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제목: 시라트(Sirat)
제작연도: 2025
제작국: 스페인, 프랑스
상영시간: 114분
장르: 드라마
감독: 올리비에 라시
출연: 세르지 로페즈, 브루노 누녜스
개봉: 2026년 1월 21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모로코 남부 사막에서 열린 레이브 파티. 파티에 참여한 많은 사람 사이에 수개월 전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 루이스(세르지 로페즈 분)와 그의 어린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 분)도 있다.
전단을 돌리며 딸의 행방을 묻는 루이스에게 대부분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오지만, 몇몇 사람은 근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파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나타난 군인들에 의해 파티는 중단되고 강압적인 철수가 진행되지만, 다른 파티 장소로 이동하려는 차량이 행렬을 빠져나와 도주에 성공하고, 어떻게든 딸을 찾아야만 하는 루이스 역시 그 뒤를 따라 황량한 사막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후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군인의 총칼도 사나운 모래바람도 아니다.
제목 ‘시라트(Sirāt)’는 아랍어로 ‘길’ 혹은 ‘방식’을 뜻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지옥과 천국을 잇는 다리의 이름을 의미하며, 이 다리는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워 오직 의로운 자만이 건널 수 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태생의 스페인 국적으로 이제껏 연출한 4편의 장편영화 모두 칸 영화제로부터 초청받은 올리비에 라시 감독은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따르기보다는 시청각적 극대화를 통한 경험적 영화를 추구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위한 시도
이번 작품 역시 그의 작품에 있어 일관되게 유지돼온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직선적 전개는 여전하다. 다만 그의 작품목록에 있어 가장 대중적이고 오락적 요소가 풍부한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지점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와중에도 날 것 같은 거친 현실적 배경과 비현실적이고 최면적 분위기라는 모순되는 두 가지 요소를 한 작품 속에 담아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사실상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다.
초반 거대한 레이브 파티의 열기와 이후에도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DM)은 이 영화의 단선적인 구조와 상투적인 교훈을 특별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이며 이 작품을 꼭 극장에서 관람해야만 하는 필연적 요소이기도 하다.
이 같은 성과는 음악을 맡은 캉딩 레이(Kangding Ray)의 재능에 크게 빚지고 있다.
실험적인 전자음악부터 클럽 음악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유한 프로듀서로 명성을 크게 얻던 그에게 <시라트>는 첫 영화음악 도전이었는데, 유수 영화제의 음악상을 휩쓸며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했다.
영상에 있어서도 근래에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16㎜ 필름을 사용해 촬영함으로써 디지털 촬영이나 보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과 다른 거칠고 투박한 질감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
이를 통해 사막은 단순히 이국적인 풍경을 넘어 초현실적인 공간으로까지 확장돼 보인다.
끔찍한 악몽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캐스팅에서도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는 아버지와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연기경력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을 캐스팅해 좀더 극적인 현실성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 루이스는 극중 감당할 수 없는 상실과 몰락을 경험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세르지 로페즈가 캐스팅됐다.
세르지 로페즈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판의 미로>, <행복한 라짜로>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배우다.
위의 여러 독특한 요소들로 특별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영화는 초반 몽롱하고 나른한 로드무비의 여백을 지나 중반의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을 기점으로 마지막까지 걷잡을 수 없는 비애와 파국을 향해 내달린다.
마치 끔찍한 악몽이나 괴팍한 우화처럼 폭주하던 영화는 갑작스러운 결말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천국과 지옥 사이의 다리를 건너 도착하는 곳은 과연 어디인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그곳이 어디이든 분명한 것은 여정이 끝난 후 맞닥뜨리는 세상은 분명히 이전의 세상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전문 연기의 리얼리즘
찬란
<시라트>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 중 아버지 루이스역을 맡은 세르지 로페즈와 어린 아들 에스테반을 연기한 브루노 누녜스, 두 사람을 제외한 인물들은 연기경력이 전혀 없는 비전문 배우로 알려져 있다.
올리비에 라시 감독은 실제 레이버(Raver: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중심으로 밤새 춤추고 자유롭게 즐기는 대규모 파티나 서브컬처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를 캐스팅함으로써 영화의 사실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배우로서의 경험이 없는 배우의 연약함, 그 취약성에는 깊은 감동이 있다. 훈련된 배우들에게서 얻기 힘든 소중한 에너지가 있다. 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뿐 연기 경험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배우의 화려한 유명세가 광고되는 영화산업에 있어 이런 시도는 자체가 화제가 된다.
사실 관객 앞에 선 인물이 ‘비전문 배우’라는 점보다는 ‘비전문임에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요즘 감독 중엔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아노라> 등으로 유명한 션 베이커가 이런 방식의 캐스팅을 선호하는 인물로 대표적이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 역시 실제 무대가 되는 지역과 그곳에서 거주하는 비전문 배우와 호흡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시티 오브 갓>, 타비아니 형제의 <시저는 죽어야 한다>, 나딘 라바키의 <가버나움> 등도 이런 시도를 통해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절묘한 경계를 포착해낸다.
하지만 이 같은 선택과 성취가 자칫 단순히 저렴한 제작비와 손쉬운 작업을 위한 나태와 혼동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주의하고 구분해야만 한다.