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3) 여성의 욕망, 여성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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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3) 여성의 욕망, 여성의 목소리

입력 2026.02.27 13:12

수정 2026.02.2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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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호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자림 ‘화돈’

한국 최초 여성 희곡 작가로 불리는 김자림의 작품이 수록된 한국 여성문학 선집. 민음사 제공

한국 최초 여성 희곡 작가로 불리는 김자림의 작품이 수록된 한국 여성문학 선집. 민음사 제공

김자림(金玆林·1926~1994)은 한국 최초의 여성 극작가다. 물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나혜석, 박화성, 장덕조 같은 여성 작가가 희곡을 발표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화가이거나 소설가였지 전문적인 희곡작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출판한 희곡 작품의 수가 적고 창작활동도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기에 여성 희곡사에 의미 있는 파장을 남기는 수준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한국 여성 희곡사에서 본격적인 여성 희곡작가가 탄생한 것은 1959년이다. 김자림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돌개바람’이 입선되고, 1961년 ‘유산’이 당선됨으로써 한국문학사에서 여성 극작가 부재의 시대를 종결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또한 그는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국립극단에 작품을 올린 작가이기도 하다. 1966년 국립극단이 무대에 올린 김자림의 <이민선>(전세권 연출, 백성희·최불암·김금지·고설봉 등 출연)은 국립극단 사상 처음으로 여성 극작가의 작품을 공연한 획기적 사건이다. 희곡은 소설이나 시처럼 개인적 글쓰기에 머물지 않고 공연이라는 집단적·물리적 제작 방식과 관객과의 직접적 소통이라는 공동체적 행위를 수반한다. 그런 까닭에 사회적 자본과 물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여성 작가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적 특성을 지닌다. 더욱이 기존의 공연 제작 방식은 남성 중심적 관행에 따라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 극작가들이 이런 문화적 관행과 물리적 제약을 넘기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한국 연극사에서 여성 극작가와 여성 연출가가 늦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이런 현실적 조건과 무관치 않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는 여성 극작가들이 한 집단을 이룰 만큼 대거 출현한 시기다. 흔히 ‘여성 극작가 1세대’로 호명되는 김자림, 박현숙, 전옥주, 오혜령, 강성희, 김숙현 등이 이 시기 등단했다. 희곡 비평가 김옥란에 따르면, 이들은 “1960년대라는 동시대적 감수성”을 공유하며, “식민지 체험 혹은 월남과 피란이라는 전쟁 체험을 겪었고, 전후 복구된 문단의 제도적 장치, 예컨대 신춘문예와 문예 잡지의 추천제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이력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은 단독 희곡집을 발간하는 등 창작활동을 지속하면서 희곡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한국 여성 연극을 크게 ‘희곡의 시대’(1920~1980년대 중반)와 ‘공연의 시대’(1980년대 중반 이후~현재)로 구분할 수 있다면, ‘여성 극작가 1세대’는 희곡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첫 세대다. 이 1세대 여성 극작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김자림이다.

은폐된 여성의 성을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

김자림의 등단작품인 ‘돌개바람’은 후일 작가가 술회하듯이 “여성 삼대의 불행을 세대별로 대립시켜 오늘의 현대 여성 문제를 써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가부장적 정조 관념을 고수하는 할머니와 그것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어머니,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딸의 엇갈린 태도를 그림으로써 한국사회 여성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김자림은 그의 데뷔작인 ‘돌개바람’의 공연(차범석 연출·1960)이 연극계의 혹평을 받자 더 이상 여성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고 민족, 분단, 이민 등 이른바 ‘중성적’ 주제로 관심을 옮겨간다. 물론 이런 주제를 다룰 때도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 문제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인식은 남성 중심적 문단 질서에 편입되면서 사실상 거세되거나 희석화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 김자림이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여성 문제에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작품이 ‘화돈’(1970)이다. ‘화돈’은 여성 극작가가 여성의 억압된 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자림이 여성의 성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전후 남성작가들이 말하는 방식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전후 남성 극작가들은 대체로 전쟁미망인, 양공주, 자유부인 등 부정적 여성상을 내세워 일탈한 여성의 성을 단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김자림은 은폐되고 억압된 여성의 성을 여성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여성이 여성의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기 검열과 사회적 심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김자림이 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성적 경험과 욕망을 말하는 여성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파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화돈’은 30대 중반의 가정주부가 남편이 집을 비운 동안 언니에게 전화로 수다를 떠는 모노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노드라마의 특성상 외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 아니라 여주인공의 내면을 독백으로 풀어내는 자기표현이 극의 중심을 이룬다. 익명의 여주인공은 고학력 중산층 가정주부다. 작품의 제목이 가리키듯이 그는 ‘꽃돼지(花豚)’다. 남편은 사법고시 위원으로 출제에 들어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 집안에 남겨진 여주인공은 전화통을 붙들고 언니와 수다를 떨고 있다. 사회계층상 그는 편안한 아파트에서 사회적 권위와 부를 제공해 주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유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권태와 신경질에 시달린다. 당시로써는 안락한 신식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우리에 갇혀 있는 짐승 같다고 느낀다. 일찍이 1960년대에 베티 프리단이 교외의 중산층 집에 살고 있는 미국의 가정주부들이 “이름 없는 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했듯이, 작중 여주인공도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다.

女人(여인): 난 이 너무도 인위적인 생활 환경에 구토가 날 것만 같우. 어릴 때부터의 이 훈련이, 숨은 어떻게 쉬어야 하는가, 걸음은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심지어는 어떻게 사랑해야 옳은가? 이런 것까지… 언니, 난 너무도 세분된 이 전문 지식에서 도망치고 싶어. 아, 이 ‘위대한 거부’가 내 몸속에서 싸우고 있다우. 지나친 풍요 속에 키워져서 변덕과 태만에 깊이 물든 망쳐진 계집이라구요? 어머, 너무 하셔. 세계를 탄생시키려는 이 터질듯한 욕망도 모르고 내 참. (중략) 분명히 언니는 鉛中毒(납중독)이야. 모든 기성 관념을 박살 내고 原初(원초)로 돌아가 다시 신선해지자는데 어째 동조를 못하우? 알다가도 모르겠네. 신선해지자는데, 보다 맑아지자는데…

여성의 말을 통해 내적 불안과 욕망 표현

작중 여주인공은 여성을 ‘현모양처’로 키우는 훈련에 구토를 느끼며 자신은 “위대한 거부”를 하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언니를 납중독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작중 여주인공이 억압된 성을 해방하려는 것은 단순히 성욕을 표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기성 관념을 박살 내고” 다시 “原初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원초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이 가부장적 감옥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성의 추구다. 그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벌인 혼외정사를 언니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이는 실제 벌어진 일이 아니라 그의 환상이다.

여주인공의 환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초인종이 울리고 남편의 전보가 배달된다. 전화의 혼선으로 그가 언니와 주고받은 수다를 듣게 된 남편이 이혼을 통보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여인은 남편의 이혼 통보에 직면하자 자신이 실제로 외간 남자와 혼외정사를 벌인 것이 아니라 “일인칭 소설”을 쓴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던 모반적 위치에서 남편의 질서에 안주하는 위치로 급회귀한다. 그의 환상은 남편이라는 현실적 위협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진다. 이 결말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당대 여성이 처한 현실적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돈’은 일인극이라는 형식 속에서 30대 중반의 여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작품이다. 부스스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전화통을 붙잡고 언니와 수다를 떠는 여인은 남성적 시각의 쾌락에 봉사하는 선정적인 육체가 아니라 목소리가 전면에 돌출된 존재다. 작가는 여성의 육체를 관음증적 시선의 대상으로 만드는 남성적 방식에서 벗어나 여성의 목소리와 발화에 집중한다. 작가는 시각적 자극 없이 여성의 말을 통해 그가 겪는 내적 불안과 욕망을 표현한다. 1970년에 발표된 김자림의 ‘화돈’이 한국 여성연극에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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