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유된 비전이 특정한 방향으로 고착되면 그것을 깨고 나와 사회적으로 더 유익할 법한 대안적 궤적을 탐구하기가 어려워진다. 기술 진보의 방향이 지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의사결정자에게 유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리한 방식으로 사회적 편향성을 띠게 만든다.”(대런 애쓰모글루·사이먼 존슨, <권력과 진보>)
‘공유된 비전’이 뭘 말하는 건지 궁금하면 현대자동차그룹이 선보인 피지컬 AI ‘아틀라스’와 관련한 기사 댓글을 보면 된다. 대다수의 댓글이 아틀라스가 인간을, 특히 현대차 노조원들을 대체할 미래를 환영하고 있다. 일부는 현대차 노조의 오랜 꼬리표인 ‘귀족노조’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반응일 수 있다. 그런데 전부는 아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믿음과 아틀라스 도입을 거부할 경우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 등이 바탕에 깔려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비전이 있다면 두 갈래로 구성되는 것 같다. 하나는 피지컬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미래, 다른 하나는 일에서 해방되고 기본소득을 받는 미래다. 두 가지 미래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코 저절로, 동시에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두 미래 사이에 깊고 어두운 골짜기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는 로봇에 뺏겼는데, 기본소득은 아직 나오지 않는 시간의 골짜기다. 누가 일자리를 잃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그런 일이 닥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누군가는 패자가 된다는 건 확실하다. 이 지배적 비전의 발원지인 기술경영자들이 패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확실하다.
“노사 합의 없이 단 1대도 들어올 수 없다”는 현대차 노조의 뭉툭한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노조도 더 진전된 고민을 내놓아야 한다. 임금 인상에만 집중된 노조의 협상력을 AI 대응에도 배분할 필요가 있다. 고질적인 문제지만 기업 단위 교섭 구조도 바꿔가야 한다. 산업·국가 단위에서 의제를 던지고 사회가 대안을 상상할 수 있도록 노조가 역할을 해야 한다. 점점 더 개인화되는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결사체로 존재하는 노조가 아니라면 달리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지금보다 더 나은 비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