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개체군을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는 체질로 바꾸려는 ‘트랜스미션 제로(Transmission Zero)’의 돌파구는 초파리 유전학에서 나올지 모른다. 김우재 제공
우리는 종종 첨단 과학기술이 인류 모두의 고통을 평등하게 덜어줄 것이라 낭만적으로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의 과학은 자본과 권력의 지형도를 잔인하리만치 정확하게 반영한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는 여전히 5세 미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이다. 매년 60만명 이상이 사망하지만, 이 질병은 ‘글로벌 북반구’라 불리는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에 종식된 과거의 질병으로 치부된다. 제약사와 주류 과학계의 투자 우선순위에서 철저히 소외돼온 것이다. 최근 ‘네이처’에는 이 끔찍한 무관심과 생물학적 한계라는 이중의 장벽을 맨몸으로 뚫고 나온 위대한 논문 1편이 실렸다. 영국의 유전학자들과 탄자니아의 현지 과학자들이 20년이 넘는 고독한 사투 끝에, 말라리아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 모기를 아프리카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잊힌 질병과 싸우는 고독한 유전학자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자립
말라리아 매개체인 아노펠레스 모기를 통제하기 위해 인류는 살충제와 모기장이라는 화학적·물리적 방어막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생명은 언제나 길을 찾듯 모기는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진화시켰고, 기후변화와 맞물려 전통적인 방역 체계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질병 전파의 고리를 매개체 단계에서 유전적으로 끊어내고자 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조지 크리스토피데스(George K. Christophides) 교수와 니콜라이 빈트비클러(Nikolai Windbichler) 박사다. 이들은 모기를 멸종시키는 대신, 모기 개체군 전체를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는 체질’로 유전적으로 교체해버리는 과감한 발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기적 유전자의 원리를 이용한 CRISPR-Cas9 기반의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은 멘델의 유전 법칙을 거스르고 조작된 형질을 후대에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전달한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의 최고급 실험실에서 수십년간 배양된 얌전한 실험실용 말라리아 원충을 상대로 거둔 성공은, 아프리카 야생 생태계의 복잡하고 잔혹한 변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었다. 크리스토피데스와 빈트비클러는 서구 실험실의 온실을 과감히 버리고 말라리아의 진앙인 탄자니아로 향했다. 이들은 ‘트랜스미션 제로(Transmission Zero)’라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며 “아프리카의 질병은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이 주도해 해결해야 한다”는 철학을 내세웠다.
이들의 여정은 과학적 난제보다 사회적·정치적 장벽과 싸우는 과정이었다. 다국적 환경단체들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GMO)가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며 거세게 반대했고, 서구 자본이 아프리카를 거대한 생태 실험장으로 쓴다는 음모론이 팽배했다. 심지어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를 심사할 규제 체계조차 전무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딕슨 윌슨 르웨토이제라(Dickson Wilson Lwetoijera) 박사를 비롯한 탄자니아 이파카라 보건 연구소(IHI)의 현지 과학자들과 연대해 지역 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득했다.
탄자니아 현지 실험실에서, 그들은 실제 자연적으로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들의 혈액에서 추출한 고도로 다변화된 야생 원충을 완벽하게 억제하는 비자율적 모듈형 유전자 드라이브 모기 계통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이는 선진국의 기술적 오만을 넘어 아프리카가 스스로의 힘으로 최첨단 생물 안전성 실험실에서 질병 통제의 주도권을 쥐게 됐음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자연의 한계와 진화의 덫: 초파리가 가져온 해답
그러나 승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이 모기 체내에 삽입한 무기인 꿀벌의 ‘멜리틴’과 개구리의 ‘마가이닌 2’는 장기적 지속성이라는 벽 앞에 가로막혀 있다. 이 펩타이드들을 단순히 모기 내장으로 분비하는 방식은 네 가지 치명적 결함을 지닌다. 첫째, 모기가 흡혈하면 쏟아내는 트립신 같은 강력한 소화 효소에 의해 펩타이드가 무참히 분해된다. 둘째, 부피가 큰 혈액 속에 희석돼 운동성을 띤 말라리아 원충(오오키네트)과 만날 확률은 극히 낮다. 셋째, 농도를 높이면 모기 자신의 장 상피세포마저 파괴하는 ‘표적 이탈 독성’이 발생한다. 넷째, 이를 보완하려고 펩타이드를 과다 발현하면 모기의 대사적 부담이 커져 수명과 번식력이 급감한다. 진화 생물학의 원리에 따르면 숙주를 병들게 하는 유전적 변형은 자연 선택의 강력한 표적이 된다. 결국 야생에서 모기들은 이 부담스러운 유전자를 침묵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며, 수년 내에 유전자 드라이브 전략 전체가 붕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할 열쇠는 뜻밖에도 초파리 유전학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 실험실의 꿀벌 펩타이드 연구가 제안하는 대안은 ‘막 계류(Membrane Tethering)’ 기술이다. 항균 펩타이드를 모기의 장 내강에 분비하는 대신, 장 상피세포의 바깥쪽 세포막에 단단히 닻을 내리듯 묶어두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본래 포유류 뇌 연구에서 신경세포막에 단백질을 고정하는 GPI 앵커 메커니즘에서 차용했다. 펩타이드를 소화 효소가 득실대는 3차원 공간에 뿌리는 대신, 원충이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반드시 접촉해야 하는 2차원 표면에 농밀한 가시밭길처럼 고정하는 것이다. 막에 계류된 펩타이드를 발현한 초파리는 분비형 모델보다 무려 100배(100-fold)나 강력한 세균 억제 능력을 보였다. 이는 유전자 드라이브 모기가 기존 방식의 1%만 발현해도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며, 대사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 ‘적합도 끌림’ 현상을 거의 완벽히 무효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공지능(AI)은 이러한 전략에 정밀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펩타이드의 한계를 넘어 단백질 분해 효소에 저항성을 갖고, 모기 세포는 공격하지 않으면서 원충의 특이적 표면에만 맹렬히 결합하는 새로운 펩타이드를 설계할 수 있다. 초파리와 꿀벌 유전학이 발굴한 생물학적 원리, AI가 설계한 분자 구조, 그리고 아프리카 현지에 뿌리내린 유전자 전달 기술이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 인류는 비로소 진화의 덫에 갇히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트랜스미션 제로(Transmission Zero)’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