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성매매 논쟁이 보여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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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성매매 논쟁이 보여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 ①

입력 2026.02.27 13:09

수정 2026.02.2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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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2000년 성매매가 합법화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흥가 드 발렌을 걷고 있는 사람들. 언스플래시

2000년 성매매가 합법화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흥가 드 발렌을 걷고 있는 사람들. 언스플래시

얼마 전 한 연예인이 소셜 미디어에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한 적이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광경이다. 주장의 논리는 뻔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익숙하다. 하지만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는 양상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법률과 제도의 작동 방식, 국가와 사회의 관계, 공적 논의의 수준 등을 분명한 형태로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성매매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문제인 것과 아닌 것

국가의 법과 제도를 설계하고 실행할 때, 선택의 문제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제 노동을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 ‘독재자의 등장을 차단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근대 규범 체계나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강제 노동을 허용하자는 것은 노예제를 부활시키자는 말이고, 독재자를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의미다. 이런 선택을 주장하는 사람은 공적 논의의 장에서 배제돼야 한다.

반면 정책의 기술적∙행정적 수단을 결정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얼마로 할 것인지, 의료보험 수가를 얼마로 정할 것인지, 공항을 어디에 지을 것인지, 어떤 부동산 규제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런 문제를 고려하는 것은 더 근본적이거나 거시적인 수준의 목표, 즉 안전과 건강에 대한 권리 보장, 경제 인프라 구축, 부동산시장 관리 등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찾기 위해서다. 공적 논쟁과 정치 갈등 대부분이 이런 선택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이러한 수단의 선택과 구별되는 윤리적∙이념적 선택, 즉 옳고 그름의 새로운 기준을 선택하는 문제도 있다. 조력자살을 허용할 것인지,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포르노그래피를 범죄화할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은 기존의 공통 규범이나 원리에서 단일하게 도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규범을 수립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성매매를 규제할 것인지, 규제한다면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도 이러한 선택의 문제다. 따라서 성매매 규제 방식이 국가마다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슷한 문화와 민주주의 모델을 공유하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성매매에 대한 태도는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최근 법률은 성매매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2022년에는 유럽 최초로 성매매를 ‘비범죄화’했고, 2024년 법률은 성노동자를 노동계약의 틀 안으로 포괄했다. 이제 이들은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다. 반면 프랑스는 2016년에 성매매를 ‘범죄화’하고, 이른바 ‘북유럽 모델’에 따라 성구매자만을 처벌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성매매에 대응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2024년에 발간된 유럽의회 보고서(Regulation of prostitution in the European Union)는 유럽 각국의 성매매 관련 규제를 범죄화(criminalisation), 법제화(legalisation/regulation), 비범죄화(decriminalisation)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범죄화는 말 그대로 성매매를 범죄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프랑스·스웨덴·아일랜드는 구매자만을 처벌하고, 크로아티아는 판매자만을 처벌하며, 리투아니아는 둘 다 처벌한다. 2)법제화는 성매매를 특수한 형태의 위험한 고용으로 간주하면서 몇 가지 규제하에서 허용하는 방식이다. 유럽 국가 대부분이 이를 채택하고 있다. 3)비범죄화는 법제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매매를 정상적 노동의 한 유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벨기에가 여기에 해당한다.

공적 의견의 조건

성매매 규제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를 인정해야만 공적 논의 공간을 합리적으로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제 노동을 찬성하는 주장은 공적 논의에서 배제돼야 하지만, 성매매를 범죄화·법제화·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공적 의견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적 의견은 의견으로서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성매매 합법화’를 말하는 남성의 절대다수는 ‘남성의 성욕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에 의존한다. 그런데 이는 ‘논리’나 ‘주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떼쓰기일 뿐이다. ‘국가는 그걸 보장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니까’라는 식이다. 이런 발언을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애초에 반박할 논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남성의 성욕’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이나, 모든 윤리적 가치를 압도하는 절대적 명령처럼 이해되곤 한다. 이런 황당한 미신에 대한 비판은 이미 차고 넘치지만, 그것은 지금도 일종의 ‘상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미개한 믿음을 상식의 지위에서 쫓아내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적∙지적 헤게모니가 여전히 허약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연예인의 발언은 이런 식상한 미신의 반복이다. 그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했다는 점이 아니라 공적 의견이 갖춰야 할 조건에 무지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무지와 오해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구매자만을 처벌하는 북유럽 모델을 지지하지만, 법제화와 비범죄화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과 당연히 토론할 수 있고, 언젠가 내 입장이 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단, 이런 토론이 가능하려면 각자의 의견이 의견으로서의 조건을 만족해야만 한다. 즉 토론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상품화, 노동, 고용, 동의, 성불평등,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수립해야 하며, 그로부터 합리적 논변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성매매에 관한 한국의 공적 논의 공간이 구성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매매 합법화’라는 말은 한국사회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다가, 잊을 만하면 ‘남성의 성욕’ 운운하는 무지한 소리와 결합할 뿐이다. 성매매에 대한 공적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시민 대부분은 여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다음 칼럼에서 한국의 성매매 규제에 관한 내용을 이어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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