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서구 광천동 들불야학 옛터. 한재섭 제공
임동과 광천동은 원래 광주의 바깥으로, 공업지대로 개발된 곳이다. 임동에는 방직공장이, 광천동엔 자동차 공장이 있었다. 당연히 그곳에는 노동자들이 살았다. 도시의 하수가 합수되는 광주천 옆 공장에 목구멍을 대고 살던 노동자들에게 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대신 책은 광주의 안쪽에 있었다. 광주 사람들이 “그럼 충장서림에서 만나자”며 모두가 약속을 하던 곳, 매일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광장의 기억을 일깨우는 곳에 책이 있었다. 1990년대 ‘충장서림’이 있던 시내에는 ‘나라서적’, ‘삼복서점’이 자웅을 겨루며 광주 향토서점 ‘빅 3’로 자존심을 지키며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충장로 우체국사거리 앞의 ‘나라서적’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공시지가 기준 평당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었다.
그러한 대형서점들 사이로 길 잃은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처럼 대학생들을 꼬드기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있었다. 역시, 광주의 안쪽 전남대와 조선대 주변에 몰려 있었고, 2011년 전남대 정문 앞 ‘청년글방’을 마지막으로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잠깐의 외도를 즐긴 대학생들은 버려진 책을 외면한 채 모두 입신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새 책 말고 헌책도 광주의 안쪽에 있(었)다. 계림동 헌책방 거리는 광주학을 공부하는 자들에게 광주․전남에서만 발간된 오래된 시사(市史)와 미술 도록, 지역 잡지들, 1980년대 수많은 비공식 출판사의 발행물 등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다. 굿즈도 디저트도 없는 헌책방을 찾는 이들은 과거 도서관에서 보학(譜學)책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던 중절모 쓴 노인들처럼 AI 시대 뒤떨어진 부류들로 취급되지만 말이다.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이 동구인문학당의 조대영 선생이고, 그는 사재를 털어 5만권이 넘는 책을 수집했다. 이제 사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상실될 위기에 놓인 책과 VHS 비디오테이프를 모으는 넝마주이 수집가의 열정이 지역의 자산이 될까? 광주 공공기관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에서 자산이 될 리는 없을 듯하다.
동네서점 ‘운터강’에서 개최한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주간 관련 유인물. 한재섭 제공
텍스트힙과 출판기념회
넝마주이 수집가들이 드문드문 뒤지는 계림동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동에는 후배들이 책을 가져가도 실없이 웃기만 했다는 ‘물봉’ 김남주 시인이 운영하던 ‘카프카 서점’(1975~1976)도 있었고, 1977년부터 운영돼 5·18 당시 YWCA 여성들과 함께 투쟁 방향을 도모한 ‘녹두서점’(김상윤 운영·1981년 폐업)도 있었다.
지난 시절 계림동부터 장동로터리까지는 서점의 공간, 그래서 시대와 역사에 대한 말과 글의 첨예한 각축장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광주에서 생성된 담론이 가장 빠르게 유통되고 끈덕지게 보존된 곳이 계림동 헌책방 거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녹두서점’이나 ‘청년글방’처럼 시대의 공기를 껴안고자 만들어진 서점을 지금의 독립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에서는 2014년경부터 출현했다. 여전히 그 서점들도 광주의 안쪽인 동명동의 ‘책과생활’, 충장로5가의 ‘소년의서’, 양림동의 ‘러브앤프리’, 중흥동의 ‘파종모종’, 근래 생겨난 ‘이곳은 서점이 아니다’ 등이다.
광주 출신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광주는 책을 많이 읽는 인문도시를 만들기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광우서점’처럼 힙하지 않은 기존 동네서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기에 종종 정책의 진정성에 의문이 갈 때가 있다. 책을 동네서점에서 사든 독립서점에서 사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독립서점에서 책을 산다는 행위 자체가 텍스트힙(Text Hip)의 일환이라는 것을 활용해 공공이 스노비즘(snobbism·지적 허영)을 암암리에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 것! 독립서점들의 분투가 스노비즘이 아니라 버텨내기임을 앞에서 서술한 점을 기억해주길!
어쩌면 이제 광주에서 책은 노잼 도시란 오명(?)에서 벗어나 관광객을 유입시키고 청년들을 서울로 유출하지 않기 위해 힙한 놀이문화로 만들려는 공공의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 모르겠다. 공공을 널리 이롭게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말고 책의 비장한 사명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책과 생각, 책과 독자들의 관계 맺음으로 지역 문화의 내력과 비전을 돌보기보다는 국비 유치와 AI에 모든 권능을 내주는 시대에 책의 사명을 논하는 것 자체가 해괴한 발상이 돼버린 탓도 있겠지만.
책의 기억들과 미래
광주 바깥에 살던 노동자들에게 교과서가 아닌 책을 가져다준 사람들이 있었다. 박기순과 박용준, 박효선과 김영철 등은 들불야학을 광천동에 만들어 노동자들과 책을 읽고 마당극을 졸업작품으로 올렸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생이 아닌,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의 강학(講學)이라고 불렀다. 5·18 당시 박용준은 ‘투사회보’를 만들었고, 전방의 어린 여공들은 광주 안쪽 광장까지 수백명이 지지 행진을 벌였다. 이제 그들이 책을 읽던 광천동과 임동에는 초대형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나누던 강학과 노동자들의 흔적도 사라진 지 오래다. 노잼이기 때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지역 영화 지원정책을 결국 복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역은 노잼이고, 지역 관객들 역시 서울 제작 영화들을 주는 대로 소비하면 되는 곳이지 창작을 하거나 담론이 생성되는 곳은 아니란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재작년 계엄령의 밤을 지나면서 서점 ‘소년의서’는 옛 도청 앞 광장에서 매일 밤 <소년이 온다>를 시민들과 읽었다. 얼마 전 임동에 문을 연 ‘운터강’은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주간을 열며 박효선이 1985년에 올린 연극 <하이파에 돌아와서>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책을 읽는다고 지역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는 책을 읽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란 질문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간경향의 독자들이 각자 살고 있는 지역의 서점들에 눈길 한번씩이라도 돌려주라는 갈급한 요청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