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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독재로 그늘진 땅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다

입력 2026.02.06 14:29

수정 2026.02.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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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재 변호사

우간다 민주주의 활동가, 마이클 카타가야

마이클 카타가야가 우간다 시민들을 상대로 민주주의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이한재 제공

마이클 카타가야가 우간다 시민들을 상대로 민주주의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이한재 제공

1970년대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의 통치 기간 동안 우간다에서 30만명에서 50만명의 시민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자비한 납치와 고문 그리고 실종이 이어지는 끔찍한 시기였다. 우간다 민주주의 교육활동가 마이클 카타가야는 “오늘날 많은 우간다인은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으며, 정권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는 이 비극을 끝내겠다며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으나 그 역시 결국 독재자의 길을 걷고 있다.

독재의 늪에 가라앉다

2026년 1월 15일(현지시간)에는 무세베니 대통령의 40년차, 7번째 임기를 위한 선거가 예정돼 있었다. 선거일 이틀 전인 1월 13일,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우간다 전국의 인터넷, 통신, 전기, 은행 시스템이 차단됐다. 우간다 정부는 선거 기간 동안 “허위정보 확산과 폭력 선동 방지”를 위해 인터넷 차단 조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독재 정부들은 대규모 인권침해와 정치적 탄압을 앞두고 이와 유사한 이유로 통신을 끊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 있었던 탄자니아 대선 시기에는 갑작스럽게 모든 통신이 끊어진 뒤, 일주일 사이에 최소 2000명 이상의 야당 인사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즉각 우간다에서 인권과 법치가 준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선거 후 우간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기간에 “2000명이 구금되고 3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왜 체포되고 죽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상당 부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마이클 카타가야는 현재 우간다의 상황을 독재의 늪에 “너무 깊이 가라앉아버렸다(sunk so deep)”고 표현했다. 단순히 특정인의 장기 집권을 넘어서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경계가 무너졌고, 모든 국가 기관이 특정 정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기간만 살펴봐도 갑작스러운 통신 중단으로 우간다 전국의 경제 활동이 마비됐다. 이 기간에 시민들이 직접 입은 피해만 수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클은 “정권의 이익에 따라 선거 감시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시민들의 손발을 묶어버린 것”이라고 평했다.

이번 선거 기간, 우간다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첨단무기가 아니라 ‘드론’이라 불리는 도요타 승합차였다고 한다. 보안 요원들은 짙게 선팅된 번호판 없는 차를 타고 다니며 야당 운동원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무작위로 납치해 감금하고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은 “누구든 잡혀갈지 모른다는 공포가 일상을 지배했다”고 말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민들의 ‘학습된 무력감’이다. 마이클은 “우간다 사람들은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잃었다”고 했다.

우간다의 비영리단체 ‘증거·방법론 연구소’를 이끄는 마이클 카타가야. 이한재 제공

우간다의 비영리단체 ‘증거·방법론 연구소’를 이끄는 마이클 카타가야. 이한재 제공

민주주의 씨앗 뿌리기

마이클은 ‘증거·방법론 연구소(Evidence and Methods Lab)’라는 비영리단체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시민들이 직접 통치의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것을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본다. 데이터와 정보를 공개하고, 현장의 공무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게 만들며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도록 돕는다.

마이클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선거일 하루가 아니라 시민이 국가와 맞닿는 매일의 경험에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성인 세대에 퍼진 무력감이 큰 만큼 그는 오히려 젊은 세대에서 가능성을 본다.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우간다 헌법을 이해하고 법치의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헌법을 시각화해 그림책과 게임 형태로 만들어 배포했다. 이들이 진행한 또 다른 캠페인인 ‘정부는 우리가 만든다(#We-Shape-Gov)’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민원과 그 대응을 ‘데이터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실제 공공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공무원과 주민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시하던 관료들도 시민들의 목소리가 집계돼 공식적인 형식의 자료로 제시되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결정자들이 시민들의 문제의식을 ‘보게’ 됐고, 예산이 배정되며 실제로 병원 침상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시민들은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실제로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긴급한 위기의 순간에도 이들은 거리에 나섰다. ‘Walk to Parliament(의회를 향해 걷다)’ 시위 국면에서 야당 지지자와 활동가들에 대한 대규모 연행이 이어졌을 때, 이들은 거리에 나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법적 정보를 정리해 알렸다. 이들은 “법을 인포그래픽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했고,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사법 절차에서 석방됐다.

당장 우간다 밖 어디에서도 우간다의 민주화를 위해 행동하지는 않을 것처럼 보인다. 마이클 역시 이 상황이 단번에 바뀔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대신 그는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아차리고, 공공 정보와 데이터에 접근할 길이 열리며, 법과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일의 이벤트를 넘어서는 진짜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민들에게 지금 우간다의 시민들이 겪는 일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시기와 문화, 언어와 인종까지 모든 것이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우간다인들의 앞에 놓인 고난과 역경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에 이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이클은 담담히 말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지금의 독재 체제가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오늘 우리가 만든 이 작은 변화가 거대한 민주주의의 숲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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