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자 보고서가 쏘아 올린 ‘AI 파괴론’···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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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자 보고서가 쏘아 올린 ‘AI 파괴론’···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입력 2026.02.27 13:06

수정 2026.02.2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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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대형 금융위기”…월가 뒤흔든 ‘거시경제 리포트’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트레이더들이 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고성능 인공지능(AI)이 일상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다. AI 혁신 직격탄을 맞은 기업부터 해고 물결이 시작된다. 기업은 노동자를 줄여 실적을 높이고 경제성장률은 순항한다. 현실에선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진다. 실업률이 치솟고 소비가 줄자 매출 확보가 시급한 기업들은 AI 투자에 더 몰두한다. 구조조정 열풍은 한층 거세진다. 악순환 속에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못 갚는 노동자들이 생겨난다. 신용 경색, 금융위기가 거론되는 마당에 정부는 손 쓸 길이 마땅치 않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년 뒤, 2028년 6월자 가상의 ‘거시경제 리포트’ 내용이다. 미국 리서치 업체 ‘시트리니’가 지난 2월 22일(현지시간) ‘2028 글로벌 지능 위기’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보고서에는 이처럼 AI의 파괴적 혁신이 불러온 섬뜩한 미래 시나리오가 담겼다. 보고서는 SNS 엑스(X)에서 하루 만에 18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월가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날 미국 뉴욕 3대 지수가 일제히 1% 이상 급락한 배경으로 외신은 일제히 이 보고서를 지목했다.

최악의 가정에 기반한 7000자 분량의 가상 시나리오가 이처럼 큰 파장을 불러온 배경에는 화려한 AI 낙관론 이면에 퍼져나가던 불안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I가 경제에 너무 강한 호재인 나머지 역설적으로 악재가 된다면 어떨까”라며 “시트리니 보고서는 월가의 우려를 정확하게 포착했다”고 평가했다.

AI가 만들어낸 ‘유령 GDP’

시트리니 보고서는 2028년 6월 기준 지난 2년간을 돌아보는 사고실험 형식으로 작성됐다. 가상의 타임라인에선 올해 하반기인 2026년 10월이 ‘환희’의 시점으로 묘사된다. AI 기술 발전으로 기업 실적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S&P500 지수는 8000선을, 나스닥 지수는 3만선을 돌파하며 유례없는 호황을 맞는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 경제지표는 상승세를 이어간다.

미국의 리서치 업체 ‘시트리니’가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발표한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 표지. 시트리니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의 리서치 업체 ‘시트리니’가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발표한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 표지. 시트리니 홈페이지 갈무리

장밋빛 전망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다. 성능이 향상된 AI가 코딩, 재무, 보험 등 업계를 가리지 않고 사무직 노동자를 대체하자, 해고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며 균열이 시작된다. 2027년 3분기에 들어서면 미국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48만건을 넘어서며 소비 위축이 가시화된다. 2028년 6월 실업률은 10.2%까지 오른다. S&P500 지수는 2년 전 고점(약 8000선) 대비 38% 추락한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희소한 자원이었던 ‘인간의 지능’이 AI에 의해 무한히 대체되면서 고유한 가치를 잃게 된다는 논리를 핵심으로 한다. 인간의 지능이라는 희소성을 전제로 설계돼온 노동시장, 금융 시스템 등 모든 제도가 AI 시대를 맞아 갑작스럽고 무질서하게 재조정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유령 GDP’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AI가 생산성을 높여 GDP 수치는 끌어올리지만 실물 경제의 소비 증가로는 이어지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AI 성능 향상→기업의 AI 투자 및 인건비 절감→노동자 소비 위축→기업 수익 악화’가 반복되는 “자연적 제동 장치가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그러면서 “AI가 잠식하고 있는 사업과 일자리는 미국 경제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미국 경제 그 자체”라고 전했다.

엇갈리는 전망 속 ‘AI 규제’ 논의되나

“공상과학 소설”로 치부되기도 한 시트리니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아예 뜬금없이 제기된 주장은 아니다. “AI가 인간의 인지능력을 대부분 영역에서 능가하는 시점이 불과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5년 안에 AI는 인류의 집단 지능을 넘어설 것”(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등 최근 테크 업계 리더들이 낙관적 전망을 잇달아 내놓은 가운데 AI의 영향력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불안감도 몸집을 키워왔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표지판.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표지판. 로이터연합뉴스

시트리니 보고서가 발표될 즈음 앤트로픽이 출시한 AI 모델 ‘클로드’ 코딩 모델이 기존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기업을 무력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IBM 등 소프트웨어 업계 주가가 약세를 보이기도 했다. IBM은 이날 주가가 13.2%나 빠지면서 닷컴버블이 붕괴한 2000년 10월 이후 25년 만에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장에선 소프트웨어 업계를 중심으로 신용대출을 해준 사모펀드 업체의 건전성 우려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고서가 제시한 ‘유령 GDP’ 개념도 지난해부터 미국 사회를 달군 이른바 ‘K자형 경제’와 맞닿아 있다. 자산시장 호황을 토대로 소득·소비를 늘린 고소득층이 성장세를 견인하는 K자형 경제는 무엇보다 AI 호황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경제 상황에서 중·저소득층을 중심으로는 소비가 위축되며 필수품을 구매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 GDP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간 임금 비중은 75년 역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승승장구하던 빅테크 노동자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테크기업 구조조정 현황 실시간 집계 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에 따르면 올해 1월 한 달간 전 세계 27개 기술기업이 직원 총 2만4818명을 해고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 구조조정이 된 직원 수(32개사·2537명)보다 10배 늘어난 수준이다.

AI에 대한 업계의 낙관론과 대중의 비관론이 엇갈리면서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AI가 화두로 떠오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AI 가속주의자들과 일자리 상실 등을 우려하는 노동자 계층 사이 ‘AI 규제’ 등을 두고 엇갈린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AI 경쟁을 “21세기를 정의할 싸움”이라고 규정하며 전폭적인 빅테크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도 “무분별한 AI 개발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은 지난해 12월 CNN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이 노동자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더 부유해지고,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AI 기술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 과정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을 중심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AI 규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AI 붐의 가장 두드러지는 상징으로 꼽히는 데이터센터부터 중간선거의 중요한 이슈로 다뤄질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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