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잠과 꿈’
김지원 작가. 작가정신 제공
김지원(1942~2013)은 1997년에 ‘사랑의 예감’으로 제2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미국 이민자로 한국 문단에서 사실상 이방인적 위치에 있었다. 1970~1980년대 뉴욕의 한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 김지원의 소설은 한국 여성이 1960~1980년대에 여성의 사회·정치·경제적 권리 확장을 요구하고 가부장제·성적 규범 같은 성차별 구조를 비판하며 확산한 ‘제2물결’과 조우하며 여성 문제를 파고든 결과였다. 한국 문단은 당시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병폐 해결과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제 수행을 요구받고 있었고, 페미니즘을 부르주아 여성 운동으로 낙인찍어 경멸했기에 김지원의 문학은 너무 일찍 도착한 편지처럼 오랫동안 수신자를 기다려야만 했다.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작가인 김지원은 최정희와 김동환의 장녀로 문인 가족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인 1964년 1월 ‘여원’에 ‘늪 주변’이 당선돼 데뷔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1973년에 도미한 후인 1975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사랑의 기쁨’과 ‘어떤 시작’으로 재등단하며 작가 생활을 본격화했다. 1977년에는 여동생인 김채원과 함께 자매소설집 <먼집 먼 바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문학사상’의 편집자를 겸했던 작가 서영은에 의하면, 김지원은 가족이 경영하는 ‘리큐어 스토어’에서 일하며 얼룩무늬 노트에 틈틈이 쓴 소설을 보내왔다. 그렇게 그가 뿌리내린 미국 뉴욕주의 그리니치 빌리지는 한국문학 장에 출현해 가부장적인 한국사회를 비트는 불온한 상상력이 됐다.
근본적 탈주와 해방의 길 찾는 여성들
김지원은 1965년에 미국 이민법이 개정되고 미국이 고등교육을 받은 아시아계 이민자를 선별해 받으면서 1960~1970년대 한국에서 유학 열풍이 불고 이민자가 급증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국가·민족, 가족의 경계를 이탈해 유목적 주체로 자기를 생성하려는 여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소설 속 여성들은 전쟁 재발의 공포나 드라마틱한 신분 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모국을 등졌다. 가령 단편 ‘한밤 나그네’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유산을 거듭했던 하옥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먼 나라”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자 소망하며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도돌이표처럼 다시금 이기적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자신이 “튼튼한 쥐덫” 같은 여성의 몸에 갇혔다고 절망한다. 지리적 이동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며 김지원의 여성 인물들은 근본적인 탈주와 해방의 길을 찾는다.
그의 소설 곳곳에는 “나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인 나의 남편보다 여자의 권리를 주장할 줄 모르는 바보입니다”, “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자기는 붙잡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만 있지 않은가”, “나 자신 탄생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져” 같은 자신에 관한 가차 없는 시선이 담긴 서늘한 문장이 산재해 있다. 비명 같은 위 문장들이 암시하듯이 김지원의 젊은 여성들은 낭만적 사랑에 애착하면서도 ‘제2의 물결’에 영향받으면서 여성으로서의 각성을 시도한다. 이민자 여성들은 새로운 땅에서 여전히 가부장적 젠더 규범의 지배를 받는 한편, 전통적 공동체가 사라짐으로써 더 이상 의리가 아니라 감정과 성적 매력이 애정 생활을 지배하는 새로운 현실에서 사랑의 약자로 내몰려 ‘낭만적 사랑’을 갈구한다. 중편 ‘폭설’에서처럼 두 쌍의 부부가 서로를 공유하는 ‘비독점적 다자연애(Polyamory)’ 같은 실험 결혼이 시도되는 급진적 현실에서 여성들은 시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지체자다.
김지원 작가의 ‘잠과 꿈’이 수록된 <먼집 먼 바다>
김지원이 1970년대에 거둔 최고의 성과작은 ‘잠과 꿈’(1975)이다. 앞서 말한 바처럼 사랑의 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구멍 난 자존심을 충족하려는 듯 사랑에 목을 매게 되는 심리문화적 연원이 탐구되기 때문이다. 혜기는 무역회사의 뉴욕 주재원인 남편 순구와 다섯 살 아들을 기르며 겉보기에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만 “외롭고, 남편은 모호하게 느껴지고, 자기 자신은 가치 없이 느껴진다”고 호소한다. 베티 프리댄이 <여성의 신비>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라고 했던 중산층 전업주부의 공허함과 무력감에 더해 혜기를 괴롭히는 것은, 남편이 어쩐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사랑의 불안이다. 순구는 더 이상 혜기를 갈망 섞인 눈으로 보지 않고 잦은 출장으로 언제나 부재 상태다. 김지원은 여성이 교육과 직업을 통해 자립해야 한다는 사회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시도했던 바처럼 여성의 욕망과 무의식에 관한 문화론적 분석을 시도하며 여성의 타자로서의 현실을 폭로하고 그러한 현실을 공고히 하는 ‘길든 욕망’의 문제를 서사화한다.
무국적의 외롭지만 자유로운 개인으로
이민을 온 친구 서윤과 조우하며 혜기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는 고풍스러운 동양적 가구로 치장돼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서윤의 아파트에 발을 디밀며 기이한 욕망에 빨려든다. 혜기는 서윤의 동거남인 ‘홍’의 유혹을 받고 “하녀같이 일상 깊이 가라앉아 가치 없이 느껴지는 자신이 아니라 아름답고 신비롭기도 하고 위험성도 있는 여자”가 된 것 같은 “세찬 희열”에 사로잡힌다. 붓글씨를 배우기 위해서 등 여러 명분으로 아파트를 드나드는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들의 살롱으로 불리지만 이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여성들을 불러들이고 아름답다고 추켜세워 성적 관계를 맺고 경제적 편의조차 누리는 ‘알파 메일(alpha male)’ 홍이다. “머리가 벗어지고 몸 어딘가에 민첩함이 깃든 조그만 남자”라는 서술이 말해주듯 홍은 성적인 매력과 거리가 먼 가난하고 늙은 남자다.
홍은 아버지뻘의 늙은 남자라는 것과 여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예술가’ 로 여성들의 환심을 사고 찬사를 퍼부으며 사랑을 고백한다. 에바 일루즈가 갈파한 바 있듯이 여성들은 사랑의 배신에 몸부림치면서도 사랑을 갈망하는데, 그 이유는 사랑이 여성을 사로잡는 열등감이나 불안감을 떨쳐내고 자존감을 고취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강렬한 인정과 승인의 욕망인 것이다. 또한 혜기의 이야기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분석한 바 있듯이 여성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남성들에 의해 길들었고,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돼 있음을 보여준다. 혜기는 홍이 상습적인 유혹꾼임을 알게 되자 “이 세상 남자들을 오로지 여자라는 것 하나로 대하려는 자기의 본질”, 즉 아버지-남성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의 인정을 갈망하는 수동적인 여성성이 자기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수치심 속에서 자각한다. 남성의 연물이 됨으로써 자기 존재의 승인을 갈망하는 것은 ‘암컷’의 본능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사회적 무권력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견 속에서 김지원은 홍의 아파트를 여성이 아버지-남성이라는 태타자의 인정에 기대고 그의 욕망에 봉사하는 수동적인 여성을 해체하는 역전의 무대로 만든다. 혜기는 홍을 ‘선생님’이 아니라 “여자 자궁에 붙어 양분 빨아먹는 커다란 태아”나 “남자 기생”으로 격하하고 그의 성적 무능과 우스꽝스러움을 폭로하는 섹스를 한다. 이는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대상 없는 그리움과 순구의 배반에 대한 복수의 탈출구” 성격을 갖는 것으로 혜기는 홍을 도구화한다. 첫사랑과 결혼해 애도할 첫사랑이 없는 혜기는 더러운 섹스를 통해 “여자란 몸 하나만 잘 간수하고 있으면 남편과 아이, 가정, 차, 햇빛, 음악 같은 이 세상의 사랑스러운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주술적 거짓말로부터 풀려나고자 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 같은 부웅 뜨는 느낌 속에 한 발씩 성숙해갈 때마다 고독해질 자신의 미래”를 내다본다는 서술처럼 혜기는 순구를 그의 애인에게로 보내고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다. 혜기는 가족과 국가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무국적의 외롭지만 자유로운 개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