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메우기냐, 의대 입학 샛길이냐…‘지역의사제’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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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 메우기냐, 의대 입학 샛길이냐…‘지역의사제’ 갑론을박

입력 2026.02.02 06:00

수정 2026.02.0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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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로 뽑나” 논란 속 의대 입시 지형 흔들어…지방 전학 등 편법 예고도

의사들 지역 정착 의문시…공중보건장학제도 실패 답습할라 우려 목소리

지난 1월 5일 서울의 한 대학교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지난 1월 5일 서울의 한 대학교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차 타면 20분이면 가는데 누구는 지역의사, 누구는 일반전형한다면 누가 후자를 선택합니까. 당연히 최상위권은 고등학교 선택할 때 ‘(경기도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겠죠.”

서울 송파구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정윤섭씨(48)는 2027학년도 대학 입시에 도입되는 의대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정씨가 살고 있는 송파구 방이동에서 잠실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만 타면 곧장 서울 경계를 넘어 경기도 구리시에 도착한다. 구리시는 2027학년도 대입부터 관내 고등학교를 나온 졸업생(졸업예정자 포함)에게 경기·인천 지역 의대의 지역의사 선발전형에 응시할 수 있는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 곳이다. 정씨는 “성적순으로 뽑는 게 제일 공정한데 주소로 뽑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사니 뭐니 복잡하게 아이들만 괴롭히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지역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지방에서 10년간 의사로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 도입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의사 선발전형이 적용되는 첫 입시가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몇 명을 어떻게 뽑을지 구체적인 수치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데다, 서울 지역 학생들은 지원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10년 의무복무 후 지역 정착 요인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 전학 등 의대 입학을 위한 편법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의료 공백 해소 vs 서울 학생 역차별

지역의사 선발전형은 지역 간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동안 특정 지역의 의료기관에 복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역 의대가 해당 지역과 인근 지역 학생을 모집정원 내에서 별도로 뽑는 제도다. 선발된 학생은 입학금과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를 지원받는다.

정부가 지난 1월 20일부터 입법 예고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안을 보면 총 40개의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가운데 서울 소재 8개 의대를 제외한 32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이 2027학년도 신입생 선발부터 전체 정원 중 일부를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뽑게 된다.

경기·인천(가천대·인하대·아주대·성균관대·차의과대), 대구·경북(경북대·계명대·영남대·대구가톨릭대·동국대), 부산·울산·경남(부산대·고신대·동아대·인제대·울산대·경상대), 대전·충남(충남대·건양대·을지대·단국대·순천향대), 충북(충북대·건국대), 광주(전남대·조선대), 전북(전북대·원광대), 강원(강원대·한림대·연세대·가톨릭관동대), 제주(제주대) 등 9개 광역권에서 44개 세부 중진료권을 지정, 중진료권과 그 인접지역 고등학교를 입학·졸업한 학생에게만 지역의사 선발전형 지원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지역의사 선발전형은 지역형, 인접지역형으로 다시 세분화되는데 지역형은 중진료권 내 고교 졸업생만, 지역인접형은 꼭 해당 지역이 아니더라도 인접지역의 고교졸업생도 지원할 수 있다. 예컨대 중진료권 지역으로 지정된 충남 천안시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대전·충남 의대를 지역형으로 지원할 수 있고, 대전시 소재 고교 졸업생의 경우 인접지역형에 지원할 수 있는 식이다. 입시 업계에서는 지역형 비중이 가장 크고, 인접지역형이 이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는 지역 내 고등학교 입학과 졸업, 주소지 이전만 조건이지만, 2027년에 중학생이 되는 학생부터는 비수도권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조건이 추가된다.

지난 1월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의대 입시 학원 모습.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지난 1월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의대 입시 학원 모습. 연합뉴스

‘의사 없는 병원’이라는 최악의 지역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복안이지만, 서울의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농어촌특별전형, 지역인재전형에 더해 서울 출신 학생들이 역차별받는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송파구 맘카페에는 “서울 출신이나 지방 출신이나 합격하면 지역에서 똑같이 10년 의무복무할 건데 서울 역차별이 아니냐. 지역인재, 농어촌전형도 있는데 (지방) 특혜 수준”, “이러면 전학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등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의대 진학 지각변동이 일어난다”(재수 전문 종합학원 이사)라거나 “중부권이 앞으로 의대 진학을 위한 핵심 요충지가 된다”(A 종합학원 이사) 등 지역의사제가 입시설명회의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문제는 ‘거주요건’만 지키면 상대적으로 수월한 의대 진학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가천대, 인하대, 아주대, 성균관대 등 수도권 주요 의대 진학이 가능한 경기·인천 지역으로의 이사·전학 수요가 1차적으로 발생하고, 중부권과 남부까지 전학 수요가 연쇄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벌써 서울 인접 중진료권인 경기도 남양주권(구리시·남양주시·가평군·양평군)을 새로운 의대 학군으로 지목하고 있다.

종로학원이 지난 1월 21~25일 중·고 수험생 및 학부모 9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9.8%가 ‘지역의사제 도입 시 지원가능한 지역(경인 및 지방)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늘어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60.3%는 지역의사제가 시행되면 ‘해당 의대에 진학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역의사제 지원 자격이 부여되는 지역으로의 이동도 실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면서 “특히 경인권 내에서 지역의사제 가능 지역으로의 이동, 서울권에서 경인권 등으로의 연쇄 이동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지역의료 정착 여부가 중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의 법 통과로 지역의사제 도입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구체적인 선발 인원(비중)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험생들의 혼란도 적지 않다.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의대 정원 중 지역의사 선발전형 비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비율은 물론, 2027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조차 미정이다. 당초 3058명이던 의대 모집인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5058명으로 한 차례 증원됐지만, 의사 반발 등으로 재검토 중이다. 전체 증원 규모가 정해져야 학교별로 모집정원을 정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지역의사 선발전형 비율에 따른 선발인원(지역형·인접지역형)이 최종적으로 정해진다.

2027학년도 이후 모집정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원회(보정심)에서 확정해야 하지만, 내년도 증원 규모 등을 두고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는 입시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 연휴 이전에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고, 구체적인 지역의사제 운영방안도 함께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료인 정착 유인 등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장기방안보다는 결국 의대 입시를 위한 ‘샛길’로 변질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종로학원 조사에서 진학 후 장기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취업 및 정착 의사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응답자는 50.8%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지역의사제가 도입되더라도 결국 또 대도시, 수도권으로 의사들이 떠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역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한 전공의는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공중보건장학제도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당장 환자들부터 서울·수도권 병원만 찾는데 의사들에게 지역에 머무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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