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구글은 지난 1월 12일(현지시간), 애플의 차세대 인공지능에 구글의 제미니 기술을 적용하는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AFP
2003년 1월, 애플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자사 웹브라우저 ‘사파리’ 출시와 동시에 구글을 기본 검색엔진으로 탑재한 것이다. 야후라는 지배적 검색 사업자가 존재했지만, 애플은 ‘신생 기업’ 구글을 택했다. 이는 당시 업계에서도 파격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애플에 자체 웹 검색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성격은 조금 달랐지만, 로컬과 웹을 넘나들던 ‘셜록(Sherlock)’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하며 꽤 유용한 도구로 평가받았다. 여러 PC 내 파일 검색뿐 아니라 웹검색까지 연결돼 사용자 편의성도 높았다. 하지만 애플은 웹 검색 고도화와 데이터센터 구축에 투입될 막대한 비용을 직시했다. 결국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위해 검색은 구글에 맡기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이때 보존된 자금과 에너지는 2007년 ‘아이폰’이라는 세기적 발명으로 이어졌다.
구글은 애플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2002년 16%에 불과했던 검색 점유율은 애플과의 동맹 직후인 2003년 28.9%, 2004년 29.5%로 치솟으며 야후를 추월했다. 공교롭게도 애플-구글 동맹이 시작된 지 딱 1년 만의 일이다. 이후 구글은 전 세계 검색 시장의 포식자로 군림했다. 전적으로 애플 덕이라 할 순 없겠지만, 애플이 없었다면 성장 속도는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검색을 둘러싼 애플-구글 간 검색 연맹은 반독점법 위반으로 법적 철퇴를 맞았다. 독점의 근간이 됐던 두 기업 간 ‘검색 연맹’은 사실상 해체수순에 들어갔다.
그러나 끝은 새로운 시작을 호출했다. 두 기업은 새로운 층위의 연맹, 이른바 ‘생성 AI 연맹’을 결성했다. 애플은 23년 전의 데자뷔처럼 구글과 다시 손을 잡았다. 아이폰 등 애플 기기에 구글의 거대언어모델 제미나이(Gemini)를 이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체 모델 ‘에이잭스(Ajax)’를 개발해왔음에도 애플이 구글을 선택한 배경에는 여러 실리적 이유가 작용했다. 특히 프라이버시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애플은 이 관점에서 구글이 자체 모델보다 앞섰다고 판단했다.
이 연맹은 또 다른 독점적 지배 구조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다. 생성 AI 경쟁에서 다소 고전하던 구글은 제미나이 3.0의 성능 향상과 애플의 방대한 사용자 쿼리(Query) 데이터를 확보하며 다시금 독주 체제를 갖추게 됐다. 애플 역시 아이폰 내에서 한층 고도화된 AI 기능을 구현하며 고객 충성도를 공고히 하는 ‘윈-윈’ 전략을 취했다. 때마침 챗GPT의 성장세가 둔화하던 시점이었기에 시장이 주는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20여년 전의 데자뷔와도 같은 사건이 재연되자 오픈AI는 당황했고, 또 다른 거대언어모델 ‘그록’을 개발 중인 일론 머스크는 분노했다.
2003년의 동맹이 두 빅테크를 독점 사업자로 키워냈다면, 2026년의 동맹은 그들의 성벽을 더욱 높게 쌓아 올리게 될 것이다. 이미 두 기업은 AI 밸류체인의 상당 부분에서 수직 통합을 완성하며 강력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구글은 하드웨어 플랫폼이, 애플은 생성 AI 기술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약점의 마지막 퍼즐을 동맹으로 보완하면서 떠오르는 새 사업자 오픈AI를 변방으로 밀쳐낸 것이다. 이 구도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전 세계는 다시금 구글과 애플의 지배체제에 놓이게 될 것이다. 기업의 선의나 가치를 떠나, 새로운 혁신 세력이 진입할 틈이 없는 독점 생태계는 그 자체로 시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