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도 참사도, 아파트값이 중요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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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도 참사도, 아파트값이 중요한 나라

입력 2026.03.04 06:14

지난 2월 12일(현지시간)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최가온이 1차 시기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2일(현지시간)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최가온이 1차 시기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최가온은 척추에 굵은 철심을 박고도 7m 상공을 날아올랐다. 18세의 투혼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환호 뒤에선 그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축하 현수막이 걸린 곳이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고가 아파트단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금메달은 어느새 ‘금수저 논란’의 재료가 됐다. 누군가는 “막대한 지원이 있었겠지”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있는 집 자식의 성공은 서사가 없다”고 비아냥댔다. 그가 공중에서 900도를 도는 동안 아무도 그를 대신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아파트 시세 앞에서 희석됐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10대 학생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47년 된 노후 단지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사고 직후 일각에서 “재건축 속도가 빨라질까”, “집값에는 어떤 변수가 될까”라는 기묘한 질문이 고개를 든다. 한 아이의 죽음이 남긴 질문은 안전과 책임이어야 했지만, 그보다 사업성과 손익계산을 따지는 목소리가 슬금슬금 나왔다.

두 장면은 우리 사회가 부동산 물신주의에 얼마나 찌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유한 동네에서 나온 금메달은 그 노력과 집념을 의심받는다. 노후 단지에서 벌어진 참사는 안전 문제보다 재건축 변수로 치환된다. 47년 된 낡은 배선과 소방시설의 미비는 주민들의 생존권 차원이 아닌,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명분으로 소비되고 있다. 투혼과 비극보다 아파트 가격이 이토록 강력한 사회가 또 있을까.

물론 자원이 기회를 넓혀주는 현실을 부정할 순 없다. 스포츠든 교육이든 물적 토대와 지원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원이 곧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부모의 재력이 공중에서의 공포를 지워주지도, 빙판에 머리를 부딪친 뒤 다시 일어설 용기를 빌려주지도 않는다. 몸이 부서질 위험을 감수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는 일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또한 노후 아파트의 안전 문제는 철저히 제도와 관리의 문제이지, 자산 증식의 촉매제가 돼야 할 사건이 아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래서 집값은?”이라고 묻는 사회는 너무 엽기적이지 않나.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집이 아니다.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 미래, 계층 이동의 가능성까지 응축된 상징이다. 이렇게 뿌리 깊이 박힌 부동산 계급론이 결국은 사람을 지우고 있다. 이 사회가 진짜로 병든 지점은 부의 양극화 자체보다 모든 이야기를 아파트 가격과 거주지 등급으로 해석하는 습관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숫자에 매몰돼 인간의 얼굴을 지워버릴 때 공동체의 품격도 함께 무너진다. 누군가가 높이 날아오르면 그 비상을 축하해주고, 누군가가 쓰러지면 그 고통을 함께 슬퍼하자. 아파트는 배경일 뿐, 주인공은 사람이다.

이주영 편집장

이주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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