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해의 경제망원경] (58) 그들은 왜 오른쪽을 선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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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해의 경제망원경] (58) 그들은 왜 오른쪽을 선택했나

입력 2026.02.13 14:59

수정 2026.02.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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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중해 경제학자
지난해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마크 저커버그(메타),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순다르 피차이(구글), 일론 머스크(테슬라) 등 테크 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마크 저커버그(메타),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순다르 피차이(구글), 일론 머스크(테슬라) 등 테크 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 마크 앤드리슨은 강력한 민주당 지지자였다. 그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으며, 2016년 선거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를 이상한 후보로 여겼다. 그러나 2024년 대선에서는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2024년 5월 백악관에서 있었던 바이든 행정부 인공지능(AI) 규제팀과의 미팅이었다. 앤드리슨은 바이든 정부가 AI를 소수 대기업으로 제한하고 정부 통제 아래 두면서 스타트업을 규제로 사실상 죽이려 한다고 믿었다. 그는 2024년 선거를 AI와 스타트업의 존재론적 위기를 가져온 전쟁으로 프레이밍(Framing) 했다. 선거 후 2024년 12월,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그 미팅을 마치고 나와서 트럼프를 지지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백악관 주차장에서 나오면서 (동료인) 벤 호로위츠와 저는 서로를 보며 말했어요. ‘이제 끝났어. 트럼프에게 올인해야 해.’ 그 미팅은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테크에 대해 펄펄 끓는 경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테크를 죽이려고 했고, AI를 통제하려 했습니다.”

기술로 세상 재구성하려

디지털 경제와 AI를 선도하는 실리콘밸리는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의 아성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24년 대선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기술 엘리트들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지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막대한 정치 자금을 기부하며 트럼프 캠프를 실질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2025년 1월 20일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식 사진에는 일론 머스크(테슬라), 마크 앤드리슨(앤드리슨 호로위츠), 피터 틸(팔란티어) 등 기술 거물들이 트럼프 뒤에 서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들 외에도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마크 저커버그(메타), 팀 쿡(애플), 순다르 피차이(구글), 쇼우지 추(틱톡) 등이 참석해 트럼프 2기 정부와의 관계 개선, 그리고 영향력 확보에 나섰다.

미국의 정치 지형에서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여전히 민주당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 연방의회 의석 분포는 상원 2석 모두 민주당, 하원 52석 중 민주당 43석·공화당 8석·공석 1석이다. 이는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와 로스앤젤레스 지역 유권자들의 개방적·자유주의적 성향을 반영한 결과로,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확고한 ‘민주당 주(Blue State)’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전체 지형과 달리 기술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전혀 다른 그룹이 부상했다. ‘기술 우파(Tech Right)’라 불리는 이들에게, 2024년 대선은 이들이 전면에 등장해 정치 판도를 바꾼 계기가 됐다. 이들은 숫자로는 소수지만, 뛰어난 기술력과 막강한 자본으로 미국 정치와 세계 경제 지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이 민주주의적 절차와 가치를 무시하거나 건너뛰고, 기술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거나 재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들을 ‘기술 폭군들(Techno-Tyrants)’이라 부르기도 한다.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신설된 정부효율부(DOGE)를 일론 머스크가 지휘하며 실행한 약 35만명 규모의 연방 공무원 이탈(주로 주 5일 사무실 출근 강제에 따른 자발적 사직과 일부 강제해고)은 정부 효율성 극대화라는 명분 아래 공공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든 ‘기술 지상주의적 폭거’라는 비판을 받는다.

기술 엘리트들의 정치 성향은 기존의 미국 정치 스펙트럼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미국 정치는 전통적으로 정부 역할과 분배 정의를 중시하는 진보(민주당)와 시장 자유·감세·개인 선택을 우선하는 보수(공화당)가 경쟁해왔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기술 엘리트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혐오하면서도 분배와 사회문제에서는 진보적인 혼종 성격을 보인다.

지난해 2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디케이터의 테슬라 대리점 앞에서 시위대가 당시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고 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항의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2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디케이터의 테슬라 대리점 앞에서 시위대가 당시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고 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항의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세계 경제질서와 국제관계 판도 흔들어

2017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데이비드 브룩먼 교수 연구팀은 실리콘밸리 기술 엘리트들의 정치 성향을 조사했다. 지금까지도 거의 유일한 조사로 학계의 평가를 받는 이 연구에 따르면, 기술 엘리트들은 일반 부유층과 매우 다른 독특한 성향을 보인다. 소득 재분배(세금 인상), 사회적 의제(성 소수자 권리 등), 세계화(이민·자유무역)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만큼 또는 더 진보적이며, 인종 편견이 낮고 세계 시민주의가 강하다. 반면 정부 규제, 특히 노동조합의 영향력 확대나 해고 제한 노동법 등에는 매우 보수적이며, 이 영역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와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실리콘밸리 기술 엘리트들의 이러한 성향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시장 중심 자유지상주의가 혼합된 것으로, 영어로는 ‘liberaltarianism’이라 표기하는데, 한국어로는 ‘혼종 자유주의’로 의역할 수 있다. 연구는 민주당이 기술 엘리트들의 주요 후원자로 부상하면서 사회적 이슈에서는 더 진보적일 수 있지만, 노동·규제 이슈에서는 과거보다 우경화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한편, 공화당을 지지하는 기술 엘리트들은 규제 철폐를 더욱 확대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더욱 줄이고자 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 정치철학자 롭 라이히 교수가 동료 2명과 공저한 <시스템 에러>(2021)에는 실리콘밸리 기술 엘리트들의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라이히 교수는 기술 거물이 주최한 만찬에 초대됐다. 참석자들은 기술 개발자·벤처 투자자·창업자들로, 주최자가 “상업 모델을 기반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다면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라고 물었다. 열띤 대화 중에 라이히 교수가 “그 국가는 민주국가인가? 통치 체제는?”이라고 묻자, 바로 대답이 나왔다. “민주주의요? 아닙니다. 과학에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기술관료가 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너무 느리고 과학 발전을 저지합니다.”

이 대화는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인간 중심 가치(인권·평등·시민 참여)보다 효율적 최적화와 기술 진보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주의의 ‘느림’이 장애물로 여겨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희생돼야 할 대상이 된다. 이는 기술 엘리트들이 추구하는 미래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우회 또는 대체하는 전체주의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장면이다.

기술 엘리트, 특히 기술 우파의 영향력은 트럼프 2기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는 기술로 세상을 재설계하려는 이들의 기본 성향 때문이다. 혁신과 규제 철폐를 향한 이들의 집요한 의지는 미국 내 정치는 물론, 세계 경제질서와 국제관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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