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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 아저씨

입력 2026.02.13 15:01

수정 2026.02.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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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람 뉴콘텐츠팀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성. 바르셀로나 시청 제공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성. 바르셀로나 시청 제공

신혼여행으로 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성. 9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 우리 부부는 녹초가 된 채 잔디밭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지칠 만도 했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른 뒤 눈만 겨우 붙이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탔으니. 몬주익 성에 오기 전에도 우리는 ‘한국인답게’ 숙제하듯 이곳저곳을 헐레벌떡 돌아다닌 참이었다. 피로에 젖은 우리는 눈앞에 서커스단 묘기가 펼쳐지는데도 자꾸 집중력을 잃었다.

그 아저씨를 마주친 건 서커스를 다 보고 마지막으로 몬주익 성을 한 바퀴 돌던 때였다. 아마도 몬주익 성 관리직원이었을 그 아저씨는 형광 점퍼를 걸치고, 30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웅장한 고성의 성벽에 기대, 언덕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뒷배경 삼아, 멍때리고 있었다. 휴대전화도 없이 몸에 힘을 다 빼고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팔을 흐느적거렸다. 너무도 성실하고 장엄한 멍때림이었다.

와, 저 아저씨 봐. 진짜 잘 쉰다. 역시 여유의 스페인인가 하며 웃던 우리는, 갑자기 그 모습에서 난데없는 위로를 받아버렸다. 우리 뭐하러 그렇게 종종거리며 살았을까. 언제까지 뭘 하고, 몇등하고, 몇살까지 뭐가 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이거 갖추고 저거 마련하지 못하면 땅이 푹 꺼져 시커먼 저 밑으로 추락할까봐 불안해하면서. 사실 돌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는데. 수많은 탈락과 실패를 겪었고 놓친 것도 적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 따뜻한 햇볕 아래 서 있는데.

나보다 천만 배는 더 부지런하게, 달리 말하면 숨이 벅차게 살아온 아내다. 그는 내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해야 할 일들만 가득했던 시간’이라고 했다. 많은 한국인이 그런 시간을 산다. 어쩐지 스페인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많이 마주쳤다. 다들 한숨 돌리러 온 듯했다. 몬주익의 경비원 아저씨는 그런 한국인들에게 괜찮다고, 좀 쉬어도 죽지는 않는다고 온몸으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몬주익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였다. 삶이 버거울 때면 그를 떠올리자고 약속했다.

스페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사람들의 그런 태도였다. 낮잠(시에스타)의 전통을 가진 나라이고, 늦은 시간 저녁을 먹기 시작해 밤늦게까지 수다를 떠는 나라다. 물론 관광객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여러 그늘이 있을 테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바쁜 한국사회에 사는 나로서는 그들의 여유가 퍽 부러웠다. 돌아보니 최근 스페인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 수십만명에게 거주·취업 허가를 내주기로 한 것도, 그런 삶의 태도와 아예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듯싶다. 여유로우면 남을 마구 미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이 잔잔해진 우리는 몬주익 성을 한가롭게 걸었다. 그동안에도 몬주익 아저씨는 우리보다 더 한가로웠다. 느릿한 햇빛 아래서 그는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고, 우리는 조용히 언덕을 내려왔다. 그가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은 가르침에 감동한 우리를 눈치채고 황당해하기 전에. 여행을 마친 우리는 다시 한국적 시간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조금씩 연습해보고 있다. 잠깐 멈춰도 자신을 혼내지 않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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