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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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된 민주주의

입력 2026.02.13 15:00

수정 2026.02.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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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지난 1월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선거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에만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하는 공직선거법의 이른바 ‘봉쇄조항’에 대해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수 재판관은 거대 양당의 권력 집중을 한국 의회정치의 중요한 문제로 지적하면서 사표를 양산하는 봉쇄조항이 소수 정당에 대한 차별로 이어져 정치적 다양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헌 결정 자체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헌재 결정문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헌재는 이번 결정문에서 ‘비례성 강화’, ‘민주주의의 다양성 확대’, ‘거대정당의 세력 강화’와 같은 가치판단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는 선거제도의 미세 조정이 아니라 우리 정치제도가 담아야 할 헌법적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선언으로 읽힌다.

소수의견을 낸 두 재판관은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로 무장한 극단주의 세력의 의회 진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이유를 밝혔다. 극단주의가 소수일 거라는 생각에는 근거가 없다. 예외적으로 높은 5% 봉쇄조항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지난해 총선에서 극우정당 AFD가 20.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각국의 극단주의 세력이 이미 상당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고, 당장 계엄을 옹호하는 여론이 15%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봉쇄조항으로 극단주의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소수의견에도 경청해야 할 대목은 있다. 두 재판관은 거대정당의 봉쇄조항보다 선거구·다수대표제와 매우 낮은 비례대표의석 비율, 그리고 위성정당 등의 요인이 비례성 왜곡의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선거제도의 비례성 왜곡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9명의 재판관 전원이 의견 일치를 보인 셈이다. 봉쇄조항이 위헌이라면 언급된 다른 제도들 역시 같은 이유로 헌법적 의문을 피하기 어렵고, 이는 곧바로 비례대표 의석 확대, 소선거구제 개편, 위성정당 불법화 등의 구체적 정치개혁 과제로 이어진다.

헌재가 우리 정치에 주문한 것은 다름 아닌 ‘용기’다. 지금은 정치적 혼란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다양성 앞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안정성과 다양성이 경합하는 구도에서, 정치제도로 풀어야 할 문제와 정치문화로 풀어야 할 문제를 구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극단주의 세력의 부상은 봉쇄조항 같은 예외규칙이 아니라 어렵지만, 유권자와 정치문화의 성숙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정치의 다양성 확보는 제도로 풀어야 할 문제에 가깝다. 아무리 좋은 정치 세력이 등장해도 유권자의 메뉴판에 올라가지 못한다면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차단된다. 헌재는 바로 이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의 중요한 의의는 자연화된 양당체제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개선을 지시했다는 점이다. 헌재가 우리 정치에 주문한 것은 다름 아닌 ‘용기’다. 지금은 정치적 혼란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다양성 앞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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