪽으로 2시간 달려 버밍엄에 도착했다.

아프리카계의 투표권 획득을 위한 자유의 행진이 시작된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 앞에 ‘투표하라’는 구호가 설치돼 있다. 손호철 제공

아프리카계의 투표권 획득을 위한 자유의 행진이 시작된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 앞에 ‘투표하라’는 구호가 설치돼 있다. 손호철 제공

‘어린이 십자군.’ 1963년 5월 2일 1000여명의 아프리카계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인종차별에 항의해 수업을 빼먹고 중심가에 있는 ‘16번가 침례교회’ 앞에 모였다. 경찰은 수백명을 잡아 감옥에 넣었지만, 다음날에도 어린이들이 거리로 나왔고, 감옥이 만원이라 더 이상 체포할 수도 없었다. 경찰서장은 사냥개와 물대포를 동원해 어린이들을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이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자, 여론이 난리가 났다. 버밍엄 중심가에 있는 민권공원 안에는 백인 경찰이 멱살을 잡은 아프리카계 어린이를 사냥개가 공격하는 ‘초현실적’인 조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장면은 작가의 창작물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현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감옥에 갇힌 어린이들 조각, 어린이들을 향해 설치된 물대포 등이 보는 이들을 숨 막히게 한다.

“애니야! 애니야! 애니야!” 넉 달 뒤인 9월 15일, 한 아프리카계 여인이 연기가 자욱하고 사방에 피가 흥건한 16번가 침례교회 앞에서 한 아프리카계 소녀를 안고 통곡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버밍엄 민권운동의 중심인 교회 계단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4명의 죄 없는 소녀들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친 것이다. 교회가 마주 보이는 공원에는 4명의 소녀가 벤치에 앉아 즐겁게 놀고 있는 조각이 세워져 있다.

어린이들에 대한 사냥개와 물대포 공격과 교회에 대한 폭탄 공격은 10여 년간 지루하게 이어온 민권투쟁에 결정적인 승리를 선사했다. 존슨 대통령이 1964년 모든 공공장소에서의 인종 분리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민권법에 서명한 것이다.

연방정부의 보호 아래 이뤄진 ‘44마일의 자유의 행진’ 사진. 손호철 제공

연방정부의 보호 아래 이뤄진 ‘44마일의 자유의 행진’ 사진. 손호철 제공

아프리카계의 낮은 투표율은 왜일까

버밍엄에서 킹 목사의 고향인 애틀랜타 방향으로 30분 달리면 애니스톤(Anniston)이란 또 다른 앨라배마의 작은 도시가 나온다. 어머니 날인 1961년 5월 14일, 애틀랜타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도착하자 갑자기 사방에서 젊은 백인들이 달려들어 타이어를 터트리는 등 버스를 공격했다. 버스에 ‘프리덤 라이더들(Freedom Riders)’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부의 백인인 이들은 ‘인종 분리 공공버스는 위헌’이라는 대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지방 정부들이 이를 무시하자, 여러 주를 운행하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일부러 아프리카계 좌석에 앉아 인종 분리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기사는 재빨리 버스를 몰고 도주해 시 경계를 벗어났다. 버스를 세우고 타이어를 교체할 때 뒤따라온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버스에 불을 지르고 ‘프리덤 라이더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애니스톤 옛 버스터미널에는 그레이하운드 버스 부조를 만들어놓아 이를 기념하고 있다. 버스 방화 현장에도 사건을 설명한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안내판 앞에서, 인종을 넘어, 정당한 아프리카계의 투쟁에 함께하다가 희생당한 셀마의 백인 투사와 ‘프리덤 라이더들’에게 존경의 묵념을 했다.

백인들의 폭탄 테러로 희생당한 아프리카계 4명의 소녀 조각상이 ‘16번가 침례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손호철 제공

백인들의 폭탄 테러로 희생당한 아프리카계 4명의 소녀 조각상이 ‘16번가 침례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손호철 제공

치열한 민권투쟁의 현장인 앨라배마를 떠나려는데, 문득 어드먼드 피터스 다리 앞에 설치된 아프리카계의 ‘투표 독려’ 팻말이 생각났다. 그처럼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획득한 투표권이지만, 아프리카계의 투표율은 안타깝게도 백인보다 한참 낮다. 아프리카계가 전체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백인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11%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똘똘 뭉쳐 모두 투표해도 부족한데, 안타까운 일이다.

2020년 대선에서 백인들은 71%가 투표한 반면, 아프리카계는 63%밖에 투표하지 않았다. 2024년 대선은 더욱 한심하다. 백인은 71%가 투표했지만, 아프리카계는 아프리카계인 카멀라 해리스가 후보로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은 60%밖에 투표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2의 앤드루 잭슨’인 트럼프가 승리하는 건 당연하다. 짐승 같은 노예 생활에서 시작해 그 많은 차별과 학살, 린치 등을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아프리카계의 민권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북부에서 온 백인 ‘프리덤 라이더들’이 탄 그레이하운드 버스 기념물. 손호철 제공

아프리카계의 민권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북부에서 온 백인 ‘프리덤 라이더들’이 탄 그레이하운드 버스 기념물. 손호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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