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1) 일하는 신체, 쓰는 주체…여성 노동자 수기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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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1) 일하는 신체, 쓰는 주체…여성 노동자 수기의 출발

입력 2026.01.23 14:59

수정 2026.01.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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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양선 한림대학교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

석정남 <공장의 불빛>

석정남 작가. 정지윤 선임기자

석정남 작가. 정지윤 선임기자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이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노동자 소설을 읽으면서, 또 주말이면 경인공단이나 구로동을 취재하면서 이런 것들을 놔두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아직도 이루지 못한 ‘난장이의 꿈’: 조세희 ‘난쏘공’ 출간 30주년, 경향신문 2008년 11월 11일 기사 일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작가 조세희는 1970년대 석정남과 유동우의 노동자 소설(엄밀하게는 수기)이 자신의 창작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한 ‘불타는 눈물’은 ‘월간 대화’에 실린 석정남의 ‘어느 여공의 일기’의 일부이다. 제목처럼 온전히 스무 살 여성 노동자의 일기로만 이뤄진 이 수기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1976년 11월)와 ‘불타는 눈물’(1976년 12월)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다. ‘어느 여공의 일기’에서 발화한 여성 노동자 수기는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1982),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1984)로 이어지면서 1970년대 진보적 지식인 사회와 문학 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계층적·성적으로 소수자였던 ‘여성’ ‘노동자’가 글쓰기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지식인 남성 중심의 견고한 문학 장의 위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석정남은 이 수기를 동일방직에서 해고된 뒤 7년이 지나 <공장의 불빛>(1984)으로 개작해 단행본으로 재출간한다. ‘어느 여공의 일기’는 작가가 동일방직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갓 노동운동에 입문했던 전후 시기를 아우르면서 평범한 여자아이가 시를 읽고 글을 쓰는 교양 있는 여성을 꿈꾸지만 누추한 현실에 좌절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사적 기록물에 가깝다. 반면 <공장의 불빛>은 작가가 ‘나체 시위’와 ‘똥물 사건’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동일방직 사건의 배경과 실상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의도로 쓰인 19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아카이브이다.

글쓰기의 진정성 소환해 문학의 권위 해체

197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는 빈농 출신의 어린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나 오빠의 공부를 돕기 위해, 혹은 산업사회와 서울에 대한 동경 때문에 상경해서 노동자가 된 후, 도시산업선교회나 야학을 통해 노동운동에 입문하고,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당한 후 복직 투쟁을 하는 정형화된 스토리라인을 따르고 있다. 수기는 이들이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유를 열악한 노동환경, 권리를 박탈당한 데서 오는 분노, 동료 노동자들과의 연대감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공장의 불빛>에서 스무 살 때 동일방직에 입사한 어린 노동자는 “날이 어두우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이 밝아오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리듬을 버리고 “밤 12시나 1시 이렇게 깊은 밤에 일을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는 공장 시스템에 자신의 신체를 맞춰야 한다. 시간은 새벽 6시, 오후 2시와 10시, 3교대 작업을 중심으로 측정된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시간 개념과 다른, 공장에서의 시간은 노예의 시간, 이상한 세상의 이상한 생활이라는 이질성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공장에서의 인간-기계 시스템이 사적인 일상 공간과는 다른 속도와 규율체계를 강제하는 것이다.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 기계를 맡아보는 ‘틀보기’ 기능공은 1분에 15개의 실을 이어야 하고, 1분에 140보를 걸으면서 21개의 기계가 끊임없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신체를 기계의 속도와 시간에 맞추는 것이다. 성인이 마치 어린이처럼 걸음마 연습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이들이 인간-기계라는 산업화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새로 태어나는, 소위 개조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이 고된 노동환경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문학-교양에 대한 열망,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소설가가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일생도 책으로 엮어 보아야지(‘인간답게 살고 싶다’, 1974년 3월 1일)”라고 했던 석정남의 희망은 어떤 시인의 소개로 ‘어느 여공의 일기’를 ‘월간 대화’에 공개하면서 실현된다. 작가는 기숙사 도서실에서 “하이네의 낭만시나 소월의 ‘진달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면서 고통스럽고 지저분한 현실을 잊는다고 고백한다. 시 읽기는 “조장도 반장도 담임도 잊을 수가 있었고 실잇기도 걸음마도 별것이 아니었다”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 굴욕적인 노동의 시간을 잊고 나의 감정, 즉 개인성을 온전히 지키는 행위다. 하이네, 바이런, 혹은 괴테처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 ‘신비로운’ 시를 좋은 시의 준거로 삼고, 자신의 ‘초라한 문장력’을 부끄러워하던 석정남은 수동적 읽기 행위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생활 세계와 감정을 ‘수기’라는 자기 서사(self narrative)의 형식으로 씀으로써 “남이 읽고 언제까지라도 기억해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성취한다.

일월서각 제공

일월서각 제공

하지만 여성 노동자의 글쓰기는 항상 그 ‘작가성’을 의심받았다. 대개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에 그친 무지한 여성 노동자가 글을 쓸 능력이 있을 리 없고, 지식인들이 대신 써주었을 거라는 통념이 지배적이던 시대였다. 가령 이들이 해고당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연극 대본을 쓰고 공연을 하다 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을 때 받았던 질문은 ‘누가’ 연극 대본을 썼냐는 것이었다. “그저 우리가 겪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공책에 적어서 했던 것뿐”이라 대답해도 경찰은 믿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체험에 기반한 글쓰기의 진정성을 소환함으로써 문학의 권위, 나아가 배운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는 통념을 해체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여성문학 외연 의미심장하게 확장

<공장의 불빛>은 민주 노조 결성, 사측의 노조 와해 공작, 명동성당의 단식 농성, 부당해고와 복직 투쟁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계엄령과 대통령의 죽음과 같은 정치사적 사건, 한국노총의 어용성, 도시산업선교회가 실험한 노동자들의 클럽(소모임) 활동과 같은 노동사도 함께 서술하고 있다. 1970년대 개발독재 체제와 노동 현실에 대한 아카이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공적 기록물로서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과정에서 문학과 문학 외부의 글 양식을 가로지르고 섞는, 일종의 장르 혼합 양상을 띠었다는 점이다. 수기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연극 대본, 대담, 선언문, 토론문, 투쟁일지, 법정 판결문 등을 텍스트 곳곳에 배치한다. ‘무대에 올린 동일방직 사건’ 장에 삽입된 연극 대본,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장의 토론 회의록, ‘복직 운동에 박차를 가하며’ 장의 호소문, 노동위원회에 제출된 사측과 노동자 측의 진술서와 판결문은 문학 제도와 양식 바깥의 기록물을 문학(사)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결과를 낳았다.

<공장의 불빛>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 수기는 글쓰기를 열망했으나 문학 장에 진입하지 못한, 작가로서의 정체성보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은 주체들에 의해 쓰였다. 이들의 글쓰기는 남성 노동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계급적 대표성을 여성들이 공유하고 집합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동조합 결성과 해고, 복직 투쟁 과정에서 보여준 여성 노동자들의 자매애와 연대감, 분노와 눈물의 정동 역시 젠더적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성 노동자 수기는 일하는 여성이 앎의 주체이자 생산자로, 글쓰기의 주체로 스스로 성장해 간 사례이자, 문학과 문학 외부의 견고한 위계를 허물고 (여성) 문학의 외연을 확장한 의미심장한 시도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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